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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화 | 암살의 미학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18년차의 사실상 종신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를 일러 총 한 발로 독재를 종식시킨 민주의사로 기리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대통령을 한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숭앙하는 국민에게는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 안경환
  • 입력 2015.10.12 13:08
  • 수정 2016.10.12 14:12
ⓒ한겨레

"태양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작가 이병주의 수사다. 역사는 기록과 기억을 두고 벌이는 후세인의 싸움이다. 승자의 행장(行狀)은 역사가 되고 패자의 한은 신화와 전설로 전승된다.

1980년대 초,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安'이라는 성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일본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주선한 외국인 하숙에서 나를 꺼렸다고 한다. 하필이면 첫 외객이 한국인이라 시큰둥했는데 게다가 더없이 불쾌한 성씨가 아닌가! 그들이 아는 '安'가는 일본 문명개화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비열한 건달,' 안중근뿐이었다. 한민족의 영웅은 일본인에게는 역적 중의 역적이었다.

최근에 성공한 영화 〈암살〉에는 김구와 김원봉, 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 두 분만큼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풀어준 지도자도 드물다. 김구 선생이 되찾은 나라에서 동족에 의해 암살된 일은 불행 중의 불행이다. 근래 들어 김원봉의 '의열단'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분들은 가장 극악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암살'이란 한 마디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살인이다. 후세인이 주목하는 암살은 정치, 종교, 권력의 갈등의 소산이다. 그러기에 특정인이 암살된 결과로 세상의 판도가 달라지기 십상이다. 많은 피살자는 대중의 동정을 얻는다. 만약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후세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사람들은 상상의 유희에 탐닉한다. 바로 여기에 암살의 미학이 있다. 암살은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100가지 암살」 저자들의 표현대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실로 구미 당기는 일이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18년차의 사실상 종신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를 일러 총 한 발로 독재를 종식시킨 민주의사로 기리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대통령을 한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숭앙하는 국민에게는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브루터스, 너 마저!" 셰익스피어의 작품대로라면 자신을 찌른 암살자를 향해 던졌다는 율리우스 케이자르의 마지막 한 마디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은 박정희의 심경을 대변했을까?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100가지 암살」에 실린 100건의 암살은 세계사와 한국사에 지명도가 높은 역사적 사건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비교적 문헌이 풍부하지만 저자들의 선호가 반영된 선택이고 선정자의 시각도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매 건마다 첨부된 '맥락읽기' 요해(要解)와 사진이 역사적 사실의 입체감을 더해준다. 단순한 흥미로 읽은 독자라도 그중 일부는 역사 자체에 대한 균형 있는 관심으로 발전되기 바란다.

* 이 글은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100가지 암살」(이화영 임경호 편저, 지식갤러리, 2015) 서문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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