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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12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0일 14시 12분 KST

국경을 넘어 | 쌍둥이 도시, 단둥과 신의주

북한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단둥은 핵심적인 곳이며 잠재적인 보물창고이다. 이곳은 상품, 돈, 정보, 그리고 지식이 북한 안팎으로 오가는 주요한 통로이다. 압록강 건너 강둑에 위치한 북한의 신의주와 함께 단둥은 북한이 중국, 나아가 세계와 연결되는 주요 항로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쌍둥이 도시인 단둥과 신의주를 만든 것은 백여 년 전 일본이 시작한 철로 공사다.

'평범한' 중국 도시는 어떻게 북·중무역의 중심이 되었나

겉으로 보기에 단둥은 중국에 있는 수많은 중간 규모 도시 중 하나로 특별할 것이 없다. 20세기 초중반에 형성된, 여느 도시와 같은 슬럼가가 있으며 급격히 성장하여 서구의 중산층을 모방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 중국의 신흥 부유층(nouveau riche)을 끌어들이는 고층빌딩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단둥은 핵심적인 곳이며 잠재적인 보물창고이다. 이곳은 상품, 돈, 정보, 그리고 지식이 북한 안팎으로 오가는 주요한 통로이다. 압록강 건너 강둑에 위치한 북한의 신의주와 함께 단둥은 북한이 중국, 나아가 세계와 연결되는 주요 항로이다.

단둥은 여러모로 평범한 도시이다. 상당히 잘못된 통계로 보이지만, 24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시인 곳이 본래 행정구역상 군이었다. 1965년 시로 승격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시로 편입된 곳 대부분은 사실상 교외지역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도시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1,280킬로미터가 넘는 북·중국경 지대에서, 단둥은 북한과 중국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마치 계획된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선양과 북경, 그리고 북한의 수도 평양을 잇는 축에 입지한 것이다. 이는 철도 공사 부설에 있어서도 최적의 위치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쌍둥이 도시인 단둥과 신의주를 만든 것은 백여 년 전 일본이 시작한 철로 공사다. 1904년에서 이듬해까지 일본 정부는 서울에서 평양을 경유하여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철로를 건설했다. 1909년 일본은 선양에 이르는 초기 협궤 철로를 재건해 표준 협궤 철로로 완성했다. 이 철로 건설로 한국은 당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던 중국의 철도망과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철길은 두 도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철도망 구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일본은 중국의 북동지역과 한국을 잇는 철도 건설에 대규모로 투자했으며 이는 이 지역에서 아직도 활발히 이용되는 철도망을 만들어냈다.

일본 기술자들은 1909년에서 11년까지, 넓고 폭이 900미터에 이르는 압록강을 건너는 기찻길이 깔린 철교를 건설했다. 1937년 만주가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고, 일본의 두 식민지 사이를 잇는 철도 교통량이 크게 증가하자, 일본은 불과 몇 십 미터 상류 지역에 기존 철교와 평행으로 다리를 하나 더 지었다.

1909년부터 11년까지 건설된 다리는 1951년 여름 미국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미군은 중국 쪽 강둑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고의적으로 북한 쪽 강둑을 조준했다. 이로 인해 남쪽, 즉 북한 쪽 다리들은 사라졌으나 중국 쪽 다리는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졌고,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재단장 되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한편 나중에 지어진 다리는 한국전쟁 중 망가졌다가 복구된 후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북한과 중국 사이 무역양의 절반 이상이 오가는 이 다리는 '북중우의교'라고 불린다. 북한으로 오가는 화물의 75퍼센트가 이 다리를 통해 수송된다는 발표도 있었다. 랴오닝성에서 나온 통계는 이 수치가 약간 과장됐음을 시사한다. 실제 수치는 60퍼센트 내외지만 여전히 상당한 규모이다.

단둥에 위치한 한국전쟁 기념비 | 사진출처: Azchael

신의주-단둥 잇는 신압록강대교, 조만간 개통 예상

현재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철로는 총 세 곳이다. 하지만 단둥과 신의주의 연결고리는 중국의 투멘과 북한의 남양, 중국의 지안과 북한의 만포를 연결하는 다른 두 철로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른 두 철로가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고 북한과 중국의 낙후된 지역에 있어 수송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북중우의교는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물동량이 많지 않은 이 다리가 여전히 북중 무역에서 상당히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의 무역 부문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북중우의교는 트럭과 기차가 모두 오가는 다리이다. 하지만 도로폭이 좁기 때문에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이 다리의 통행 방향은 두 시간마다 바뀐다. 먼저 북한 트럭들이 중국으로 들어가고, 두 시간 뒤 중국 트럭들이 북한을 향해 남쪽으로 움직인다. 교량이 노후화 하여 트럭의 최대 중량은 20톤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20톤 트럭의 경우 시속 5킬로미터 이상으로 운행할 수 없다. 이는 하루 동안 양 방향으로 통행할 수 있는 트럭이 고작 300에서 500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쪽을 오가는 운송수단은 사실상 기차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열약한 도로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다리 뿐 아니라 파이프 역시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한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중국은 전략적 고려에 따라 북한에 싼 가격으로 연료를 제공했다. 평행한 두 파이프라인은 1975년에서 1976년까지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 놓였으며 여전히 북한의 주요한 에너지 공급 통로가 되고 있다.

어쨌든 북중우의교는 증가하는 수송물량을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2010년 중국과 북한은 기존 다리에서 몇 킬로미터 하류에 새로운 현대식 다리, 신압록강대교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2010년 섣달 그믐날 착공식이 이루어졌으며, 2014년 즈음엔 완공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신압록강대교는 3킬로미터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길이로 기존의 다리보다 길다. 총 네 개의 차로가 있으며 매일 2500대의 차량이 통과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신압록강대교는 아직 개통하지 못했다. 건설 작업이 끝난 지는 조금 지났지만 북한 쪽 부분에서 다리는 급작스럽게 끊겨있으며, 도로 등 다른 교통망과 이어져 있지 않다.

완공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추측에 맡길 수밖에 없다. 소문에 의하면 처음에 중국은 북한이 자국 도로와 다리를 잇는 연결 도로를 짓는 조건으로, 중앙 재정을 투입해 공사 비용을 보조했다. 북한 측은 결국에는 중국이 연결 도로까지 지어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2013년 제 3차 핵실험 이후 양국 관계에 위기가 닥치며 상황은 악화되었다. 중국 정부는 모든 투자 기획을 동결했고 현재의 교착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압록강대교가 끝내 완공되지 않을 리는 없다. 단둥과 신의주라는 쌍둥이 도시는 평양과 북경을 잇는 가장 짧은 길에 위치해 있기에, 상당 기간 동안 중국과 북한을 잇는 핵심 연결 지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두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공사가 용이한 해안 평야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현재 단둥은 북한 관광객과 기업으로 넘쳐나고 있다. 단둥은 북한 밖에서 일어나는 북한의 무역과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근시일 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며, 다리는 조만간 개통될 것이다.

글쓴이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Nikolaevich Lankov)는 1980년대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입니다. 이 글은 최하영이 번역하였으며, 메인 사진의 출처는 Prince Roy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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