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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버린 제1야당,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새정연에 대한 실망감의 원인은 당내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그런 투쟁을 하는 중에도 해야 할 일은 하고 챙길 일은 챙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데 있다. 제1야당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닥쳐오면 새누리당의 집권이라는 '나쁜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이 결국 '덜 나쁜 것'인 자신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 김종엽
  • 입력 2015.09.24 12:21
  • 수정 2016.09.24 14:12
ⓒ연합뉴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은 번잡하고 짜증난다. 비주류의 당대표 퇴진 요구, 그것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시도, 안철수 의원의 혁신안 비판, 혁신안의 중앙위원회 통과, 당 중진 일부의 불참 속에서 이루어진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의 대표 재신임,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투표 철회,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안철수 의원 나름의 혁신안 제기에 이르는 사건의 연쇄는 요약하기도 싫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중에 한겨레신문은 9월 12일 사설에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을 보면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에서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지옥이 떠오른다"고 썼다.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이지만 솔직한 심정의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과정이 모두 다음 총선과 관련된 새정연 의원들의 이해득실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 안다. 문제는 그런 당내 분란이 댓가 없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기간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 시도가 한국노총의 '협력'(노동자들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라 할 만한)을 얻으며 강한 추진력을 얻었지만, 몇몇 의원이 산발적으로 거기에 저항하려 했을 뿐 그런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새정연이 당 차원에서 활동하지는 못했다. 민생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말을 그렇게 여러번 했는데, 민생 문제 중의 민생 문제에 두발 두손 다 놓고 있다시피 한 것이다.

꼬여버린 제1야당,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제1야당이 제 밥상 걱정에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예는 이 외에도 여럿이다. 필자가 속한 교수집단의 사정을 예로 들자면, 지난 18일 전국교수대회가 열려 경향각지의 교수 천여명이 여의도에서 집회를 했지만 새정연 당직자들 가운데 누구도 이 행사에 부응하며 대학개혁 문제에 개입하고 발언하지 않았다. 교수 천여명이 모인 것이 별것 아닐 수도 있다만, 그것의 정책적 함의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행사는 마땅히 받을 만한 정치적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된 책임은 상당부분 교수들 자신에게도 있지만 야당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새정연의 책임도 크다.

이런 말이 번연히 존재하는 당내 갈등 속에서 피하기 어려운 당내 권력투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새정연에 대한 실망감의 원인은 당내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그런 투쟁을 하는 중에도 해야 할 일은 하고 챙길 일은 챙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데 있다. 제1야당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닥쳐오면 새누리당의 집권이라는 '나쁜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이 결국 '덜 나쁜 것'인 자신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이 좀더 의식적이고 명민해진다면,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1야당 내부의 갈등을 혐오스러운 소란으로만 느끼지 말고 어디까지가 불가피하고 어디부터 문제인가를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다음 총선을 앞두고 정당으로서의 새정연은 정당 공천자의 득표와 당선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새정연의 의원들이나 당원협의회장 혹은 그 외의 출마 희망자들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이 두가지 목표는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이 점에서는 새정연만이 아니라 새누리당도 그리고 정의당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일치하고 또 괴리되느냐는 정당마다 다른데 그것을 일치시켜나가며 내부 협력도를 높여나가는 정도가 바로 정당 역량의 수준이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듯이 두 목표 간의 불일치가 클수록 갈등은 심각해질 것이다. 계파 현상 또한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계파란 출마 희망자들이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당내의 다른 성원들 일부와 상호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네트워크들의 형성에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나 정치자본을 많이 축적한 중진들이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새정연의 문제는 두 목표 간의 불일치가 크고 성원들 간의 신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인적 청산 또는 중진의 2선 후퇴 내지는 격전 예상 지역구 출마 등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당 차원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이들이 최소한 상징적 보상은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고, 그것이 새정연의 핵심 문제인 셈이다.

이렇게 정당 득표의 극대화와 출마 희망자의 당선 가능성 극대화라는 두 목표 사이의 괴리를 제1야당 스스로 줄여나갈 수 없을 때, 야권의 총선 승리 견인차는 결국 야권 지지자 집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발상에 회의적인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의 안철수 '현상'이 보여주었듯이 야권 지지자 집단의 여론과 의지는 정치변동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들이 더 전략적으로 일관성있게 행동한다면 새정연의 내부 협동을 견인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분열을 막고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이와 관련해서 필자는 세가지 점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첫째, 다음 총선에서 패배해도 대선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총선/대선 주기를 고려하면 15대 총선(1996)과 이어진 대선(1997)을 참조할 수도 있다. 그때 야권은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대선에서는 승리했다. 하지만 당시의 외환위기나 여권 분열 같은 변수가 내년과 후년에 일어나리라 가정할 수 없다. 오히려 지난 19대 총선(2012)에서처럼 총선 패배가 야권 내의 자중지란을 키우고 그것이 대선 패배의 중대한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야권 내 대선주자들과 의원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의 비협동적 태도의 심리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총선 패배 후 대선 승리라는 위험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둘째, 다음 총선에서 야권의 승리를 위해 협동하지 않은 모든 정치인에 대해 응징하겠다는 일관된 의지가 야권 지지자 집단 안에 광범위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협동하지 않는 이가 대선주자라면 그에게 대선 경선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그가 국회의원이라면 다음 총선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여론을 확산해나가는 것이다. 당연히 야권 승리를 위해 협동함으로써 그로 인한 개인적 손실을 마다하지 않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보상하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이 경우 야권 지지자 집단이 할 수 있는 보상이란 상징적인 것일 뿐이겠지만 그것이 작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야권의 총선 승리가 이루어지면, 그것을 현재 야권 지도부의 성과로 독점하게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협동한 이들은 모두 그 성과를 공유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리고 협동한 이들이 대선주자라면 그들에게는 총선 이후 모두 동등한 출발선에 서게 하겠다는 여론의 확산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현재의 야권 지지자 집단은 여권 지지자 집단에 비해 대체로 학력이 높은 중위 이상의 소득집단이다. 이 집단은 정치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능력과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가혹할' 정도의 비판을 가하며 지지 자체도 늘 유보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가 말한 '구경꾼 민주주의'(한겨레 2015.9.21)의 태도로부터 벗어나고, 또 야당 내 계파들의 자기방어 논리를 따라 분열되지 않는다면 야당의 변화를 견인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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