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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피하고 싶은 '비혼주의자' 7명의 이야기

ⓒgettyimagesbank

직장인 A(36·여)씨는 비혼(非婚)주의자다.

미혼(未婚)은 '원래 해야 하지만 아직 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비혼은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더욱 주체적인 의미다. 여성학계를 중심으로 사용되다 십수년 전부터는 대중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A씨에게도 명절은 역시 고역이다.

명절에 마음 편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제수를 마련하는 어머니와 올케가 눈에 밟혀 일단은 고향 집에 내려간다. 하지만 '결혼은 언제 할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는 친지들의 '공격'을 감내해야 한다.

A씨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흘려 듣지만, 어머니가 속상해하는 모습은 역시 마음에 걸린다.

25일 추석을 앞두고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길을 서두르고 있지만, 비혼자나 미혼자들에겐 또다시 '인내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 셈이어서 발걸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다.

외동아들인 B(36)씨는 결혼 문제 때문에 친척들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몇 해 전 명절에 한 친척이 '빨리 결혼해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자 울컥해 한마디 뱉었다가 말다툼까지 하게 됐다.

B씨는 "1∼2년 전까지는 부모님도 결혼에 대해 압박을 했는데 이제는 잠잠해지셨다"며 "결혼 문제 때문에 다툰 친척들도 어쨌든 추석이 되면 집에 모이긴 하지만 서로 데면데면하다"고 말했다.

1남 6녀 중 여섯째인 대학원생 김소연(38·여)씨는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한 데다가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김씨는 "명절에 고향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탓에 불편했지만 이제는 다소 무뎌지고 있다"면서도 "친지들을 만나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게 된다"고 푸념했다.

친척들의 '십자포화'를 견디다 못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비혼자들도 많다.

윤모(27·여)씨는 명절에는 가능하면 친척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윤씨는 "위로 결혼하지 않은 사촌 언니가 셋이나 있어 아직 나에게 쏟아지는 잔소리는 덜한 편이지만, 앞으로 언니들이 결혼하면 그 화살이 나에게 쏟아질 것 같아 벌써 답답하다"며 "명절에는 일단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돕고서 카페로 피신한다"고 말했다.

아예 명절에 친척이 모이는 고향에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박현정(34·여)씨는 올해 추석에도 큰집에 가지 않는다. 대신 친구들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박씨는 "큰집도 서울이라 들리는 데 부담은 없지만 친지가 결혼에 대해 묻는 것이 너무 꺼려져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인 유정현(33)씨는 직장을 명절에 내려가지 않는 구실로 내세웠다.

유씨는 "사실 급할 것도 아닌데 또 결혼하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이번 추석연휴 내내 근무를 자청했다"며 "기왕 추석에 일하는 김에 수당이나 많이 벌어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명절 당일 영업을 하는 곳이 별로 없기에 아예 술집이나 카페를 빌려 친척들의 결혼 압박을 피하는 '피란 파티'를 개최한다는 공지가 띄워지기도 한다.

직장인 김모(35·여)씨도 추석에는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지 않고 비슷한 미혼 친구들과 집에 모여 파티를 할 계획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명절에는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이 훨씬 세져요. 회사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집에 내려가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실 부모님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친구들과 모여 편하게 먹고 마시고 놀며 해방감을 느끼며 지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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