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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라는 연기괴물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봤다. 영조로 분한 송강호를 보는 건 진정 경이로운 일이었다. 콤플렉스의 화신이자 힘센 신하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계몽군주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경지다. 불혹이 넘어 얻은 아들에 대한 너무나 큰 기대와 사랑이, 실망과 미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송강호는 마치 영조의 환생인 듯 보여준다. 어긋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 이태경
  • 입력 2015.09.21 11:12
  • 수정 2016.09.21 14:12
ⓒ쇼박스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봤다. 영조로 분한 송강호를 보는 건 진정 경이로운 일이었다. 콤플렉스의 화신(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무수리를 어미로 두었다는 사실과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은 영조의 퍼스낼러티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다)이자 힘센 신하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계몽군주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경지다. 불혹이 넘어 얻은 아들에 대한 너무나 큰 기대와 사랑이, 실망과 미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송강호는 마치 영조의 환생인 듯 보여준다. 어긋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7일째 날에 영조로 분한 송강호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독백과 사도세자로 분한 유아인과의 상상속 대화를 하는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들만큼 슬프다. 죽어가는 자식을 향한 아비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선이 송강호를 통해 분출되는 장면은 장관이라는 표현이 모자란다. 뒤주 속에서 죽은 아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단장의 울음을 토하던 왕은 어느새 냉정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한다. 아비보다는 군주로서의 정체성이 앞섰던 영조가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구체의 옷을 입는 순간이다.

'사도'는 송강호 연기의 가장 빛나는 순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미 송강호의 연기인생은 광휘로 가득하다. 송능한 감독의 '넘버 3'에서 송강호가 조폭 불사파의 무식한 두목 조필로 분해 "내말...내어어어 내내말 자잘 들어. 내내가 하늘색깔 하늘 색깔이 빨간색. 그럼 그때부터 무조건 빨간색이야. 어? (계란을 들고)요요요 이이건 노리끼리한 색이지만 내가 이걸 빨간색! 이러면 이이것도 빨간색이야! 어? 어? 내가 현정화라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내 말에, 토.토토토토다는 새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직사시켜 버리겠어. 직사."라고 기염을 토하며 부하들을 잡도리할 때의 광경은 관객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으로 분한 송강호가 류로 분한 신하균을 죽이기 전 "너 좋은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그렇지?"라고 말할 때의 음성과 표정을, 류를 살해한 후 테러단에게 난자당해 죽어가면서 보이던 억울함과 궁금함(왜 살해당하는지를 알고 싶은)이 기묘하게 뒤섞인 표정을 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로 분한 송강호가 연쇄살인마로 강하게 의심받던 박해일(극중 박현규)을 마지막으로 심문하면서 분노와 슬픔이 혼재된 울음 배인 목소리로 "밥은 먹고 다니냐?"고 하던 장면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연기괴물 송강호는 동어반복이 어울리지 않는 배우다. '사도'의 영조 역할을 통해 송강호는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부단히 갱신하고 있음을 훌륭히 입증했다. 연기괴물 송강호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건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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