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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은 신문사들이 그동안 보여준 5장의 편지

  • 강병진
  • 입력 2015.09.22 13:06
  • 수정 2015.09.22 14:19
ⓒ연합/AP/예당

“가을에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고은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던 ‘가을편지’는 정말 많은 사람이 가을에 편지를 쓰게 했던 노래다. 이 노래에 감동받은 건, 일반인만이 아니어서 여러 신문사의 논설위원과 칼럼니스트도 가을이 되면 유독 편지를 많이 썼다. 가을을 맞이한 2015년 9월에도 두 장의 편지가 배달됐다. 한 장은 배우 엠마왓슨에게 쓴 고종석 칼럼니스트의 편지이고, 또 다른 한 장은 아직 취업을 못한 아들에게 쓴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편지다. 수신자도, 내용도 다른 두 장의 편지는 지금 SNS상에서 화제에 올랐다. 두 장의 편지를 읽으며 과거의 편지들도 떠올랐다. 한 장의 편지를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모두 가을에 쓰여진 이 편지들 역시 당시 큰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이 편지들은 왜 받는 사람에게 설렘은 커녕 불쾌감을 주었던 걸까?

1. ‘MC몽의 항변’

발송일 : 2010년 10월 21일(동아일보) - 원문보기('미디어 오늘' 링크)

발신: MC몽(으로 가장한 권순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수신: 국민 여러분

편지의 첫 문장 : “저는 가수 MC몽입니다.”

문제적 문장 :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보다 연예인에게 더 엄격하고 가혹한 도덕성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대중의 분노를 샀으니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중략) ... 저는 아직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불구속 기소됐을 뿐인데 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지요.”

논란의 이유 : 당시 MC몽은 병역비리 문제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실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없지만, MC몽이 “연예인에게 더 가혹한 병역문제”를 거론하며 항변은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칼럼은 (가상의 편지라는 걸 밝혔지만) MC몽의 입장을 오해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미디어 오늘’의 칼럼에서 “ MC몽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반복된 거짓말 논란으로 언론의 노출을 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칼럼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정치인에게도 공정한 법 집행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MC몽이 쓰는 편지 형식을 끌어들인 무리수였던 셈이다.

2.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지난 7월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 사령관을 업은 모습. 이 칼럼이 쓰여질 당시에는 다른 사령관이었다.

발송일 : 2003년 2월 19일(조선일보) - 원문보기

발신 :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수신 : 주한 미군 사령관

편지의 첫 문장 : “우선 기성 세대에 간신히 입성한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미군의 주둔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문제적 문장 :

“현재 젊은 세대의 반미는 약간은 코믹하며 군중심리적 요소가 다분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북한에 있는 동포들과는 달리 포경수술을 받았습니다. 필리핀과 남한만이 군중심리적으로 미국을 잘못 모방한 것이지요.”

“김정일이 적화통일을 한다고 해서 미국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조심할 게 있습니다. 미국에서 불법으로, 공짜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한

국 엄마들과 미국 내의 어글리 코리안들입니다. 이것 때문에 미국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김정일과 싸울 의사가 있는 남한군에 자원입대 할 것입니다.”

논란의 이유 : 일단 기발했다. 젋은 세대의 ‘코믹한’ 반미행태를 꼬집기 위해 이 편지는 ‘포경수술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과감했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자원입대를 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우리’가 누구를 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인 전체를 당장이라도 군대에 입대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포스를 느끼기 했다. 무엇보다 이 글에는 추억이 있었다. 왠지 초등학교 시절에 했던 "‘반공 백일장’의 글쓰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대자보 여인철 주필)이랄까?(대자보' 여인철 주필)

3. ‘엠마 왓슨 유엔 여성 친선대사께’

발송일 : 2015년 9월 20일 (경향신문) - 원문보기

발신 : 고종석 작가, 칼럼니스트

수신 : 엠마 왓슨

첫 문장 : “꼭 한 해 전 오늘, 당신은 유엔 여성 친선대사의 자격으로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감동적 연설을 함으로써 페미니즘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문제적 문장 :

“당신의 페미니즘은 독서를 통해서,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허마이어니 역을 맡으며 벼려졌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허마이어니는 강인하고 박식하고 총명합니다. 남자 동급생들보다 뛰어납니다. ...(중략)...

그러나 말랄라의 페미니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온 경험의 소산입니다. 당신이 연설에서 술회한, 당신 성장기의 ‘여성스럽지 않음’에 사람들이 별난 눈길을 보낸 것과는 그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당신과 말랄라를 비교해 말랄라의 페미니즘이 더 온전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논란의 이유 : 엠마왓슨의 페미니즘은 왜 말랄라의 페미니즘과 비교당해야 하는가. 엠마왓슨의 페미니즘은 왜 “경험의 소산”이 아닌 ‘독서’와 ‘헤르미온느 캐릭터’를 통한 관심 정도로 저평가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이 편지는 왜 비교를 해놓고 비교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SNS 상에서 이 편지는 ‘멘스플레인’으로 지적당했다. 수신자가 가진 생각의 깊이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태도에서 명절날마다 겪는 큰 아버지와의 불쾌한 대화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4.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

발송일 : 2015년 9월 22일(조선일보) - 원문보기

발신 : 은퇴가 코 앞인 아버지(를 가장한 김광일 논설위원)

수신 : 아들

첫 문장 : “아들아, 내 편지를 보아라.”

문제적 문장 : "징징대지 마라.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밥만 잘 먹더라. 나는 지금도 너희 세대보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샘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너희가 컴퓨터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잠시 움찔했다만 신입 사원으로 들어온 너희는 불대수를 바탕으로 한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나보다 이해하지 못했고, 상대 눈빛을 제압하며 계약을 따내는 실전 영어도 우리가 월등 나았다. 너희 영어는 혀에 '빠다'를 바른 듯 R과 L, F와 P 발음을 잘 구별하더라. 그것도 우리 기러기 아빠들이 외로움 참아가며 너희를 어미와 함께 외국에 보냈던 덕이다.”

논란의 이유 : 임금 피크제 시행의 이유를 합리화시키는 한편, ‘나도 아직 할 수 있지만 아들인 너를 위해서라면’, “제일 잘 하는 게 희생밖에 없는” 아비는 기꺼이 양보하겠다는 내용. 말하자면, 아들에게 “징징대지 말라”고 하는 아빠의 ‘징징거림’이 담긴 편지다. 역시 부모 - 자식 사이에 오가는 편지는 남한테 보여주지 않는 게 좋겠다.

5. ‘채동욱 아버지 前上書’

발송일 : 2013년 9월 17일(동아일보) - 원문보기

발신 : “엄마말만 듣고 자라온 아이”(를 가장한 최영해 논설위원)

수신 :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첫 문장 : “아버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보름이나 됐네요.”

문제적 문장 : “아버지, 그래서 그러는데 저한테 피 검사 하자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만에 하나 피 검사가 잘못돼 가지고 저하고 아버지하고 다르게 나오면 그 땐 어떡해요? 하루아침에 아버지 없는 아이가 돼 버리잖아요. 여태껏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는데,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 있을 땐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제발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논란의 이유 : 아마도 역대 신문사가 내놓은 편지 형식의 칼럼 중에서 이만한 화제를 가져온 편지는 없을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 신문사상 최고의 문제작(?)이 출현했다”고 평했을 정도. 국제아동인권 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칼럼에 대해 ‘누구도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감정과 생각을 추측하여 공적 여론의 장에 내어놓은 것은 아이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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