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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

내가 회사에서 보낸 20대 시절이 있었듯이 지금의 회사엔 20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을 대면할 때면 종종 '나의 20대는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결코 닮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몇몇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 나는 이들에게 어떤 30대일까? 어떤 선배일까?'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존중 받는 게 중요하다는 건 그 입장이 돼봐야 안다. 권위만 내세우면 되레 권위는 손쉽게 허물어진다. 그저 회식 1차 자리에서 당장 꺼져줬으면 하는 꼰대로 전락할 뿐이다.

  • 민용준
  • 입력 2015.10.01 07:30
  • 수정 2016.10.01 14:12
ⓒgettyimagesbank

직장을 옮겼다. 20대 직원이 많은 회사였다. 낯설었다. 한편으론 흥미로웠다. 하지만 확실한 각오는 필요했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배 나온 아저씨도 되지 말자는 것.

지금까지 9년 동안 기자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해왔다. 기자라는 직업은 타업종에 비해 이직률이 높다. 내게도 한달 전에 이직한 지금의 회사가 벌써 네 번째 직장이다. 그리고 기존에 다녔던 회사와는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물론 회사마다 환경이 다르고 문화도 다른 것이 당연하겠지만 사실 이런 회사는 처음이다. 사원 모두에게 동등한 존중심을 당부하는데 이를 테면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이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나누고 이름 끝에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길 권한다. 아무래도 굉장히 젊은 직원이 많아서인지 기존에 몸담았던 회사들과 정서적인 온도차가 존재한다. 회사 구성원의 과반수 이상이 20대다. 확실히 젊고 발랄하다. 20대 구성원의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의 정서가 사무실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모바일 앱 기반의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회사인데,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스마트폰에 보다 친밀한 20대가 자연스럽게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틀어놓은 노동요를 듣게 된다. 대부분 아이돌 노래부터 힙합, EDM 등 요즘 유행하는 음악들이다. 주도하는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틀면 다들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분위기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이런 분위기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딱히 거부감을 느낀 건 아니다. 단지 필연적으로 생소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니까. 이전까지 근무했던 회사들의 사무실 분위기가 경직된 수준까진 아니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자유분방한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것이 20대가 많아서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기보단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확연히 살아난다는 건 확실하다. 다만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생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편함보단 낯섦에 가까운.

극복할 수 없는 세대차가 두드러지는 순간도 적지 않다. 한번은 회의 중에 "여자친구가 인기가 많아요"는 말을 들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여자친구 인기가 대체 누구에게 많다는 거죠?"라고 물었다. 다들 '까르르' 웃었다. 정말, 까르르. 요즘 인기 몰이 중인 걸그룹 이름이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하하하. 학창시절에 젝키가 홍콩사람이냐고 물었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그렇게 또 하루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나도 이제 또 하루 멀어져 간다는 걸 느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어린 20대 팀원들과 직장 동료들이 즐비한 사무실에선 말조심할 필요가 있다. 노땅 취급 받지 않으려면. 물론 내게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숙지할 만한 열정은 식은 지 오래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일이다.

최근 이직 후 처음으로 회사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10살 가까이 혹은 그보다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20대 직원 몇 사람과 차례로 대화를 나눴는데 그들은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궁금증을 묻기도 했고, 나에 대한 모종의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들 중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른 나이에 무언가를 구상해서 사회로 진입한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내가 이루지 못한, 앞으로도 결코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경험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인지라 그들에겐 나이와 비례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회사 동료에게 나는 팀장이라는 직책을 넘어서 어른이었다. 팀장이란 지위보단 나이가, 경험이 더 많은 형이자 선배였다. 그래서 '어떤 상사가 될 것인가'라는 고민보다도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가 회사에서 보낸 20대 시절이 있었듯이 지금의 회사엔 20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을 대면할 때면 종종 '나의 20대는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결코 닮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몇몇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 나는 이들에게 어떤 30대일까? 어떤 선배일까?' 그렇다. 누군가를 이끌고 동기부여를 줘야 하는 입장에 섰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때론 당혹스러운 일이 된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존중 받는 게 중요하다는 건 그 입장이 돼봐야 안다.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권위만 내세우면 되레 권위는 손쉽게 허물어진다. 그저 회식 1차 자리에서 당장 꺼져줬으면 하는 꼰대로 전락할 뿐이다. 지혜와 품위가 있는 어른으로서 튼튼한 권위를 건축해야 한다.

그 비결이 아이돌 이름을 외우는 것은 아닐 게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대화에, 그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섣불리 조언하고 충고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들이 내게 조언을 구하고, 충고를 원할 때가 아니라면 말이다.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 입장이라 착각해서도 안 된다.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이질감만큼이나 그들 또한 내게 이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만큼 동등한 호기심을 품기 마련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며칠 전에 가졌던 술자리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한 20대 직원은 내게 셔츠핏이 좋다며 칭찬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더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배 나온 아저씨가 되지 말자'는 다짐을 추가했다. '최선을 다해서 꼰대가 되지 말자'는 다짐 옆에.

* GRAZIA KOREA에 게재된 칼럼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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