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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1일 14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01일 14시 08분 KST

설명충 ·진지충·맘충, 우린 어쩌다 모두 벌레가 되었나?

스피드웨건

공덕동에 사는 여성 기자 A 씨는 아침엔 지하철을 타느라 '출근충'이 되고, 일과 시간에는 기사를 쓰느라 '설명충'이 되고, 저녁이 되면 어린이집에 맡겨둔 아이를 조금 늦게 데려오는 바람에 '맘충'이 된다.

TV를 보며 남편이 웃자고 한 말에 토를 달았다가 '진지충'이 되고 야식으로 탕수육을 시켜 먹을 땐 '부먹충'이 된다. 카프카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대한민국에 있는 이 수많은 벌레, 다 어디서 나왔을까?

1. 설명충

다른 사람이 사용한 유머나 어려운 단어를 굳이 설명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다수가 모르는 것을 설명해 주었을 경우에는 인터넷 게시판의 '스피드웨건'처럼 사랑을 받지만, 모두가 아는 것을 지루하게 설명해주는 경우 '극히 혐오스럽다'는 비난을 받는다. 남성과 여성 중에는 남성이 이런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아 영어권에서는 작년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충'이라는 단어가 작년까지만 해도 모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에게 쓰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충’은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 이용자들을 ‘일베충’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점차 확산됐다. 고인인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고, 특정 지역을 혐오하는 ‘막장’ 성향이 드러나자 이들에게 ‘벌레’ 딱지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일베 이용자들도 자신을 가리키는 ‘일베충’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며 벌레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하는 등 현재에 비해서는 반감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경향신문(8월 22일)

2. 진지충

하연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온) '스폰서' 모르느냐는 질문에 '저 스폰서 없어요'라고 대답해 귀여운 진지충으로 등극했다.

진지충은 유머러스한 상황에 진지하게 반응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섞인 단어다.

맥락에 맞지 않게 밑도 끝도 없이 진지한 말을 하는 사람을 칭한다. 이들은 SNS, 친목 모임, 수업시간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따위의 말로 시작하여 대화의 맥을 국수 면 끊듯이 끊어 놓는 것이 종특. 눈치와 코치를 소쿠리 째 삶아먹은 진지함이, 보는 이들에게 ‘극혐’을 유발하여 지금의 ‘충’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고. -대학내일(8월 11일)

진지한 사람을 충으로 보는 경향은 사회적 신뢰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에 생긴 하나의 트렌드다.

시스템으로서의 사회적 신뢰기반이 와르르 무너졌고 기존의 모든 권위가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걸 봐온 세대에서 이런 경향이 번지고 있다.(중략) 희극 중에서도 용서와 포용이라는 속성을 가진 해학보다는 공격성을 가진 날카로운 비꼼이 유행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진지한 설명과 해명은 듣기에 짜증만 부르는 비겁한 변명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보면 설명충이라는 말도 나옴 직하다. -서강학보(김휘영 문화평론가)

3. 맘충

나무 위키에 있는 맘충 설명 대화.

일부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아이 엄마들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혐오 단어. 신조어를 소개하는 '나무 위키'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달려 있다.

일부 개념 없는 이기적인 엄마만을 뜻하는 말’로 ‘아이를 빌미로 민폐를 끼친다든지 주로 주부인 엄마들이 많은 결집력 강한 부모 커뮤니티에서 단체로 여론을 조성한다든지 따위 깡패짓을 하는 막장의 경우’에 쓰인다. -나무위키

일부 엄마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긴 했다는 의견도 있다.

왜 유모차를 안 피하냐며 소리를 지르거나 카페 메뉴를 써놓은 칠판에 애가 낙서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어머, 참 잘했어요”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준다고 자장면 양 좀 ‘낭낭하게(넉넉하게의 틀린 표현)’ 달라고 했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며 해당 음식점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아이디 ‘재연맘’의 ‘낭낭하게’라는 말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시사인 라이브(8월 25일)

그러나 이 단어의 쓰임 자체가 여성 전반을 일반화 시킨다는 건 큰 문제다.

김치녀 역시 일부 ‘개념 없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강조했지만 젊은 여성 전반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었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김치녀는 소비문화와 연결된 된장녀와 달리 여성 전체를 특정한 개념으로 쓰이는데 미묘하게 모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었다. 그 모성을 특정한 게 맘충이다. 모성이 없어도 괴물이 되고, 있어도 괴물이 된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만 놓고 보면, 너무 자기 자식만 중요시해도 맘충, 방치해도 맘충, 어머니의 정체성을 거부해도 맘충이 된다”라고 말했다. -시사인 라이브(8월 25일)

또한,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계층에만 혐오를 표출하는 것 역시 문제다.

기득권층에 대한 용례는 드문 편이다. ‘대통령충’이나 ‘재벌충’과 같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자라고 여기는 대상을 중심으로 비하와 혐오의 정서가 표출되는 것이다. -경향신문(8월 22일)

그 외에도 '노인충', 찍먹충', '부먹충', '꼰대충', '급식충', '출근충' 등의 수많은 신조어가 가뜩이나 힘들게 헬조선에서 겨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벌레로 만들고 있다.

이런 냉소와 혐오의 단어들이 만들어진 이유를 청년층이 겪고 있는 실업과 과도한 경쟁에서 찾아야 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호주의 한 사회학자 잭 바바렛은 자신의 책 <감정과 사회학>에서 서방 세계의 노동자들이 1970년대의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과 해고의 광풍을 겪으며 실망과 냉소주의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이 겪고 있는 실업과 과도한 경쟁, 저임금 등의 경제적 문제는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네트워크 상에서 냉소와 혐오가 교차하는 태도가 지배적인 분위기로 자리잡게 만든 요인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정치권의 무능, 경제적인 불안을 마주하면서 생긴 불만을 여러 방향으로 표출하는 한편, 상대방을 배려할 여유는 잃어가는 분위기가 지금 사태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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