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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 마을버스로 세계일주에 도전하다

  • 박수진
  • 입력 2015.10.07 11:48
  • 수정 2015.10.07 11:49

2013년 말,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정인수(47)씨는 말로만 듣던 ‘사오정’의 실제 주인공이 됐다. 딱 40대 중반이었다. 막막했다. 정신을 차리고 오랫동안 꿈꾸었던 여행가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 무렵 마침 여행작가학교에서 여행을 주도한 임택씨를 만났다. 임씨는 학교의 7기생, 정씨는 10기였다.

“폐차 처분을 앞둔 마을버스로 세계여행을 한다. 5060세대들에게 새 길을 보여주자.” 임씨가 부추겼다. 선배의 계획에 합승하기로 했다. 마침내 둘은 2014년 12월 페루에서 시작해 중남미 10여개 나라를 거쳐 지난 8월 미국 뉴욕까지 마을버스 여행의 절반쯤을 마쳤다. 임씨가 배편을 이용해 마을버스를 독일로 보내는 사이, 지난달 비행기 예약 문제로 먼저 귀국해 잠시 휴식 겸 재정비를 하고 있는 정씨와 부인을 함께 만났다. 그는 다시 출국해 현재 독일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5월 정인수(왼쪽)씨 일행이 온두라스 코판유적지 앞에 다다랐을 때 배낭여행자 알폰소가 버스를 보고 다가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4년 9월 처음으로 세계여행에 대해 운을 뗐을 때, 정씨의 부인은 “펄쩍 뛰면서 반대…”하지 않고 차분하게 동의해줬다고 했다. “세계여행을 가는 팀이 있는데 한 자리가 비었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건 기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저라고 왜 겁이 안 났을까요?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애들 키우는 일도…. 또 경제적인 문제도. 무엇보다 저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새힘(큰아들)이 아빠의 평생 직업(여행가)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용기를 얻었어요.”

후회하지 않았을까? “우리 부부가 십년 연애하고 우리 큰애가 올 삼월에 주민증이 나왔으니 거의 28년을 함께 보냈어요. 좀 지겨울 때도 됐죠(웃음). ‘잘 때만 이쁘다’고 하는 것처럼 그랬어요. 그런데 몇개월 헤어져 있다 보니 예전에 연애하던 시절 기억도 나고…. 우리 세대가 앞으로 백년은 산다는데 한번쯤 떨어져 지내보니 나름 괜찮더라구요.”

베를린 Mauer 공원에서 만난 반짝이는 청춘들.자기들끼리는 나이가 많네 적네 동안이네를 따지지만, 사십대 아저씨인 내 눈에는 모두 다 이쁜 청춘들이다. 나의 젊은 시절은 여행도 안 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컴...

Posted by 정인수 on Tuesday, October 6, 2015

-버스 여행의 일행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맨 처음 형님(정씨는 임씨를 이렇게 부른다)이 구상한 것은 5명이었다. 그게 한국 출발 때는 3명이었다가 중간에 5명으로 늘었고, 2015년 4월 파나마부터는 형님과 둘이서 여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에 마을버스 승객이었는데 지금은 (둘밖에 안 남았으니) 버스 차장쯤 되려나?”

-무슨 준비를 했고 출발 과정은 어땠는가?

“여행 모임을 통해 ‘마을버스 세계일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쳤는데 출발을 불과 한달 남기고 팀 내부 사정으로 결원이 생겨 내가 급히 합류한 것이다. 동료들은 3년 전부터 버스 운전, 간단한 정비기술, 요리 연습까지 한 상태였으나 나는 마음이 급했다. 영어는? 카메라는? 예방주사는? 떠나는 새벽까지 쌌다 풀었다를 거듭했다. 캠핑 장비, 사계절 옷, 카메라 렌즈 2개씩, 노트북, 태블릿…. 각종 공용 장비를 포함하니 이삿짐같이 많았다. 수화물 규정에 맞춰 줄이느라 굉장히 애를 먹었다. 11월24일 남미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파묻자 드디어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도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나?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란만장했다. 형님이 한국에서 보낸 마을버스 ‘은수’(임씨가 은수교통에서 따온 이름)를 페루에서부터 몰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오루로에서 우유니의 소금사막을 향해 떠났다. 길이 길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트럭이나 사륜구동차가 다니는 길이었는데 우리 ‘은수’는 마을버스였다. 해 질 시간이 되어 가는데 목적지까지는 3분의 1도 채 소화하지 못했다. 기름이 떨어져 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나가는 차는 한 시간에 한 대…. 설상가상으로 모래폭풍을 만났다. 해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모래바람 때문에 한 치 앞이 안 보였고, 마을버스 문과 창 사이로 모래가 스며들어와 숨을 쉬기 힘들었다. 지나가던 에스유브이(SUV) 차량 불빛을 보고 무작정 따라갔다. 에스유브이는 불이 켜진 건물 안으로 갔고 우리 일행도 ‘낯선 곳이라 위험하다’, ‘급하니 그냥 따라가자’ 등 의견이 오가다가 폭풍을 피하기로 하고 쫓아갔다. 그랬더니….”

(10월4일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해온 내용)

-현재 어디까지 갔는가?

“차가 고장 나서 쭉 독일 브레멘에 있었다. 수리하기까지 애를 먹었는데 서비스공장 가다가 또 퍼져서 형님과 내가 밀고 밀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10월1일 마침내 수리가 완료되었고 아우토반을 질주하여 지금 베를린이다. 이제 버스는 생생하다.”

브레멘에서 출발하던 날이었다. 임택 형님과 나는 다음 여행지를 고르느라 고민이었다. 독일 최대의 맥추축제 옥토버페스트는 일요일까지만 열리고, 독일통일 25주년 기념식은 토요일이었다. 모두 포기하기 어려운 행사였다...

Posted by 정인수 on Sunday, October 4, 2015

정인수씨의 나머지 이야기는 10월 중 사진마을 웹진에서 ‘사오정 정인수의 좌충우돌 세계일주’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여 2016년 이들의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볼리비아의 사막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 정씨는 어떤 상황과 조우하는지, ‘좌충우돌 여행기’가 펼쳐질 것이다. 정씨는 페이스북 www.facebook.com/insoo.kr에 틈틈이 실시간 여행기를 올리고 있다. 블로그는 insoo.kr를 누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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