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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와 반대로 무슬림을 이해하는 법 : 『무슬림 쇼』

『무슬림 쇼』는 서양 국가에 사는 무슬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 즉, 이슬람교 국가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여기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프랑스 내 무슬림이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나 되지만, 긴 프랑스 만화사를 통틀어 무슬림의 생활을 다룬 프랑스 만화는 없었고, 이 작품이 최초라는 점이다. 작가는 『무슬림 쇼』를 자국 내 존재하는, 언론을 통해 비친, 그리고 대중들에게 인식된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오해 때문에 시작했다고 했다. 특별히 이슬람 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며 그저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일상을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년 사이 국내에서 요즘만큼 프랑스 뉴스를 자주 들은 적이 있을까?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진 프랑스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이야기다. 2015년에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테러라는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될 줄 몰랐다.

『샤를리 엡도』는(엡도는 '주간지'를 뜻하는 에브도마데르(Hebdomadaire)의 줄임 말이다) 1970년대 시작한 좌파 성향이 강한 풍자 주간지로, 1960년대 시작하여 1985년 폐간까지 파격(?)이 끊이지 않았던 월간지 『하라-키리』(Hara-Kiri-일본어로 할복이라는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라-키리』는 제호의 강렬함처럼, 잡지의 내용 역시 상당히 진보적이고 실험적이었으나 동시에 노골적이고, 때로 무례하고, 외설적이었다. 매체의 폐간 역시 잡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샤를리 엡도』는 태생 자체가 좀 과격한 성격의 풍자매체였던 셈이다. 신랄하게 비꼬는 그들의 표현 방식은 과거 프랑스 내에서 자주 이슈가 되곤 했다. 만평이라는 것 자체가 이를 보고 통쾌한 이가 있으면 불쾌한 이도 있는 법이고, 그림 한 컷에 메시지를 분명하면서도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과장, 공격성이 존재할 수 있다. 『샤를리 엡도』 의 행보를 두고 프랑스 내부에서도 이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맞는지, 과연 그들이 무슬림들에게 무례하진 않았는지, 표현에 있어 무리가 없었는지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물론 어떤 잘못이 있다 해도 올해 초에 일어난 테러와 같은 살인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사실 이번 칼럼에서 『샤를리 엡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테러의 범인이 프랑스 내 이슬람을 믿는 자국민이었다'는 것이고, 거기서 연상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프랑스 만화『무슬림 쇼(Muslim show)』다. 최근 무슬림이 대부분인 난민들이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로 향하면서 다양한 우려를 낳고 있기에, 어쩌면 이 작품이 그들과 또 그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에 대한 이해의 초석이 될 수도 있겠다.

『무슬림 쇼(Muslim show)』 글 노헤딘 알람(Norédine Allam) 그림 그렉 블론딘(Greg Blondin)

『무슬림 쇼』는 서양 국가에 사는 무슬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 즉, 이슬람교 국가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여기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프랑스 내 무슬림이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나 되지만, 긴 프랑스 만화사를 통틀어 무슬림의 생활을 다룬 프랑스 만화는 없었고, 이 작품이 최초라는 점이다.

작가 '노헤딘 알람'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인이다. 그는 알제리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두 개의 문화와 두 개의 세계관, 즉 무슬림과 비 무슬림 사이에서 자랐다. 그는 프랑스에서 꽤 주목 받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자연스럽게 분야를 넓혀 만화를 하게 되면서 프랑스의 유명 만화이자 전통적인 프랑스-벨기에 만화인『아스테릭스(Astérix)』 작업에 참여한 이력도 갖고 있다.

작가는 『무슬림 쇼』를 자국 내 존재하는, 언론을 통해 비친, 그리고 대중들에게 인식된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오해 때문에 시작했다고 했다. 특별히 이슬람 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며 그저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일상을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마 작가는 독자들이 『무슬림 쇼』를 읽으며 잘 알지 못했기에 생겼던 오해들, 그로부터 생긴 선입견을 풀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무슬림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무슬림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작품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8컷의 비교 이미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선생님/테러리스트', '신자/테러리스트', '영웅/테러리스트', '미래의 영웅/미래의 테러리스트' 이 컷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내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나 역시 프랑스에서 몇 년간 살면서 프랑스 내 존재하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 이슬람교를 조롱하고 폄하하는 부정적 분위기를 분명히 느꼈다. 당시 무슬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없었던 나로서는 꽤 당황스러웠고 (그렇게나 그들이 위험한 존재였던가?!) 나중에는 우리가 일본인이나 북한 사람들에게 막연한 적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이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무슬림 쇼』는 2009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세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1권은 라마단에 대한 이야기, 2권은 결혼, 3권은 이웃들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출간 되었고, 이슬람 문화권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터키 등을 넘어 캐나다, 독일 등에도 출간 혹은 출간을 논의 중이다. 또한 『무슬림 쇼』를 사랑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이 작품을 번역해 약 14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30여 개국에 작품이 알려져 있는 상태.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국에서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미디어와 만화 관련 페스티벌에서 꽤나 의도적으로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심지어 프랑스 주요 서점에서 독자가 이 책을 주문하면 보통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이 책을 받아 볼 수 있을 정도.

이들은 서로 '우리가 옳다'며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한 쪽이 이긴 것 같지만, 결국 힘겨루기의 승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샤를리 엡도』 사건으로 현재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반에 거세게 반反 이슬람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슬림 난민들의 대거 유입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되는 바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이 어떤 종교를 믿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부 극단적인 종교 테러집단으로 인해 싸잡아 비난을 받고 있다. 모든 오해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분명 프랑스에는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인종과 종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왔다. 혈통이 프랑스인이 아니기에, 다른 종교를 믿고 있기에,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인식되고 의식적으로 배제되어왔던 그들. 그들에 대한 불합리한 적대는 이후 무슬림에게 그들이 속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적대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배척의 시선들이 선량한 다수의 정직한 무슬림들을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모든 상황들이 염려스럽다. 우리가 무슬림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편향된 언론의 시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해당 종교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일 수도 있다. 『무슬림 쇼』를 읽는다는 것는 아마도 우리가 모두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훌륭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_ 이지은/누룩미디어 PD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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