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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들의 둥지, 배트케이브 | 배트맨 비밀 기지의 변천사

헛간에 배트플레인과 배트모빌까지 은밀하게 숨길 수 있는 비밀 공간, 탈것이 신속하게 출동하기 위한 자동문, 비행기와 자동차를 지상으로 나르기 위한 윈치(권양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등이 보강되면서 저택과 헛간을 잇는 지하 통로의 단면도가 완성된다. 거기에 지금껏 배트맨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면서 획득한 수많은 기념품을 보관하는 기념품실(트로피 룸), 비밀 실험실 등이 포함되면서 지하 통로는 그냥 좁은 길이 아닌 거대한 동굴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고, 배트맨 시리얼 영화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마침내 1944년에 '배트케이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 이규원
  • 입력 2015.09.26 06:54
  • 수정 2016.09.26 14:12

[배트맨데이 기념 특별 연재 1] 박쥐들의 둥지, 배트케이브

─배트맨 비밀 기지의 변천사

1939년 《디텍티브 코믹스》 27호로 데뷔해 7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 온 대중문화 역사상 최고의 캐릭터, 배트맨. 이제 그를 둘러싼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는 만화책을 넘어 현대의 영웅 신화로 불릴 정도로 문화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이에 배트맨의 창조주 DC 코믹스는 2014년부터 '배트맨 데이'를 정해 다양한 이벤트로 팬들이 이 슈퍼 히어로의 탄생을 직접 축하할 수 있게끔 배려하고 있다. 이 글이 실리는 9월 26일 열릴 2015 배트맨 데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무대를 넓혀, 한국에서도 온•오프라인을 망라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배트맨 팬이라면 DC 유니버스 최고의 빌런 조커의 귀환을 알리는 NEW 52 시리즈의 신간 『배트맨 3: 가족의 죽음』 발매가 가장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자신만이 배트맨의 진정한 '가족'이며 자신과 함께해야 배트맨이 진실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커가 고든 국장부터 집사 알프레드, 로빈, 나이트윙, 배트걸, 레드 후드, 레드 로빈까지 모든 배트 패밀리를 습격하는 내용이다. 조커의 목표가 된 이들은 배트맨의 비밀 기지 배트케이지에 모두 모이는데, 『가족의 죽음』에서 배트케이지는 배트맨, 배트 패밀리, 조커가 대치하며 사건이 절정에 이르는 장소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기존 배트맨 만화책의 설정과 세계관을 적절히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NEW 52를 반영하듯, 『가족의 죽음』의 배트케이브도 첨단 기기 향연장으로서의 모습과 함께 (『브루스 웨인의 귀환』 등에서 나온 박쥐를 숭상하는 고대 부족의 이름을 딴)미아가니 폭포가 등장하는 등 파고들면 들수록 커지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날의 배트케이브가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영향을 준 작품들을 시대별로 살펴보도록 하자.

배트맨, 배트 패밀리, 조커. 배트케이브에서 만나다.『가족의 죽음』본문에서

(사진 제공: 세미콜론)

위장용 헛간과 저택 사이를 이어 주던 비밀 통로

배트케이브가 언제 탄생했느냐에 대해서 위키피디아 등의 정보를 살펴보면 1942년 배트맨 만화와 1943년 배트맨 시리얼 영화 등을 최초로 꼽는데, 사실 배트케이브 탄생의 연대기는 좀 더 이른 시대로 거슬러 간다. 배트케이브의 전신이라고 할 '지하 통로' 혹은 '지하 미로'는 이미 1939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1939년 《디텍티브 코믹스》 33호에서는 브루스 웨인이 저택의 비밀 문을 통해 밖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렸다. 1940년의 《배트맨》 3호, 4호 등에서는 배트맨과 로빈이 지하 통로를 통해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헛간으로 이동, 그곳에서 배트플레인을 타고 범죄 현장으로 출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1941년 《디텍티브 코믹스》 47호에서 헛간 바닥에 존재하는 비밀 계단이 공개되면서 지하 통로를 '배트맨의 둥지로 이어지는 비밀의 미로'라고 처음 표현했다.

이후 《디텍티브 코믹스》, 《월드 파이니스트 코믹스》, 《배트맨》(배트맨의 단독 시리즈) 등 배트맨이 등장하는 여러 만화에서는 통로를 통한 출동과 귀환 장면이 마치 우리가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특촬(특수촬영)물에서 흔히 보듯이 하나의 공식처럼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이 헛간에 배트플레인과 배트모빌까지 은밀하게 숨길 수 있는 비밀 공간, 탈것이 신속하게 출동하기 위한 자동문, 비행기와 자동차를 지상으로 나르기 위한 윈치(권양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등이 보강되면서 저택과 헛간을 잇는 지하 통로의 단면도가 완성된다. 거기에 지금껏 배트맨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면서 획득한 수많은 기념품을 보관하는 기념품실(트로피 룸), 비밀 실험실 등이 포함되면서 지하 통로는 그냥 좁은 길이 아닌 거대한 동굴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고, 배트맨 시리얼 영화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마침내 1944년에 '배트케이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공식처럼 쓰이는 출동 장면의 예? 배트맨 1966년 TV 드라마 시리즈 오프닝에서

(https://youtu.be/3bS8zv0Gg5I)

자연 동굴로 규모가 확대되다

자연 동굴로서의 배트케이브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48년. 배트맨이 탄생하고 10년째 되는 해였다. 《배트맨》48호에서 울프 브란도라고 하는 죄수가 감옥을 탈출해 웨인 저택에 숨으려고 하다가 우연히 비밀 문을 열면서 배트맨의 지하 동굴을 발견한다. 브란도는 자신을 잡으려는 배트맨과 로빈을 피해 동굴 수로를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가다 수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는데, 여기서 브란도의 시신이 고담 이스트 리버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담강과 배트케이브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1953년에는 헛간과 윈치를 통하는 방법 외에 자연 동굴을 통해서 바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차량 출입구가 소개되어 정식 통로의 하나로 정착된다. 1954년 《디텍티브 코믹스》205호에서는 브루스 웨인의 서재에 있는 괘종시계를 통해야 배트케이브로 내려갈 수 있으며, 케이브 자체도 단층이 아닌 지하 2층 규모 시설로 확장된다.

오늘날과는 다른 최초의 동굴 발견 스토리

1954년 《디텍티브 코믹스》205호에서는 괘종시계와 2층 형태의 배트케이브 외에도 동굴이 언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 웨인 저택은 브루스 웨인이 어린 시절부터 살던 저택이 아니었으며, 그가 배트맨 활동을 위해서 구입한 장소였다. 웨인은 애초부터 신분 은폐를 위해 헛간을 이용할 생각으로 인근에서 버려진 헛간이 있는 이 저택을 선택, 구입하였고 헛간을 살펴보던 중에 우연히 바닥이 꺼지면서 지하의 박쥐 동굴에 떨어졌다. 그는 박쥐에 대한 공포를 느끼거나 혼란에 빠지는 일 없이 침착하게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 올라왔고, 혼자 힘으로 동굴을 비밀 기지로 꾸며 가던 중에 로빈을 만나 같이 배트케이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배트케이브 발견 스토리를 최초로 다룬 《디텍티브 코믹스》205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Detective_Comics_Vol_1_205?file=Detective_Comics_205.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육해공 출입구를 갖춘 비밀 기지로 발전하다

1968년 《배트맨》 203호에 소개된 단면도에서는 헛간과 비밀 통로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지고 완연한 지하 기지로서의 배트케이브가 모습을 드러낸다. 웨인 저택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지하 1층에는 실험실과 배트모빌 차고 및 정비실이 있으며, 배트모빌은 곧바로 위장문을 통해서 외부로 출입할 수 있다. 지하 2층에는 작업실과 트로피 룸, 범죄자 정보를 검색하는 컴퓨터, 그리고 배트보트가 대기 중인 지하수로 선착장이 있다. 한편 지하 2층에서는 웨인 저택 바로 옆에 솟은 봉우리의 비밀 기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데, 그곳에는 배트콥터와 배트플레인 격납고가 있으며, 이 장비들의 출입구에는 안개 분사장치가 있어서 드나드는 모습이 외부에 보이지 않게 해 준다.

1950년대까지 이어진 헛간 버전의 배트케이브와 1960년대의 헛간 없는 배트케이브는 하나가 진화된 모델보다는 각각 DC 세계관에서 말하는 지구-1, 지구-2 식으로 별개의 평행 우주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40~50년대 골든에이지 시대에 해당되는 지구-2 배트맨이 헛간 버전, 구 배트맨을 대체한 새로운 평행 세계에 해당되는 지구-1의 배트맨이 육해공 위장 출입구 버전이라고 구분하면 된다.

1960년대 배트케이브의 단면도

(이미지 출처: http://vignette4.wikia.nocookie.net/batman/images/1/1d/Batcave_Plan_01.jpg/revision/latest?cb=20090610175253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배트케이브를 폐쇄하고 고담 시내로 들어온 배트맨

1969년 《배트맨》217호에서 딕 그레이슨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웨인 저택을 떠나자, 브루스 웨인 역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면서 저택을 버리고 고담 시 중심부의 웨인 파운데이션 빌딩으로 거처를 옮긴다. 기존의 배트케이브 역시 폐쇄되었으며 대신 웨인 파운데이션 빌딩 지하층이 역할을 대신한다.

배트모빌 역시 웨인 파운데이션이 의심을 받지 않도록 먼 거리에 있는 창고 하나가 출입구 역할을 하고, 창고와 빌딩 사이를 잇는 지하 통로가 따로 존재한다. 최상층의 펜트하우스에서 최하층의 배트케이브까지는 비밀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동이 가능했다.

이 기간에 배트맨과 로빈은 필요할 시에만 웨인 저택의 배트케이브를 간간이 이용하다가 1982년 《배트맨》348호에서 완전히 웨인 저택으로 되돌아간다. 그들이 되돌아간 기존 지구-1 버전의 배트케이브는 1980년대를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그 디자인을 유지한다.

국내에 출판된 『DC 코믹스 앤솔로지』(시공사) 130쪽에 나오는 1971년작 배트맨 《악마의 딸》에서 고담 시 펜트하우스와 웨인 저택을 오고가는 배트맨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배트맨 앤솔로지』(세미콜론) 157쪽의 1976년작 《튕겨나온 명중탄》을 보면 배트맨과 로빈이 웨인 저택의 배트케이브에서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웨인 저택의 배트케이브에서 출동하고 있는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앤솔로지』본문에서

(사진 제공: 세미콜론)

평행 세계 정비 후 현대의 배트케이브까지

그러다 1985년에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통해서 DC 유니버스의 서로 엇갈려 있던 여러 평행세계가 하나로 대통합되고, 주요 히어로의 탄생기 역시 '시크릿 오리진'이라는 이름으로 차례차례 재정비된다. 그 와중에 1989년 《배트맨: 추락하는 사나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웨인 저택, 배트케이브의 발견과 관련된 설정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웨인 가문이 대대로, 브루스 웨인이 어린 시절부터 살고 있던 집이 웨인 저택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뛰놀다 박쥐 동굴에 떨어져 트라우마를 얻는 브루스 역시 이 시기에 추가된 이야기다. 《추락하는 사나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영화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손꼽힌다.

1994년 《디텍티브 코믹스 제로》에서는 젊은 브루스 웨인이 알프레드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어릴 적에 빠졌던 박쥐 동굴 탐험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로 내려간 브루스는 거대한 지하 공간을 발견하고는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고, 알프레드와 함께 케이브를 완성해 나간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를 거치면서 토대를 다진 배트케이브 발견의 이야기는 꾸준한 변형을 거쳐 2013년~2014년 스콧 스나이더가 배트맨과 고담의 시작을 재해석한 『제로 이어』에서 또 한 번 새로이 진화하니 비교해 보기 바란다. 브루스가 탄성을 질렀던 야생의 거대한 배트케이브가 지닌 웅장함과 거침없음은 먼저 이번 『가족의 죽음』을 통해 생생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며:

배트케이브의 백미, 트로피 룸

아들에게 자신의 트로피 룸을 보여 주고 있는 배트맨.

(사진 출처: http://vignette3.wikia.nocookie.net/batman/images/2/22/Batcave01.jpg/revision/latest?cb=20111231052153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배트케이브에서 많은 배트맨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소는 아마도 트로피 룸일 것이다. 고담을 배경으로 초능력자보다는 현실적인 범죄자들과 싸움을 벌이는 배트맨의 기념품실에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는 무엇이고 조커 카드, 또 거대 동전은 무엇일까? 수많은 기념품들 중에 대표적인 이 세 가지는 흥미롭게도 뉴52 배트맨 시리즈에서 차례대로 만나볼 수 있다.

우선 『올빼미 법정』 앞부분 배트케이브 장면에서 입을 떡 벌리고 등장하는 공룡 상은 배트맨과 로빈이 1946년 《배트맨》35호의 무대가 된 '공룡 섬'이라는 곳에서 로봇 공룡을 물리치고 획득한 전리품이다. 아마 배트맨을 가지고 '쥬라기 공원' 영화 시리즈를 만들었으면 딱 그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어쨌든 『올빼미 법정』과 『올빼미 도시』에서 티라노의 입처럼 입을 떡 벌리고 배트맨을 집어삼키려는 것은 저택 아래의 배트케이브보다 더 거대한 고담의 미로다.

조커 카드는 영원한 맞수이자 닮은꼴인 배트맨과 조커가 벌이는 일생일대의 대결을 그린 『가족의 죽음』의 메인 테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동전은 본래는 1947년 《월드 파이니스트 코믹스》30호에서 동전을 상징으로 삼는 조 코인과 우표 수집 박람회를 배경으로 싸운 결과 획득한 아이템이었는데, 『제로 이어』에서 그 유래가 새롭게 바뀌었음은 물론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도구로 이용된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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