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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가 죽었다. 가슴이 찢어진다

어사는 나를 깨물기는 고사하고 할퀸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사는 그저 사랑을 원했고 사랑을 주었다. 내가 어제 동물 병원에 어사를 두고 오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내게 '안녕'이라고 야옹하기까지 했다(즉, 엄마, 왜 한 번 더 안아주지 않고 나를 두고 가요? 란 뜻이다).

ⓒJody Thompson

고양이들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들이 있다. 고양이는 귀엽다. 우리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고양이는 우리를 사랑한다. 무조건적으로.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해주는 포옹, 소리 지르기, 가르릉거리기, 야옹거리기, 문지르기는 정말 너무나 좋다. 당신이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고양이는 턱을 비비고 야옹거리는 횟수를 늘리고 당신 옆에 찰싹 붙는다. 고양이들은 당신의 기분을 아는 것 같다. 고양이가 장난감을 잡으려 묘기하듯 껑충 뛸 때, 느긋하게 몸을 쭉 펼 때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양이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경외감이 든다. 고양이들은 작은 털북숭이 몸을 한 세라피스트들이다. 고양이는 그저 동물일 뿐이니, 사실 이건 의인화하는 것이다. 놀라운 동물이지만, 그래도 동물은 동물이다.

새끼 고양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싸구려 배변판이 아니라 근사한 배변판을 사왔다는 이유로 텔레비전 뒤에 똥을 눈다. 나이가 들면 당신이 척추 수술을 받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데 전원 플러그 속에 정어리를 통째로 토해서 집 전체 전기를 끊어지게 만든다. 당신은 며칠 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당신은 진공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고양이 털이 날린다고 욕한다. 고양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가 떠나면 끔찍하게 슬프다.

어제 세상을 떠난 내 사랑하는 어사 이야기를 해보겠다.

죽기 하루 전의 어사

나는 고양이를 원하지 않았다. 개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NME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하고 밤에는 공연을 보러 다녀야 했다. 개처럼 인간에게 의존하는 동물을 키우는 건 개에게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파트를 산 직후였고 아파트에 뜰이 딸려 있었다. 시골 출신인 나는 늘 동물을 키웠었다. 그때 내 상사가 자기가 구해서 키우는 버마 고양이가 새끼들을 낳았다고 했다. 나는 가서 한 번 보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년 동안 동물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고, 동물들에게 익숙했다. 털북숭이 새끼 고양이 몇 마리를 본다고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난 새로 태어난 고양이들 중 절반을 데려왔다. 새까만 다시, 얼룩고양이 어사였다. 두 마리 모두 내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었고, 어사의 색깔이 거의 얼룩무늬 개처럼 멋진 것이 내 안에 숨은 심미가를 흐뭇하게 했다. 앞발 하나는 오렌지색이고 하나는 새까맣다는 게 참 좋았다. 두 마리 다 아름다웠다. 언제나 조금 개 같은 면도 있어서, 내가 매일 집에 올 때마다 내게 인사하러 문으로 달려왔다.

내 최초의 고양이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마리 다 내가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고양이였고, 나는 흑백 털을 가진 동네 길고양이의 아기를 가져 준 걔들의 엄마 트리클에게 엄청나게 감사했다. 헤픈 녀석.

어사와 다시가 생일을 맞아 간식을 기다리는 모습

어사는 정말 별나고, 우습고 사랑스러웠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어사는 귀여워했다. 어사와 다시는 한 배에서 태어나 똑 같은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아주 달랐다. 어사는 사람이 들어올리는 걸 늘 싫어했다. 다시는 숄처럼 어깨에 두르고 배를 문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사는 자기에게 관심과 애정을 덜 보이는 것 같으면 예뻐하달라고 슬쩍 다가와 소리지르는 걸 더 좋아했다. 어사는 늘 내 곁에 있는 나의 꼬마 얼룩 그림자였다.

용감한 다시에 비해 어사는 더 불안해 했고 존중 받았다. 귀엽고 바보 같은 동시에 고압적인 표정을 지었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진지하게 했다. 내가 욕조에 들어가 있는데 어사가 욕조에 빠지면, 어사는 '난 일부러 그런 거야, 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또한 엄청나게 탐욕스러웠고 굉장히 게을렀기 때문에 사냥은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새를 한 마리 잡았는데, 스스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침실에 가지고 들어오자마자 놔줘버렸다. 그래서 엄청나게 웃긴(사실은 웃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

새끼 고양이 시절의 어사와 다시

부드럽고 바보 같았던 어사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은 이게 전부다. 어사는 나를 깨물기는 고사하고 할퀸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사는 그저 사랑을 원했고 사랑을 주었다. 내가 어제 동물 병원에 어사를 두고 오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내게 '안녕'이라고 야옹하기까지 했다(즉, 엄마, 왜 한 번 더 안아주지 않고 나를 두고 가요? 란 뜻이다).

아직 새끼였을 때 다시가 내 침실에서 쥐를 잡아서 싸워 죽인 적이 있었다(아직도 다시 입술에 그때의 흉터가 남아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어사가 다음에 뭘 가져올지 조심하라고 했다. 어사가 다시에게 지기 싫어할 테니 말이다.

그때까지 어사는 지렁이를 잡아와 내 침대에 놔둔 게 고작이었다. 나는 일어나 보니 이불 위에 지렁이가 잔뜩 널려있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다음 날 밤 어사가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 문으로 들어왔고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불을 켰다. 어사가 가져온 것은 나뭇잎이었다. 아주 큰 나뭇잎이었지만, 그래도 나뭇잎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어사에게 보답으로 큰 선물을 주었다.

어사는 좋은 책을 좋아했다. 아니, 그 위에 앉는 것을.

사실 내가 앉으려고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앉았다

한 번은 15일 동안 없어진 적이 있었다. 워낙 집순이였기 때문에 나는 어사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사방팔방 찾으러 다니고, 전화를 걸고, 포스터를 붙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정원일을 하고 있는데 다시가 옆 집 헛간 밖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2주 전에 내가 부탁했을 때 이미 헛간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어사는 너무 겁이 많아서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어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웠지만 헛간을 통째로 비우고 나서야 튀어나왔다. 살이 빠져 있었지만 그것 외에 고생의 흔적은 없었다. 어사가 예전에 죽음에 가까이 갔던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내 사랑스러운, 정이 많고 바보 같은, 아름다운 어사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다. 아무데나 끼어들기 좋아하던 어사는 내 낡은 파카의 헤진 아랫부분에 머리를 넣은 적이 있다(밑단이 떨어져 나갔고 아랫부분을 묶는 곳이 드러나 있었다). 파카가 어사의 머리를 감싸자 어사는 너무나 겁이 나서 파카를 매단 채 고양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배트고양이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정원을 질주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어사가 괜찮은지 보려고 달려나갔지만 울타리를 넘어간 뒤였다.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이웃집들 문을 두드리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어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직도 파카를 두른 채였지만 말이다. 어사가 수퍼히어로 놀이를 한 날이었다.

아름다운 어사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항상 친구가 되어줬다

하지만 어사의 수퍼파워는 어제 다 떨어졌다. 14년 반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어사의 몸에서 암이 잔뜩 발견되었다. 어사는 나의 동의 하에, 마취제를 먹은 채 수술 테이블에서 영영 눈을 감았다. 그게 가장 인도적인 선택이었다. 고맙게도 어사는 며칠밖에 앓지 않았지만, 탐욕스러운 고양이가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건 모든 걸 다 설명해 준다. 지난 주말에 어사가 그랬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눈곱을 떼 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젠 차갑지만 아직도 부드러운 어사의 털을 쓰다듬은 다음, 제거 불가능한 종양이 어사의 몸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X레이 사진을 보았다. 수의사 톰은 어사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는데 왜 지금까지 증상을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어사가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잘 자. 어사

빈 고양이 바구니와 목끈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것보다 나쁜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했음을 알고 있다.

14년 반 동안 정말 버릇없고 사랑받는 고양이로 살다가 이렇게 고통없이 빨리 눈을 감는다는 것은 사실 정말 행복한 거라 나는 생각한다. 동물을 키울 때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동물이 아주 오래 살지 않으리라는 것, 잃게 되면 엄청나게 마음이 아프리라는 것. 하지만 즐거움, 사랑, 함께 지내는 시간, 기쁨은 마지막에 찾아오는 고통, 그들이 남기고 가는 거대한 구멍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동물들이 자신의 삶을 우리와 함께 해준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미시 이디엇, 플러피 버니, 폭시 레이디 등으로 불렸던 어사 톰슨이 편히 잠들길.

2001. 3. 8. ~ 2015. 9. 28.

허핑턴포스트US의 My Cat Just Died and It Hurts Like Hel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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