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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보다

유기농업만으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농 직거래를 활발히 하고 있으며, 유기농 생산자를 늘리기 위해 단체 내에 생산자협의회와 자문위원회를 두고 자발적인 유기농업 교육과 생산품질 보증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단체의 주요한 특징은 농민들은 경작에만 전념하고 단체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 및 판매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태국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보다

지난 9월 6~11일 한살림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태국의 여러 단체를 방문했다. 우리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 사이의 차이점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은 퍽 뿌듯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농사를 그토록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과 농사짓는 이들의 얼굴에 입혀진 즐거움과 보람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글 \ 사진 박영순(한살림성남용인생협 용인지부장)·남성훈(한살림연합 기획부 정책기획팀장)

농민들은 경작에 전념, 농업단체에서 홍보 및 판매

눈을 감으면 아직도 태국의 수도 방콕의 뜨거운 햇살과 옅은 비 내음이 선연히 떠오른다. 지난 9월 6일 방콕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각으로 오후 8시. 오토바이의 매연과 습한 더위는 첫날부터 우리를 지치게 했다.

둘째 날 새벽 방콕에서 3~4시간 정도 차를 타고 차층사오 주에 있는 대안농업네트워크(AAN)의 지부인 유기농업단체 '사남 차이 켓'을 방문했다. 사남 차이 켓은 환경을 해치지 않고 지속적인 농업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로 생산자 총 140명 중 130명이 국제유기농운동연맹(아이폼), 유럽연합(EU), 캐나다 정부로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아 약 162ha(400ac)를 경작하고 있다.

또 유기농업만으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농 직거래를 활발히 하고 있으며, 유기농 생산자를 늘리기 위해 단체 내에 생산자협의회와 자문위원회를 두고 자발적인 유기농업 교육과 생산품질 보증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단체의 주요한 특징은 농민들은 경작에만 전념하고 단체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 및 판매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그 방식을 보면 첫째, 도농교류 모임을 통해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대면 홍보 둘째, 생태 학습 및 교육을 하는 자체 학교를 통한 소비자 참여이다. 또 유기농업 관련 리서치 및 학술연구 지원, 다른 조직과 연계한 네트워크 사업을 통한 판매 홍보를 한다고 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자체 교육장에서 오전에는 조직 구조 및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후에는 농지를 직접 돌아봤다. 먼저 주요 여성활동가 중 한 명의 농가를 방문했는데, 1만 3천223㎡(4천 평)가 넘는 농지에 바나나·망고 등 다양한 과실나무와 향이 강한 잎채소를 섞어짓기하는 형태였다. 이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기르는 작물 가짓수는 112가지, 그중 계절별로 시장에 판매하는 작물은 30가지 정도였다. 특히 쌀 7가지는 유기농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일 년 내내 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여러 작물을 섞어짓기가 가능하겠지만, 병해충을 예방하고 계절에 따른 안정적인 소득을 위한 경작 방식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이곳의 풍경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농장의 모습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가들을 전부 둘러본 후에는 방문 단체에서 준비해 준 여러 열대과일과 간식으로 피로를 풀었다. 달콤한 사탕수수로 만든 떡은 한국의 꿀떡과는 다르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해 준 유기농 밥상은 자극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수수한, 마치 한살림과 같은 매력이 있었다.

이튿날에도 사남 차이 켓을 방문했다. 어제 하루를 함께 보내서일까? 그곳이 마치 내 집인 것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이날에는 토박이씨앗 보존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로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특히 우리가 준비해 간 소개자료를 통해 한살림운동을 알리는 시간이 마련되어 더 의미있었다.

위쪽 사진은 꼭 에도이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생산물 판매장, 아래쪽 사진은 토박이씨앗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꼭 에도이 공동체는 대기업에 맞서 농지 확보와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끼리 생산 물품의 일부로 기금을 조성해 서로를 돌보고 있다.

물 대기 쉬운 농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나눠 지어

9월 9일, 태국에 도착한 지 사흘째에는 '꼭 에도이 공동체'를 방문했다. 이곳은 캄보디아 국경지역에 있어 농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대기업과 소농들이 각자 농지를 무단점거하여 서로 경작지를 다투는 게 무법지대와도 같았다. 엊그제 방문했던 사남 차이 켓 농장들이 도시농장이라면 여기는 화전민이 농사짓는 듯한 전쟁터의 느낌이었다. 특히 농지 불법 점거로 인해 정부로부터 전기나 수도 시설을 지원받을 수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공동체를 한 바퀴 돌며 설명을 들었는데, 농지 대부분이 천수답이어서 가뭄이 들면 더욱 농사짓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물을 끌어오기 쉬운 농지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나누어 경작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꼭 에도이 공동체는 대기업에 맞서 토지 확보와 환경 보전,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산과 토박이 숲·먹을거리 보호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곳이었다. 장기간의 투쟁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했고 리더를 신뢰하지 못해 떠나간 동료들로부터 상처도 받았지만, 생존을 위해 농지를 조금씩 넓혀 가고 있으며 태국의 전국 빈민운동 조직인 '가난한 자들의 의회(AOP)'와 연대투쟁하여 현재 거주하는 곳과 인근의 농지는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경작을 보장받았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러나 합법적인 농지 양도가 아니고 대기업과 계속 분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으로 보였다.

한편, 공동체 구성원끼리 생산 물품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복지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점거한 농지를 공평하게 경작할 수 있도록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내부 규칙을 정하는 등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물품 가격은 공정하게 매기고 이익은 사회에 환원

9월 10일에는 아소께운동(1960년대 방콕 인근에서 수행하던 포티락 스님이 수행자들과 더불어 방콕 시내에서 태국 불교 개혁을 위한 노동수행 운동체 설립)을 하는 여러 네트워크 조직의 잉여 생산물 판매법인인 '팔랑분' 회사를 방문했다. 이 회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가에 상품을 공급하고 무료 나눔을 실천하는 곳이었다. 팔랑분 회사는 몇 가지 가격 책정 원칙이 있는데 우선 저렴해야 하고, 불필요한 비용이 들어가지 말아야 하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역 무료급식소 등을 통해 사회 환원을 하는 것이다. 신념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나눔의 정의에 부합하도록 세운 원칙이 돋보였다. 또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하지만 굳이 외부 인증을 받지 않고 네트워크 내에서 자급하는 점도 독특했다.

그 외에 '그린넷' 협동조합도 방문했는데, 이곳은 유기농을 주제로 태국에서 처음 생긴 사회적기업에 가까웠다. 주요 업무는 유통채널을 개설하고 유기농 소농을 촉진하는 것이다. 또 공정거래 원칙에 따라 활동하는데, 그 원칙은 '물품 가격은 반드시 기술과 노동력의 대가로 매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여러 곳들은 각각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모두 신념에 따라 일하는 운동가들이었다. 한살림도 초기에 운동가들의 헌신을 통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운동성을 잃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배움을 얻었다.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로 시작한 연수에서 활자나 영상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득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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