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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 | 분단의 아픔을 딛고 휴식처로 탈바꿈한 공간

마우어 장벽은 1961년 독일 정부가 축조해 수많은 이산가족을 양산한 철의 장막이다. 45.1킬로미터의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힌 채,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9년 11월 9일, 냉전이 종식되던 날 베를린 사람들은 망치를 들고 나와 자신들을 억눌렀던 엄혹한 현실을 철거했다. 한때는 쓰레기 하치장으로 전락했었지만, 이곳은 이제 현지인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는 공원이 됐고, 주말이면 이곳에서 베를린 최대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 이화정
  • 입력 2015.10.08 13:31
  • 수정 2016.10.08 14:12

내 기준으로 영화 <슈퍼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신호등의 빨간 사람이 녹색 칸으로 내려가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도심 교통에 마비가 일어나는 장면이다. 어쩜 이렇게 기발할 수가! 그후 한동안은 신호등 기호가 진짜 사람처럼 보였다. 세월이 지난 후 베를린에서 <슈퍼맨>의 신호등에 필적할 만한 인상적인 신호등을 찾았다.

베를린의 신호등에는 베를린을 상징하는 '암펠만(Ampelmann)'이 있다. 암펠(Ampel, 신호등)과 만(Mann, 아저씨)이 합쳐진 이 신호등 아저씨는 원래 동독에서 사용하던 신호등이었다. 1989년 통일과 함께 동독의 것들이 사라지면서 신호등도 모두 철거되기 시작했는데, 1996년 서독 디자이너 마르쿠스 핵하우젠이 폐기된 암펠만 신호등을 수거해 조명으로 만들면서 이른바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동독에 대한 향수, 상징성을 더해 이후 베를린은 일부 낙후된 신호등을 암펠만으로 교체하기 시작했고, 암펠만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모자를 쓰고 경쾌하게 다리를 뻗은 채 걸어가는 암펠만의 모습이 하도 귀여워 정말이지 베를린에서는 신호 대기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내 곳곳에는 이런 암펠만을 상품화한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암펠만 캐릭터가 그려진 엽서, 에코백, 우산, 커피 잔, 문구 등 다양한 암펠만 상품을 판매한다. 그리하여 베를린에 가서 암펠만 캐릭터 상품을 사오는 건 파리에 가서 에펠탑 열쇠고리를 사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구매다. 베를린영화제에 갔던 한 영화사 대표는 회사 직원들 선물로 영화제 기념품 대신 암펠만 에코백을 잔뜩 사들고 오기도 했다. 그 결과 직원들 모두가 빨간색, 녹색 신호등 가방을 들고 한꺼번에 일렬로 서 있는 '신호등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어찌 됐건 박물관에서나 보게 됐을 암펠만이 생명을 부여받고, 베를리너들의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분단국인 한국인으로 부러운 지점이자,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베를린에서 이제 분단은 과거가 됐고, 통일은 현실이 됐으며, 베를리너들은 그 터전 위에서 일상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암펠만이 그 역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라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던 분단의 장벽이 있던 마우어 파크(Mauer Park)는 그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소다. 마우어 장벽은 1961년 독일 정부가 축조해 수많은 이산가족을 양산한 철의 장막이다. 45.1킬로미터의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힌 채,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9년 11월 9일, 냉전이 종식되던 날 베를린 사람들은 망치를 들고 나와 자신들을 억눌렀던 엄혹한 현실을 철거했다. 지금은 장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고, 벽에는 자유를 형상화한 수많은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한때는 쓰레기 하치장으로 전락했었지만, 이곳은 이제 현지인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는 공원이 됐고, 주말이면 이곳에서 베를린 최대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이곳을 그저 평화로운 공원으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은 '최대'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압도적으로 큰 벼룩시장이다. 베를린장벽 철거 때 나온 돌로 만든 기념 조각물처럼 지금 이곳의 좌표를 알려주는 아이템도 있지만, 여느 벼룩시장의 물건들은 모두 이곳의 거래 품목. 마침 입구에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는 사람을 봤는데, 알고 보니 자전거 역시 이 큰 시장의 주요 거래 품목 중 하나였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 돌아나갈 땐 지하철을 타고 갈 셀러를 생각하니 재미있다. 자기 물건을 막 들고 나온 사람들도 있고, 전문 상인들도 뒤섞여 있다. 제대로 부스를 갖추고 있다면, 임대료 33유로 정도를 내고 온 전문 상인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 상인들은 부스 옆쪽으로 그냥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판매한다.

사실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에서는 구입을 권하기보다 자제하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주고 싶다. 말한 것처럼 규모가 아주 커서 물건이 많지만, 그만큼 '득템'하기에도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박스 안에 질서 없이 뒤엉켜 있는 산더미 같은 물건들 속에서 헤매던 나는 '이러다 내가 가루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1980년대 차종을 모두 그려놓은 일러스트 책자를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으나 판매자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조금이라도 흥정을 해보려고 했다가 상인의 냉정한 표정에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곳은 가격 면에서 한 치의 자비를 베풀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살 마음이 있다면 판매자가 부른 값의 반 이상은 흥정해야 한다는 주의가 있을 정도다.

벼룩시장마다 캐릭터가 있다면,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은 좀 무뚝뚝한 아저씨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이 인기를 얻는 최대 벼룩시장인 건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마우어 파크 때문일 것이다. 벼룩시장을 휘둘러보고 온 사람들 100퍼센트가 공원에 와 있을 정도로, 두 곳은 일종의 결합 상품 같은 곳이다. 벼룩시장에 마련된 음식점에서 독일 최대의 간식인 커리 부어스트(독일식 소시지와 감자튀김에 커리 가루를 뿌린 독일 국민 간식)를 사들고 공원에 앉아, 혹은 드러누워서 주말을 즐긴다. 시간만 잘 맞춰간다면 노래자랑까지 볼 수 있다.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같은 첩보 스릴러물을 쓴 존 르 카레가 자신의 소설 속 삼엄한 배경이 되었던 장소에서 젊은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내다 팔고, 노래자랑까지 하고 있는 걸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마침 베를린 여행을 기념하여 다시 읽겠다고 꾸역꾸역 들고 간 그 책을 가방에 넣고 그곳을 찾은 나는 여행자다운 사색에 잠겼다.

물론 그런 묵직한 사고도 잠깐. 결국은 다른 벼룩시장보다 물건이 좀 비싸다 싶은 마음에 투덜투덜 불평을 하며 벼룩시장을 빠져나왔다. 풀밭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문득, 그게 다 무슨 불평일까 싶어진다. 이 공터가 지금의 '자유'를 얻기까지 치러낸 대가를 생각하자, 갑자기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곁에선 아빠와 나들이를 온 꼬마가 아까부터 내 가방을 보고 웃는다. 벼룩시장에서 득템한 인형 머리가 가방에서 삐죽 솟아나온 게 그렇게 웃겼나보다. 머쓱하게 대화를 건넸다. "이름이 뭐예요?" 꼬마 대신 아빠가 대답을 한다. 인형을 꺼내서 건네주자, 아이는 오히려 수줍어하며 피한다. 그렇게 마우어 파크에서 베를린 사람과 이야기하는 동안, 역사적 공간에서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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