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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즐거움 |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은 뛰어난 문학들 다수가 그러하듯이 텍스트를 읽는 것과 컨텍스트를 읽는 것, 이 2중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혁명과 전쟁의 시대에 조국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국가'에 절망하고 '자연' 속으로 자신을 침잠시키려 했다. 그는 인간의 비소(卑小)함을 싫어했으며, 자연의 위대함에 무한한 애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 서경식
  • 입력 2015.10.09 10:25
  • 수정 2016.10.09 14:12

『위대한 왕』은 내 평생의 애독서다.

원래 나는 호랑이라는 동물을 좋아했다. 일본 교토 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곧잘 시립동물원에 놀러갔는데, 다른 아이들이 좋아했던 얼룩말, 기린, 코끼리 같은 온순한 동물보다 뭐니뭐니해도 호랑이가 좋았다. 사자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른이 된 뒤에도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그곳 도시들에서 내가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 미술관과 동물원이다. 1980년대 초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립돼 있던 나는 암울한 심정으로 방랑의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서베를린에 갔다. 당시 독일은 아직 동서로 분단돼 있었고, 서베를린은 동독 안의 고립된 섬이었다. 본래의 중앙역은 장벽 너머 동베를린 구역에 편입됐기 때문에 서베를린의 중심이 되는 철도역은 조Zoo, 즉 동물원역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과연 바로 앞에 동물원이 있었고, 동물들이 발산하는 특유의 냄새가 그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다.

'아무르 호랑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체중은 300킬로그램이 넘을 것 같았다. 머리통만 어른 팔로 너끈히 한 아름은 될 듯했다. 호랑이는 우울한 표정이었으나 고고했고 위엄에 차 있었다. 30분이 넘도록 바라보고 있었으나 조금도 물리지 않았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홀로 겨울의 동물원에 가서 외투 깃을 세우고 오랫동안 말없이 호랑이 우리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어릴 적에 읽은 『위대한 왕』 이야기가, 그 미세한 디테일과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호랑이는 '위대한 왕'의 자손이었을까. 분명 얼굴의 줄무늬는 '왕(王)'자 모양이었는데....... 그 뒤에도 세계 각지의 동물원에 몇 번이나 가봤지만 그때 베를린에서 본 것만큼 멋진 호랑이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2, 3년 전 오랜만에 베를린 동물원에 가봤다. 동서독은 통일되고 베를린 장벽도 제거돼 새로운 중앙역이 세워졌기에 동물원역은 예전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동물원에 호랑이들이 있긴 했지만 20년 전에 만난 그 거대한 호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것은 고독했던 내 마음이 만들어낸 '위대한 왕'의 환영이었을까.

재일조선인인 나는 일본 교토 시에서 소학교를 다녔다. 처음 『위대한 왕』을 읽은 것은 소학교 3, 4학년 무렵이다.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원작을 도미사와 우이오가 어린이용으로 새로 쓴 것을 일본어로 읽은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단샤(講談社)판 세계명작전집의 하나로 들어 있었다. 나는 이 전집으로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과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등 평생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위대한 왕』은 그 전집 중에서 이색적인 작품이었고, 다른 명작과는 다른 명료한 인상을 내게 남겼다.

우선 그 무대부터 동아시아였다. 늙은 중국인 사냥꾼 퉁리가 존경스런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세계명작전집의 저자들은 다수가 서양인이고, 『삼국지』 등의 중국 고전을 빼고는 작품의 무대가 서구 세계였으며, 등장인물도 아시아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위대한 왕』은 호랑이가 주인공이고 인간은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호랑이의 시선으로 '호랑이의 마음'을 그려놓았다. 물론 진짜 '호랑이의 마음'을 알 순 없겠지만 아이들 생각에는 그것이 진짜 '호랑이의 마음'이라고 여길 만큼 설득력 있게 써놓았다. 그리고 어린이용으로 지어낸 환상이 아니라 어떤 위엄과 비애감이 작품 전체에 감돌고 있었다. 이런 점들이 다른 많은 아동문학 작품들과는 다른 이 책의 특징이었다.

그런데다 『위대한 왕』의 아버지 호랑이가 백두산에 사는 '조선 호랑이'였던 것도 어린 재일조선인이었던 나를 매료시켰다. '조선'이라는 말에는 늘 경멸이나 조롱의 여운이 붙어다니는 일본에서, 비록 '조선 호랑이' 이야기라고는 하나 이 말이 경의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예를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위대한 왕』을 읽고 용기를 얻은 나는 '조선 호랑이'가 얼마나 크고 강한지 같은 반의 일본인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사자가 더 세다고 우기는 아이와는 결국 싸우기까지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위대한 왕』을 향한 내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오코론샤中央公論社에서 이마무라 다쓰오의 완역판이 나오자마자 사서 단숨에 읽었다. 낫살깨나 먹은 중년 남자가 읽어야 할 책들은 제쳐둔 채 동물소설을 탐독하고 있었으니, 지인들 눈에는 이상하게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돼 현실 사회의 잔혹성과 인간의 우둔함을 지겹도록 알게 된 뒤에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위대한 왕』의 세계는 더 소중해졌다.

1992년 여름, 나는 일본의 한 대학 학술조사단에 참여해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처음 방문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는 하나 한국 국적자인 나는 냉전체제 붕괴와 한중 국교수립 때까지 중국에 가볼 수 없었다. 내가 이 조사단에 들어가고 싶어했던 개인적인 동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용정 교외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묘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몰래 가슴에 품고 있던 동기는 저 백두산의 조선 호랑이에 대해 뭔가 좀 알아내고 싶다는 치기 어린 소망이었다.

중국 쪽에서 백두산에 올라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니 사방에 펼쳐진 산록들이 검은 바다처럼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숲의 바다를 자신의 왕국으로 삼은 호랑이는 영악한 인간들이 그어놓은 국경선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에서 만주로, 다시 극동 러시아로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밀림의 왕자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인간들에 쫓겨가게 된다. 그 배경에는 근대문명의 개발을 빙자한 러시아와 일본의 침략이라는 역사가 깔려 있었다. 지금은 북조선 호랑이는 거의 절멸했고, 극동 러시아 지역에 겨우 남아 있는 호랑이들도 1990년대 말에 개체수가 500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돼 절멸 위기에 처해 있다.

백두산을 내려와 기슭에 있는 자연박물관에 가보니 이 지방 야생동물 박제 표본들이 진열돼 있었다. 거기에는 조선 호랑이 박제도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야위고 볼품이 없었다. 그 조사단의 일본인 연구자가 "뭐야. 이거, 의외로 작잖아" 하는 얘기를 듣고, 그 말에 아무런 악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지녀온 꿈이 또 하나의 현실에 배반당하면서 낙담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용 다이제스트판은 있었지만 2007년에야 『위대한 왕』의 완역판이 처음 간행되었다. 게다가 프랑스어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했다. 번역의 저본이 된 프랑스어판의 낡은 책을 직접 볼 기회가 있어서 손에 쥐어봤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 야생 호랑이 이야기와는 다른 또 하나의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저자 니콜라이 바이코프 그 자신의 기구한 방랑 이야기다.

출판사는 파리, 생제르맹 대로 106번지의 파요(PAYOT). 발행 연도는 1938년. '지리학총서' 중 한 권으로 간행됐다. 저자 자신이 그린 서른여덟 점의 삽화도 들어 있다. 이 삽화가 근사하다. 러시아어를 프랑스어로 옮긴 사람은 피에르 볼콘스키 왕자라 돼 있다. '왕자'라고 했으니 필시 망명 러시아인 귀족일 것이다.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 바이코프(Николай Байков, 1872~1958)는 1872년, 지금의 우크라이나공화국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자연이나 동물에 특별히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이윽고 사관학교에 진학해 군인이 됐고, 서른 살 무렵 만주에서 근무하게 된다. 19세기 말, 세계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당시 청나라) 침략에 나섰는데, 러시아는 1896년에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를 잇는 동청철도 부설권을 얻었고, 이 철도는 1901년에 완성됐다. 러시아는 이 철도수비대로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바이코프는 철도수비대의 일원으로 만주에 부임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이코프가 열중한 것은 자연과 동식물 조사였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이를 넘어선 정치적 은유까지 담아내고 있는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위 사진은 바이코프가 직접 그려 이 책에 수록한 삽화 중 하나로,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호랑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위대한 왕』의 일본어판 표지.

이윽고 191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이어서 1917년 10월엔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바이코프는 반혁명 쪽인 백군에 가담했다. 그 결과, 간섭전쟁(외국군들이 러시아혁명을 무너뜨리려고 개입해 혁명군과 싸운 전쟁)이 적군(혁명군)의 승리로 끝나자 그는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터키, 이집트, 인도 등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다시 만주 하얼빈으로 돌아간다. 당시 만주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고, 하얼빈에는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도망쳐 나온 많은 백계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위대한 왕』의 원작은 1936년에 하세가와 슌의 번역으로 일본어신문인 《만주일일신문(滿洲日日新聞)》에 연재돼 호평을 받았고, 일본 분게이슌주샤(文藝春秋社)에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1936년은 일본과 독일의 방공(防共)협정이 체결됐고, 일본 국내에서는 2·26사건이라는 군사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난 해다. 이미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세운 일본은 다음 해인 1937년부터 중국 본토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전쟁을 개시한다.

그 작품 『위대한 왕』은 1938년에 바이코프와 같은 망명 러시아인의 손으로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것이다. 프랑스어판이 나온 다음 해에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렇게 보면 바이코프의 작품세계는 지리적으로는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잇는 널따란 폭을 갖고 있고, 시간적으로는 19세기 말 열강들의 아시아 침략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긴 시간대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개인으로서의 바이코프는 자연과 동물을 한없이 사랑했겠지만, 이런 맥락 위에 놓이게 되면 그의 작품은 단순한 동물소설의 영역을 넘은 정치적 은유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대문명에 의해 파괴당한 대자연과 절멸 위기에 내몰린 야생동물들은 구미 열강들에 침략당한 아시아 피억압 민족들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읽으면 또 조선 호랑이 자손의 비극적인 최후는 조선 민족 그 자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당시의 조선인들, 내 조상이나 선배 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당시 일본인들이 이 이야기를 환영한 것은, 자국의 전쟁을 아시아 해방의 성전이라 강변하면서 정당화하려는 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위엄 가득한 호랑이 왕도 마침내 죽듯이 '뒤떨어진 아시아' 또한 소멸해갈 운명에 처해 있다. 그들 일본인 다수는 거기에서 '소멸의 미학'을 느끼고 애착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이 구미를 모방한 침략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는 않았던 것이다.

바이코프의 작품은 일본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읽혔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원래 러시아 제국 군인으로서, 이른바 러시아의 아시아 침략 첨병으로 만주에 온 바이코프 자신이 안고 있던 자기모순의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다. 동물학, 박물학, 지리학, 민족학 등의 학문 분야나 탐험소설, 동물소설 등의 문학 장르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런 맥락 위에 씌어진 것이라고 해서 어릴 적 『위대한 왕』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기쁨이 손상당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어릴 적에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어떤 인물에 의해 씌어지고 누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등에 대한 관심은 컨텍스트(문맥)를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은 뛰어난 문학들 다수가 그러하듯이 텍스트를 읽는 것과 컨텍스트를 읽는 것, 이 2중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혁명과 전쟁의 시대에 조국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국가'에 절망하고 '자연' 속으로 자신을 침잠시키려 했다. 그는 인간의 비소(卑小)함을 싫어했으며, 자연의 위대함에 무한한 애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전쟁 전에는 일본의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나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어디에도 갈 데가 없어졌다. 일제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은 붕괴했고, 국공내전을 거쳐 사회주의 중국이 탄생했다. 하얼빈의 백계 러시아인들은 모습을 감췄다. 바이코프는 전쟁이 끝난 뒤 한때 일본에 머물렀으나, 결국 오스트리아로 가서 1958년에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이코프가 남긴 작품은 대자연에 대한 만가(挽歌)임과 동시에 하나의 역사적 시대에 대한 증언서이기도 하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리라.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서재 속 고전>(나무연필, 번역 한승동)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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