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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은행 구린내'가 진동하는 이유

귀뚜라미 대신 고약한 은행 구린내가 도심 가을의 ‘전령사’ 자리를 차지한 지는 오래다.

지난 1일 세찬 가을비에 강풍까지 불자 서울 도심 곳곳의 가로변이 ‘은행 폭탄’을 맞았다. 횡단보도나 지하철역 입구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선 행인들 발길에 으깨진 은행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홍콩 관광객 콴(60)은 “길거리에서 개똥 냄새가 난다. 냄새도 심하고 거리도 지저분해져서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길 양쪽 가로수가 모두 은행나무인 삼청동 일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시민들은 인도에 짓뭉개진 은행을 피해 걷느라 까치발을 하기 일쑤다. 잡화점에서 일하는 윤아무개(23)씨는 “가게 앞은 직접 치우지만 냄새가 바람을 타고 가게 안까지 들어온다”며 코를 쥐었다. 종로구청은 “강풍이 분 뒤로 삼청동, 광화문 열린마당 부근, 사직로 등 은행나무가 많은 곳에서 악취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은행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 흡수·제거 능력이 좋고 병충해에도 강해 가로수로 많이 쓰인다. 서울시내 가로수 29만3389그루 중 은행나무는 11만4060그루(38.9%·2014년)로 단일 수종으로는 가장 많다. 이 중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는 3만376그루(10.4%)다.

악취는 은행 껍질에 있는 ‘빌로볼’과 ‘은행산’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김동엽 성균관대 교수(조경학)는 “관리가 쉽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을 운치도 더하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쓸 때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 수나무로 심었어야 한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묘목이 커서 열매를 맺기 전까지는 암수 구분이 매우 어려운 수종이어서 암나무 가로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올해는 특히 가뭄으로 은행의 낙과 시기가 빨라진 것도 악취를 키운 원인이다. 악취 민원이 예년에 견줘 2~3배 늘었다는 동대문구청 쪽은 “보통 10월 후반부터 은행 털기 작업을 하는데, 올해는 가뭄으로 낙과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횡단보도·지하철역 주변 은행나무를 해마다 300그루씩 수나무로 바꿔 심기 시작했다. 올해는 각 구청에 은행 채취장비 예산을 지원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은행나무 악취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지난봄 일부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걸 억제하는 약품을 시범적으로 뿌렸다. 대구광역시도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150그루 교체에 2억50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광주광역시는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은행을 합법적으로 채취하는 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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