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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6일 14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6일 14시 12분 KST

가오 지킨(?) 최후의 충신 정몽주 이야기

여말선초의 당대인들에게는, 특히 그와 최후의 담판을 한 이방원이나, 친구 정도전, 정몽주를 참모로 데리고 다니며 전장을 같이 누볐던 이성계 모두 "아니 이 친구 이제 와서 왜 이래. 같은 선수끼리 이래도 되는 거야?"하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 왜냐하면 이성계의 조선 왕조 창건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위화도회군 후에 우왕 및 창왕을 신돈의 씨라고 해서ㄷㄷㄷ 퇴위시킬 때 정몽주는 여기에 찬동한 주요 대신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방원, 정도전, 이성계 이런 사람들한테는 정몽주는 자기들이랑 같이 역성혁명(易姓革命)하는 길을 다 같이 닦아 놓고서는 막상 이성계가 마지막 작전으로 왕위에 오르려고 하니까 획 돌변해서 갑자기 고려왕조의 수호천사가 되겠다고 뜬금없이 나선 셈인 것임.

SBS

1990년대 후반에 나왔던 드라마 [용의 눈물]과 작년에 방영된 사극 [정도전] 이후에도 고려말 조선초의 극적인 역사에 대하여 더 나올 각색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제부터 SBS에서 위 시기를 다룬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첫날 시청률은 동시간대 드라마 중에서 제일 높았다고 한다. 여전히 여말선초(麗末鮮初)는 그때 못지 않은 격변기를 겪으며 고통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주인공은 배우 유아인님이 맡은 이방원(조선 태종)이라고 하고, [정도전]에서는 제목처럼 정도전이 주인공으로 상정되어 있었고,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역을 맡았던 탈렌트 유동근님이 이성계(조선 태조)역을 맡아 열연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방원, 이성계, 정도전은 말하자면 조선 왕조 개국의 주역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에 반대해서 고려 왕조편에 섰던 역사상 인물들이 이인임, 최영, 정몽주 등일 텐데 이 글은 그 중에서 고려 왕조의 최후의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를 다루어 보기로 한다(이 글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몽주역을 맡으신 존경하는 배우 김의성님의 트윗에서 힌트를 얻어 필자가 썼던 연작트윗들을 정리한 것이나 물론 김의성님은 이 글에 대하여 전혀 책임이 없으시고 전적으로 필자가 마음대로 쓴 블로그 포슷팅이 되겠다).

정몽주하면 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또렷하게 박힌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죽기 직전 이방원과의 시조 배틀 아닐까? 아버지가 절대 권력을 곧 쥐게 될 요새로 치면 재벌 2세랑 맞서서 그가 건네는 달콤한 유혹이 담긴 하여가(何如歌)를 뿌리치고, 망해 가는 고려 왕조를 부여잡고 거기 그냥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충성을 다하겠다는 단심가(丹心歌)를 읊은 사람이라니 시쳇말로 정말 흠좀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서로 속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이방원의 명을 받은 조영규는 당시 선지교라 불리던 다리에서 말을 타고 귀가하던 정몽주에게 철퇴를 날린다. 정몽주의 숨통이 끊어짐으로써 고려 왕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마치 일본이 명성황후(민비)를 죽였을 때 조선 왕조가 사실상 막을 내렸던 것처럼. 그래서 조선에서조차 군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맹세한 그 정몽주를 두고 그를 충신의 전형으로 기리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말선초의 당대인들에게는, 특히 그와 최후의 담판을 한 이방원이나, 친구 정도전, 정몽주를 참모로 데리고 다니며 전장을 같이 누볐던 이성계 모두 "아니 이 친구 이제 와서 왜 이래. 같은 선수끼리 이래도 되는 거야?"하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 왜냐하면 이성계의 조선 왕조 창건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위화도회군 후에 우왕 및 창왕을 신돈의 씨라고 해서ㄷㄷㄷ 퇴위시킬 때 정몽주는 여기에 찬동한 주요 대신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방원, 정도전, 이성계 이런 사람들한테는 정몽주는 자기들이랑 같이 역성혁명(易姓革命)하는 길을 다 같이 닦아 놓고서는 막상 이성계가 마지막 작전으로 왕위에 오르려고 하니까 획 돌변해서 갑자기 고려왕조의 수호천사가 되겠다고 뜬금없이 나선 셈인 것임.

그러니 괄괄한 이방원 같은 친구는 아니 도대체 여태까지 손발 잘 맞춰 놓고서 이제 와 갑자기 딴지냐 하는 볼멘소리를 한 끝에 부하를 시켜 철퇴로 죽인(쿨럭;) 것이고, 전쟁터에 같이 데리고 다니며 재주 아꼈던 이성계도 아들 이방원이 일을 저지른 것을 꾸짖으며 정몽주하고 나는 무릎 맞대고(응?) 얘기 나누면 다 풀리게 되어 있는데 네가 경거망동했다고 한탄하기도 한 셈이며, 특히나 같이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함께 연구했던 친구 정도전도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몽주가 당대의 국제적 흐름에 어두운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당시 한반도에 살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몽골의 원(元)나라가 망하고 한족(漢族)의 명(明)나라가 대두하는 14세기 후반 동아시아 국제정세 흐름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당대의 일급 지식인, 그리고 그 무렵 이 땅에 수입된 최신 학문인 성리학에 대해서라면 손꼽히는 깊이와 견식을 보여준데다가 신흥무장 세력인 이성계와는 같이 전장에서 호흡하기까지 한 고래심줄보다 튼튼했을 연줄까지 가진 정몽주가 왜 때문에 망해 가는 고려왕조 구출이란 무망한 일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고려 말기의 왕들이 정몽주 같은 신하들의 충성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었나 하는 질문에는 누구라도 고개를 가로젓게 될 것이다. 최씨 무신정권 시절 최고 권력자 최충헌이 꼭두각시 같은 왕 7명인가를 마구 갈아치울 때 그 중 하나였던 신종(神宗)의 7세손이라는 조금 수상쩍어 보이는 족보에 이성계랑 사돈관계이고 왕 될 생각은 꿈도 안 꾸다가 왕이 되어 통곡(쿨럭;)하다시피 했다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 이 공양왕을 정몽주는 지키려다가 철퇴에 맞아 선지교 아래에서 죽고 그가 죽은 후 그 다리 이름은 대나무가 그 자리에서 났다고 해서 선죽교가 된다.

공양왕은 정몽주가 죽은 후 이성계한테 서로 동맹(응?)을 맺어 서로 보살펴 주자는 어이없는 제안을 했고(왕과 중신이 무슨 동맹을???) 어지간하면 한동안은 그냥 두고 보려했던 이성계도 어이가 없어서 폐위시킨다. 이런 한심한 왕을 지키기 위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라는 장엄한 시조를 읊으며 죽는다는 말인가? 이런 허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인생이 있는가?

공양왕 앞의 창왕과 우왕은 어떠한가? 이들이 신돈의 씨란 얘기는 조선을 세운 이성계랑 신진사대부들의 조작 혐의가 짙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정몽주 자신도 그들의 폐위에 찬성하였듯이, 우왕과 창왕의 왕재(王才)로서의 자질은 함량 미달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솔까말 창왕은 너무 어려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고, 우왕은 요동정벌을 명하면서도 불안하다며 최영을 자신과 함께 후방인 평양에 붙잡아 놓는 어이없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이성계가 조민수랑 손잡고 위화도 회군을 할 기회를 준다. 최영이 이성계랑 조민수를 감독했다면 과연 이성계가 모반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겠는가?

정몽주는 우왕, 창왕, 공양왕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자들이란 것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군왕이 덜 떨어지고 충성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잘 아는 상황에서 정몽주의 충성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가 충성을 바친 "임"은 결국 공양왕이나 그가 퇴위에 적극 찬성하였던 우왕이나 창왕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정몽주의 충성의 대상은 구체적 고려왕들이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 추상적인 이상형으로 존재한 고려라는 나라인가? 글쎄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정몽주는 스승 이색이랑 창왕 시절 명나라에 대해 조선에 감국(총독)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명 태조 주원장이 이걸 거절해서 그렇지 그가 수락했으면 고려는 중국의 일부가 될 판이었다. 이성계만 막을 수 있다면 나라가 망해도 상관 없다는 식이었는지;; 정몽주의 이런 관점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 밖에도 정몽주는 창왕이 명에 입조(入朝)할 것을 추진하기까지 한다. 입조는 번국(藩國)의 왕이 천자의 조정에 직접 가서 천자를 알현하는 일! 공식적으로 완전히 중국의 철저한 속국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고려가 거란족 요의 침입을 세 번이나 견디면서도 끝내 거부했으며, 몽골의 원한테는 여덟 번의 침략을 견디면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39년을 항쟁하고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난 후에야 겨우 결심한 것이 입조이다, 그리고 그 입조가 이뤄지자마자 고려는 원의 완벽한 속국으로 굴러 떨어져 80년간 사실상 원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런데 정몽주는 이성계를 막기 위해서라면 창왕이 명에 입조해 명나라 천자의 귀염(우웩-)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음(그렇게 되면 창왕은 명 황제의 권위로 이성계를 누를 수 있다는 기대). 다행히 이 역시 실현되지 않았고 비록 정몽주의 시대가 전근대이기는 하나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나라를 중국에 더 강하게 예속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역성혁명을 막아야 한다는, 정몽주의 이런 행보는 솔직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정몽주 이 사람 이인임과 같은 권문세가에 토지겸병(土地兼倂)으로 기존 고려 왕조에 무슨 꿀발라 놓고서 만년 이문보던 사람도 아니었다. 아시다시피 정몽주의 사회적, 사상적 배경은 친구 정도전 같은 성리학을 신봉하는 신진사대부였다. 또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도 최영이랑은 달리 몽골이 세운 원의 퇴조는 확실하고 한족의 명의 세상이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때문에 정몽주는 썩어빠진, 가망 없는 핵노답 고려 왕조를 부여잡고, 자신의 계급적, 사상적, 학문적, 경험적 신조를 모조리 배반하고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로부터 등을 돌리고서는 목숨까지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정몽주가 미련하고 꽉 막힌 사람이어서? 그것도 아닐 것 같다. 당대에 어렵기로 소문난 중국 명나라 건국자 태조 주원장(그에게 죽어나간 중국의 문신들만 얼마인던가....묵념;;)과의 교섭을 맡은 것도 정몽주였고, 정몽주는 고려나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과는 달리 일본도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얕잡아 보지 않고 그들과도 진지하게 교섭에 임해 당대 일본인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었다. 그뿐인가, 정몽주는 문약에 빠진 지식인 타입도 아닌 것이 다름 아닌 이성계를 참모로 보좌해 전장을 누비면서 이성계로부터도 신임을 얻었음. 요새로 치면 정말 스펙 쩌는 인재로 잘 나가는 신흥 대기업에서 이미 채용하겠다는 사장의 확약까지 받아 놓은 정몽주군;; 아는 동기생들도 그 쪽에 훨씬 많은데, 산소호흡기 단 것이나 다름 없는 사채 끌어 쓰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빛바랜 망해가는 기업에서 안 나간 셈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건 이인임도 가고, 최영도 가고, 조민수도 가고(응?) 우왕도 창왕도 사라진 상황에서 정몽주가 기울인 마지막 고려왕조 살리기 프로젝트는 하마터면 거의 성공할 뻔했다는 점! 정몽주는 베프 정도전도 (정치적으로) 거세(뭐래니?)했고, 이성계가 다쳐서 기동을 못하는 틈을 타 역성혁명을 거의 막을 뻔한 상황까지 연출해 낸다. 정몽주가 죽지 않았다고 한들 이미 썩어 문드러졌던 고려왕조가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정몽주가 버티고 있는 한 이성계파의 꿈도 무망해지는 것도 분명했다고 할까. 뒤에 더욱 분명해지지만 목적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면 아버지의 일급 모사꾼인 정도전이든, 형제들이든 가리지 않고 도륙해ㄷㄷㄷ 여말선초 권력투쟁의 최종 승자가 된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해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죽여야 한다고 본 것은 그러니까 정확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선의 패를 들고 최악의 선택을 하였으나 거의 성공할 뻔하기까지 했던 정몽주의 내면의 심리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치밀하게 사료를 읽고 교차검증하며 그가 남긴 포은집으로 그의 사상과 감정의 궤적을 좇는 것은 나 같은 아마추어로서는 무망한 일이고, 기껏해야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들을 드문드문 보거나, 이병주선생님의 역사 소설 [정몽주][정도전]을 날림으로 읽고 내려 본 나름의 썰을 한 번 풀어 보겠다.

정의를 독점한 듯 여기며 고려왕조를 때려부수고 새 세상을 열겠다는 동료 신진사대부들의 모습에서 정몽주의 날카로운 후각이 실은 저들도 또 하나의 억압자들에 지나지 않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뜻을 횡령해 그 의사를 거침없이 조작해 낼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정몽주가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신진사대부들의 사상적 배경이 된 성리학에 정통했고 그들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정몽주였기에 그들이 내세운 대의라는 것이 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포장하려는 또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정몽주는 명징하게 인식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 정도전, 남은, 이방원은 고려가 무너지자마자 자기네들끼리 왕자의 난에 휘말려 죽고 죽였고 정도전, 조준 등의 신진 사대부들이 시행한 알량한 토지개혁인 과전법(科田法)도 그저 권문세가의 것이었던 토지들을 신진사대부로 손바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백성을 위한다며 위화도회군까지 한 자들이 나중엔 앞장 서서 요동정벌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었으니 그쯤 되면 철저한 자기 모순과 부정이라 할 만하다.

명민한 정몽주는 나중에 조선을 끝내 망친 이들 사대부들의 썩어 빠진 헛된 명분론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 위험천만 야심천만한 군주 후보자(이성계/이방원) 같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부들이 아닌 약한 군주라고 할지라도 (여기 정몽주 자신의 도저한 자부심이 나오지만^^) 자신 같이 사심 없고 맑은 신하의 보좌를 받는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그의 절친 정도전도 꿈꾸었었지만, 이방원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조선이 계속되면서도 수양대군에 맞선 성삼문, 박팽년 같은 집현전 학사/사육신들이나, 중종 때의 조광조 같은 이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신권(臣權) 우선주의랄까 군주와 신하들의 협치주의 같은 것의 모델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즉 정몽주는 죽었고 그가 막고자 했던 조선왕조는 들어섰지만 정몽주가 실현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믿음은 조선왕조 내내 형태는 달리했지만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이기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이겨야만 한다는 속된 말로 "가오를 지키고자" 했던 단.한.사람(!)의 충신 얘기에 모두들 매료된 것이 아니었겠나? 답답하고 짜증 나고 출구 없어 보이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시대, 이 땅에서도 정몽주처럼 우직하지만 국민만 바라보는 단.한.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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