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터뷰] 은수미 의원이 말하는 노동개혁: 해고가 더 쉬워지는 나라

  • 김병철
  • 입력 2015.09.23 14:00
  • 수정 2016.02.24 11:23

정부는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극단적으로는 이런 일도 가능해진다.

1. 회사가 취업규칙을 변경해 인사평가제도를 상대평가로 전환했다. 부서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최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월별, 분기 평가를 거친 후 저등급이 쌓인 A씨는 해고됐다. 그런데 해고는 몇 달 뒤 B씨 그리고 C씨로 계속 이어졌다. 회사가 인사발령 등을 통해 저등급을 받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다.

2. 회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어차피 정년은 법으로 60세까지 보장되는데, 임금이 50% 삭감되자 대상자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어서 별다른 대응을 못했다. 예전엔 반드시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노동개혁" 후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고 홍보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은 워낙 내용이 난해해서 해설이 필요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났다. 은 의원은 정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출신 노동전문가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해고가 더 쉬워지는 나라#노동개편 #은수미의원 ( 자세히 보기 : http://huff.to/1OQXqqb )

Posted by 허핑턴포스트코리아 on 2015년 9월 23일 수요일

임금피크제 ≠ 청년고용

-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한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TV광고에 많은 이들이 수긍하는 것 같다.

= 정부는 TV광고에서 임금피크제로 일자리 13만개가 늘어난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사기다. 정부의 근거자료를 분석해보니 최대 8000여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가 정년까지 일한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사실 임금피크제와 고용은 상관이 없다.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2016년부터 60세로 연장됨)을 잘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다.(정년이 늘어나니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제도) 정부가 거기에 갑자기 청년고용을 붙여서 '프레임'을 만들었다.(부모세대가 희생해 청년 일자리 창출)

노사정 합의문을 보면 '청년고용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고만 되어 있다. 홍보와 달리, 기업은 청년을 고용할 의무가 없다. 노력만 하면 된다. 청년고용할당제 같은 의무제라도 있어야 기업이 청년 고용을 늘리지 않겠나.

[노사정 합의문 일부]

"노사정은 청년고용의 공간을 확대하여 세대 간 상생고용 생태계를 조성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특히, 임금피크제를 통하여 절감된 재원을 청년고용에 활용하도록 한다."

- 야당이 이 프레임을 깰 수 있겠나. 초점을 보면, 정부여당은 청년 고용인데, 야당은 일반해고다. 접근이 다르다.

= 가장 아쉬운 게 저쪽은 '원포인트'로 당정청이 일관되게 두 달 동안 떠들었다. 홍보비에만 20억원을 썼다. 그런데 우리 당은 혁신안과 공천권을 가지고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

만약 당 지도부와 모든 의원이 집중해서 "재벌 고용할당제로 청년 고용 늘리자"는 프레임을 만들었다면 저쪽의 해고를 지적하면서, 우리 대안을 말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그 면에서 야당이 제대로 못한 건 맞다.

노동시장 개편 요약해보자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편'의 핵심 쟁점은 행정지침 2개, 법 개정 사안 2개다.

[행정지침: 정부의 가이드라인]

1. 일반해고 신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해고는 ①징계해고, ②정리해고만 가능하다. 정부는 여기에 추가로 성과가 저조하거나 근무가 불량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③일반해고(일신상 해고)를 추가하려고 한다.

2. 취업규칙 변경여건 완화

현행 법에 따르면 회사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취업규칙)를 도입하려면 노조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이걸 완화하려고 한다.

*취업규칙은 임금, 근무시간, 휴가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법 개정사항]

1. 파견업종 확대

정부는 현재 32개로 제한된 파견 업종을 늘리려고 한다.

2. 비정규직 기간 확대

정부는 현행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려고 한다.

노동개혁: 더 쉬운 해고

-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나.

= 기업이 월별로 등급을 매기고, 감봉하고, 시말서를 쓰게 하면서 해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상대평가는 아무리 공부 잘하고 일 잘해도 꼴등이 생긴다. 그렇게 3~9개월을 하면 못 견뎌서 스스로 나가거나, 아니면 저성과자로 일반해고할 수 있다.

그리고 해고를 싸게 할 수 있다. 기업이 명예퇴직, 희망퇴직으로 위로금을 주는 게 한 해에 약 90만명이다. 이중에 절반만 저성과자로 일반해고하면, 수십조원하는 위로금의 반만 써도 된다. 나는 이게 일반해고를 도입하려는 가장 큰 목적이라고 본다.

- 취업규칙 변경여건 완화는 어떤 내용인가.

= 모든 회사엔 취업규칙이 있다. 만약 기업이 임금이나 근로조건 내용을 변경하려면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봉 5천만원에 계약했는데, 갑자기 사장이 3천만원으로 삭감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임금피크제가 무엇인가. (정년에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임금 삭감이다. 앞으로 노동자 동의 안 받고도 임금을 삭감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근데 이게 임금피크제에만 그치지 않을 거다.

사실 '취업규칙 변경여건 완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건 노조가 없는 회사의 노동자다. 2013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0.3%이니 나머지 90%가 여기에 해당된다. 회사 마음대로 임금 줄이고, 근로시간 늘리고, 노동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 노조가 있다면 노사 단체협약이 취업규칙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더라도 적용되지 않는다.

- 비정규직 기간 연장 같은 법 개정은 어려워 보인다. 여론의 반대도 클 것이다.

= 법안 2개는 국회에서 (야당이) 막을 수 있다. 문제는 행정지침이다. 정부가 그냥 밀어붙이면 된다. 지침 만들고 근로감독을 안 하면 현장은 무너진다. (정부는) 재벌이 가장 필요한 것, 그리고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노사정 합의문에 대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 합의문을 읽어보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암호처럼 써있다. 근데 디테일하게 보면 재벌 대기업의 의무는 다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노사가 하는 건 "협의해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쉬운 해고도 "협의해서 한다".(합의가 안 되더라도 일방이 추진 가능) 나머지는 정말 애매한 말을 많이 쓴다. "촉구한다. 강구한다." 이런 말 속에 숨겨놨다.

- 합의문 중에 야당이 찬성할 내용은 없나.

= 내가 유일하게 찬성했던 게 '실업급여를 더 많이 준다'는 거다. 그런데 관련 법안을 봤더니 대상자가 15만명 정도 줄어든다. 그리고 지금은 고용보험을 6개월만 내면 됐는데 9개월을 내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런 게 디테일이다.

실업급여 금액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내린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올해보다 월 평균 4만원 정도 준다. 월 4만원 줄이고, 15만명이 못 받는 걸 '실업급여를 늘린다'고 써놨다. 이 정부 정말로 꼼꼼하다.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하나 하나 다 봐야 한다.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 일반해고를 의자놀이라고 비판했다.

= 사람들 생각과 다르게 일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고용률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문제는 지난 15년 간 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12개, 11개, 10개... 하나씩 줄고 있다. 의자를 줄이는 첫 번째 방식이 정리해고다. 두 번째가 비정규직, 세 번째가 일반해고다.

그리고 "(앉지 못한 건) 너희들 책임이야"라고 한다. 사람들은 "의자가 없어요"라고 말 못하고 "내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하게 된다. 의자를 만들자는 거다. 사람 수에 맞춰서 밥그릇, 의자도 만들어야지. 그건 줄이면서 왜 사람 탓만 하냐. 매우 잔인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정부가 "노동개혁"을 하려는 이유는 뭔가.

= 경제위기 때문이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가 있었고, 그 후 IMF가 왔다. 그때 기간제법, 정리해고가 통과됐다.

1996년이나 2015년이나 똑같다. 실제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내려진 정책이다. 정부여당은 총선, 대선을 앞두고 경제위기를 돌파하려는 거다. 일자리 대란이 생기면서 부모세대, 노조를 희생양으로 삼는 거다. 사실은 경제가 어려운 걸 국민 탓으로 돌리는 거다.

이건 '도그마'의 문제다. 규제를 줄여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신념이자 이데올로기다. 정부가 그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다. (해고를 쉽게 해주는) 노사정 합의문으로 재벌은 15조원 정도 이득을 보는 거다.

- 대안은 무엇인가.

청년고용할당제와 이익공유제다. 300명 이상 대기업이 정원의 3%를 매년 신규 채용하게 하는 거다. 이렇게 직접 고용을 유인해야지, (현재의) 세제 지원으로 안된다. 그걸 3~5년 정도 기업이 신규 채용하는 관행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한다.

이래야만 자본주의적 시장질서가 회복된다. (3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710조원인데 연간 일자리 7만개 창출에 드는 예산은 1조원도 안된다. 3년이면 21만개가 생긴다. 이것도 아주 최소한으로 잡은 거다.

- 기업에 채용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 그러면 재벌이 시장을 무너뜨리는 건 왜 두고 보나. 그걸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를 위해서 재벌에게 직접적인 고용을 호소하는 거다.

기업 부담을 줄여주면 투자와 고용이 늘거라면서 법인세 줄여주고, 비정규직을 허용해줬다. 15년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성적표를 보니 가계소득은 안 늘고 가계부채만 늘었다. 월 200, 300만원을 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반대로 기업은 엄청나게 돈을 쌓았다. 투자는 매년 3조원 정도 줄여서, 지난 5년 간 14조원이 줄었다. 국민이 더 이상 개혁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노동개혁이 아니라 기업구조개혁, 재벌개혁이다.

자세히 알아보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일반해고 #임금피크제 #노동개혁 #노동시장 개편 #해고 #노사정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