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비, 이혜영 개인전 후기│연예인 화가들을 둘러싼 과장과 가십들

연예인 화가에 대한 과장이나 가십은 어쩌면 웃고 넘길 일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런 상황을 소비하는 이들도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니 뭐라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초심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한 연예인 화가들에게 한국의 프리다 칼로, 팝 추상 같은 과장이나 쓸데없는 가십을 갖다 붙이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과자봉지에 질소만 채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 홍태림
  • 입력 2015.10.07 07:51
  • 수정 2016.10.07 14:12

연예인이 화가로 변신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연예인이 화가가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흉이 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대중이 연예인 화가를 통해서 단편적으로나마 미술에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연예인 화가에게 덧씌워지는 과장이나 불필요한 가십들을 볼 때마다 매번 낯이 뜨거워진다. 각종 과장과 가십으로 결여된 자리를 메운 연예인 화가들의 작품은 질소로 가득 찬 과자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연예인 화가를 둘러싼 과장과 가십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왜 이러한 과장이나 가십들이 연예인 화가들을 둘러싸고 번번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렇게 추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이 화가가 되는 것은 자발적인 경우도 있겠고 특정 단체에 의해서 기획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획사나 화랑이 연예인에게 화업을 전략적으로 권한 경우라면 아무래도 작품의 가치를 과장하는 경향이 더 적나라해질 것이다. 그래야 작품의 미적 가치가 헐겁더라도 연예인 화가라는 상징가치를 지렛대 삼아 재빨리 시장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연예계의 생태를 잘 모르는 필자의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연예인 출신 화가들에게 각종 과장과 가십들이 들러붙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의문의 연장선에서 필자가 최근 관람한 연예인 출신 화가의 개인전 두 가지를 간단히 짚어 보도록 하겠다.

비비스의 뮤직비디오 <공상>

서울옥션으로 유명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뒤편에 있는 언타이틀드 웨어하우스(Untitled Warehouse)는 최근 연달아 연예인 화가의 개인전을 열었다. 가수 솔비는 이곳에서 9월 10일부터 4일 동안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솔비와 피터팬 컴플렉스의 드러머 김경인이 팀을 이룬 아트 퍼모먼스 팀 비비스(vivis)의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를 겸해 마련된 전시이기도 하다. 솔비는 이번 전시에서 비비스의 앨범 수록곡인 <공상> 뮤직비디오와 그림 20여 점을 선보였다. 그런데 솔비는 언론을 통해서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자신의 그림들이 팝 추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도대체 솔비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다뤘기에 자신의 작품을 팝 추상이라고 규정한 것일까.

뮤직비디오 <공상>의 파생물 'Me.1공상', 사진출처

뮤직비디오 <공상>의 파생물인 'Me.1공상'은 곡에서 받은 영감을 솔비가 몸과 물감을 통해서 표현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Me.1공상'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계열과 유사해서 뜨거운 추상에 속한다. 엔디 워홀의 소위 팝아트―물론, 엔디 워홀의 작품에는 추상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어서 팝 아트로만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가 힘을 발휘하던 1960년대에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추상표현주의에 대안을 구하기 위해 프랭크 스텔라처럼 선적이고 더욱 평면화된 차가운 추상화들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런데 팝 아트와 차가운 추상화의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진중권은 화가의 제스처를 지우고 생산의 익명성을 지향한다는 점, 인쇄한 것처럼 매끈한 표면을 가졌다는 점, 공간의 깊이를 지우기 위해 평면성을 지향한다는 점, 종종 시리얼한 제작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은 바 있다. 그렇다면 뜨거운 추상에 속하는 솔비의 그림은 과연 어떻게 팝과 연결될 수 있을까. 솔비는 자신의 그림이 팝 추상인 이유가 캔버스가 무대가 되고 자신의 몸이 붓이 되어 선이 그어지고 색이 표현된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한다.(링크) 하지만 이 정도 설명만으로 솔비가 자신의 작품을 팝 추상이라고 규정하기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솔비가 팝 아트와 추상의 궤적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그다지 주목할 점도 없는 작품 몇 점으로 성급하게 팝 추상을 규정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차라리 팝 추상이라고 성급히 규정하기보다는 팝 추상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솔비가 자신의 그림을 팝 추상이라고 규정한 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솔비 주변에 있는 미술 관계자들이 솔비의 작품을 언론을 통해 과장한 것이다.

이브 클랭의 Blue Women Art

구보타 시게코의 Vagina Painting

솔비 전시를 기획했던 이정권 전 서울옥션 프린트 베이커리 마케팅총괄은 미술계 관계자들이 솔비의 작품을 두고 새로운 시도라고 평했다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링크) 앞선 미술관계자들은 음악에 맞춰서 바닥에 깔린 대형 캔버스 위에서 솔비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새롭다고 보는 것인가.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솔비의 작품들은 솔비에겐 새로운 것일지도 모르나 시각예술이 그려온 궤적 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붓 대신 신체와 음악을 결합한 예는 이미 이브 클랭의 1960년대 작품 Blue Women Art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솔비가 붓이 아닌 신체로 그림을 그린 점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붓을 속옷 하의에 부착하고 백지 위에 쪼그려 앉아서 붉은색 획들을 그었던 구보타 시게코의 1960년대 작품 Vagina Painting 앞에선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좌) 이혜영,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 2015, 캔버스에 유화, 162x112cm 사진: 홍태림

우) 이혜영, <짜잔!>, 2015, 캔버스에 유화, 53x46cm 사진: 홍태림

솔비의 개인전에 이어서 언타이틀드 웨어하우스에서는 10월 3일부터 18일까지 탤런트 이혜영의 개인전이 열린다. 가나아트센터와 서울옥션의 프린트 베이커리의 후원 덕인지 이혜영의 이번 전시는 약 2주에 걸쳐 열린다. 이혜영은 이번 전시에서 가족, 반려견, 자신을 형상화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현재 이혜영의 전시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베껴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사의 기사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십 건에 이른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이혜영의 전시 소식을 다룬 기사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그림 자체에 대한 평가와 해석보다는 탤런트 이혜영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거나 작품을 불필요하게 과장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들 들어, 이혜영은 비교적 겸손하게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기사제목을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고 뽑은 언론이나(링크) 이혜영과 친분이 있는 다른 유명 연예인들이 이혜영의 전시장에 와서 축하와 격려를 했다고 보도한 언론이(링크) 그러하다. 사실 보도자료 베끼기에 급급한 기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진중한 평가와 해석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긴 하다. 그나마 이혜영의 전시에 대해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전한 것은 'enews24'의 인터뷰(링크)였다. 필자가 보기에 적어도 이혜영은 자신의 작품에 관해서 영양가 없이 떠드는 주변 관계자나 언론에 휩쓸리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자전적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나름대로 좋은 작품을 해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혜영은 자신의 주변 관계자나 언론이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필요 이상의 과장을 하거나 불필요한 가십거리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아직 전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라 차후에 이혜영의 이번 전시에 관해서 어떤 내용의 기사가 또 튀어나올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솔비처럼 팝 추상이라는 성급한 규정이나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다고 우기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억지보다는 자신들의 말대로 그림을 통해서 경험한 치유를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진솔한 마음을 부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일 것이다.

연예인 화가에 대한 과장이나 가십은 어쩌면 웃고 넘길 일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런 상황을 소비하는 이들도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니 뭐라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초심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한 연예인 화가들에게 한국의 프리다 칼로, 팝 추상같은 과장이나 쓸데없는 가십을 갖다 붙이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과자봉지에 질소만 채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만약 연예인 화가가 과장과 가십들로 부풀려진 가치들을 내면화하여 도취한다면 그것은 생산적인 욕망도 아니고 단지 허위의식에 불과할 뿐이다. 생산적 욕망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적인 욕망은 적어도 자신의 내면과 의식이 서로 채널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허위의식은 내면과 의식이 서로 채널조차 맞추지 못하는 상태다. 그다지 특별한 점도 없는데 각종 과장과 가십으로 가득 찬 작품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착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