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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 환율·부도 위험, 거의 외환위기 수준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됐지만 신흥국 화폐가치는 계속 추락하고 부도위험은 급등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23일 국제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이미 상당수 신흥국의 달러화 대비 환율은 과거 위기 수준을 뛰어넘어 끝이 안 보이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환율상승은 화폐가치 하락을 뜻한다.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미 금리 동결 이후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통화가치 위기 수준으로 급락

신흥국 환율 상승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한 지난 18일 안도 분위기 속에서 진정되는 듯했지만 곧 달라진 게 없다는 인식으로 다시 튀어 올랐다.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도쿄 외환시장에서 이날 11시 13분 현재 전날보다 약 1%나 오른 달러 대비 4.3470 링깃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 8일 기록한 고점(4.3393 링깃) 보다 높은 수준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중인 지난 1998년 1월에 기록한 4.7700 링깃과 10% 이내로 차이가 좁혀졌다. 지난 22일 종가 기준 링깃화는 지난 18일 대비 2.6% 뛰었으며 작년 말에 비해서는 23.1%나 치솟았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같은 시간 0.581% 떨어진 달러 당 14,637 루피아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1998년 7월 중순 이래 최고다. 최근 상승세를 감안하면 외환위기 당시 최고점 16,525 루피아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루피아화는 지난 18일 잠깐 멈칫했을 뿐, 오름세를 계속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 지난 22일까지 상승 폭도 17.5%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외환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이 심리적 지지선인 현재 수준을 방어하려고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 금리 관련 불안이 시장에 가득한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투기등급으로 추락한 브라질의 헤알화는 22일(현지시간) 현재 달러당 4.0503 헤알로 지난 2002년 고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S&P에 이어 피치와 무디스도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져있다. 헤알화는 달러 대비 환율이 올해 들어 52.4%나 뛰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요주의' 국가로 거론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도 달러대비 환율이 현재 시간 0.89% 상승했다. 랜드화 환율은 전날 2.24% 뛰는 등 올해 들어서 지난 22일까지 17.8%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태국 바트화 환율은 같은 시간 0.3% 올랐다. 바트화 환율은 외국인 투자자 매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날 0.97% 상승했다.

◇신흥국 부도위험 급등…말레이시아 4년만에 최고

말레이시아의 CDS프리미엄은 지난 22일 현재 206.50bp(1bp=0.01%포인트)으로 전날(187.78bp)보다 10%나 올랐다. 미 금리 결정 직전인 지난 17일의 168.80bp에 비해서는 37.70bp(22.3%)나 솟구쳤다. 중국발 쇼크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지난달 24일의 202.79bp보다도 높다. 말레이시아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2011년 10월에 기록한 전고점 212.68에 바짝 다가서며 4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는 245.00bp로 전날보다 6.76% 올랐고 태국도 151.50bp로 7.45% 상승했다.

중국의 CDS 프리미엄은 전날보다 4.61% 오른 121.00bp로, 전고점인 지난 1일의 122.29bp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 금리 동결 이후 CDS 프리미엄이 큰 폭으로 상승, 지난 17일 이래 사흘간 11.5bp(10.5%) 올랐다.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71.00bp로 전날보다 7.58%, 지난 17일 대비 17.4% 뛰었다.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24일 고점(80.42bp)을 찍은 뒤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이다.

브라질의 CDS 프리미엄은 462.5bp로 환율과 함께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대비 8.15%, 지난 17일(379.31bp) 대비 21.9%나 뛰어올랐다. 이 밖에 전날에 러시아(4.95%), 터키(6.97%), 칠레(7.22%), 콜롬비아(6.23%), 러시아(4.95%) 등 대부분 신흥국들 프리미엄이 크게 올랐다.

◇신흥국 앞길 첩첩산중

신흥국들에는 미국 금리 인상이 악재다. 금리인상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달러 대비 환율이 오르는데, 실제로 미국이 긴축에 들어가고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과거 위기 수준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중국 경기 하강속도는 예상보다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9월 차이신(Caixin)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47.0으로, 시장 예상치(47.5)와 전월치(47.3)를 밑돌았다. 이는 2009년 3월 이후 6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차이신 PMI는 지난달에도 전망치(48.2)에 크게 미달하면서 중국 경기에 대한 불안심리에 불을 붙인 바 있다.

중국 성장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로 인해 원자재 가격도 상승 추세로 돌아설 기미가 없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미 작년에 비해 반토막 수준인 배럴 당 45 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앞으로 추가 하락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내년에 유가가 이보다 50% 이상 하락해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기타 원자재들도 마찬가지다.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신흥시장 책임자는 최근 "원자재 시장이 긴 겨울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신흥국들은 어려운 대외여건을 견뎌내기 어려운 체질을 갖고 있다. HSBC는 부채로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킨 경제는 미국 금리 인상에 특히 위험하다며 말레이시아를 대표 국가로 꼽았다. 올해 1분기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35%까지 올랐다. 세계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2009년 1분기(115%)보다도 20%포인트 높다.

내부 정치혼란은 신흥국들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는 비자금 의혹으로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 주도로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미국까지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는 나집 총리의 의붓아들 리자 아지즈가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매하는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도 아직 경제회복 방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은 대통령 탄핵까지 요구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 신흥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월 전망치보다 0.3% 포인트 낮춘 5.8%로 제시했다. 이는 2001년 성장률(4.9%)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의 6.2%에서 6.0%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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