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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가 왜 '기관원'에게 친절해야 할까?(갑을)

ⓒ한겨레

“직원에 친절하게 대해야. 3회 불친절이면 교체”_중부발전·전력기술

“‘을’(파견업체)의 모든 종업원은 ‘갑’(공공기관)의 직원에 대하여 친절하게 대하여야 한다. 갑의 직원 등으로부터 3회 이상 불친절하게 적발된 종업원을 ‘을’은 교체하여야 한다.”

한국 중부발전과 한국전력기술의 본사 사옥 청소·시설관리 용역 노동자의 과업지시서(용역업무에 대한 지시사항이 담긴 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청소·시설관리 용역업체 등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간접고용·파견 노동자들에 대해 과도한 의무조항이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독소조항’을 곳곳에 심어 이른바 ‘갑질 횡포’를 정식 규정으로 보장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정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당 을지로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23개의 에너지 공기업·공공기관들로부터 제출받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준수실태를 분석한 결과, “일부 공공기관이 자의적 기준을 적용해 용역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 고 16일 밝혔다.

“재청소 지시할 때는 시간·횟수 관계없이 재청소”_한국지역난방공사

분석결과를 보면,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경우 파견업체 직원에 대해 “일상적인 청소를 실시할 때 (공공기관) 직원이 불결하거나 미비하다고 판단, 재청소를 지시할 때는 시간, 횟수에 관계없이 (파견업체 종업원은) 재청소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또 “비협조적이거나 무능력하다고 (공공기관 직원이) 판단하여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 (용역업체는) 즉시 응해야”(한국전력거래소), “관리소장 주재 하에 개최되는 조회나 교육시 이유없이 불참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즉시 징계조치 또는 교체한다”(대한석탄공사) 등 청소·경비 용역업체 직원들에 대해 공공기관 관리직원들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조항을 특약사항 등에 담았다.

"기본적인 인권 침해도 다반사"

또 노동자에게 불공정하거나, 노동3권을 제약하는 조항도 많았다. “과업지시서의 각 조항에 의문이 있을 때는 ‘발주처’, ‘계약상대자’ 쌍방의 합의에 의해 정하고 협의가 성립되지 아니할 때에는 ‘발주처’의 해석에 따른다”(한전 케이디엔(KDN)), “‘계약대상자’는 종업원의 노동쟁의 및 기타 이에 준하는 단체행동으로 인하여 ‘발주자’의 업무에 차질을 가져올 때에는 그로 인하여 발생한 ‘발주자’의 모든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한전, 전기안전공사 등) 등의 조항이 대표적이다.

전 의원은 또 청소·시설관리 노동자의 자격으로 “관계기관 신원조회 결과 사상이 온건한자”, “이적행위를 하였거나 행할 우려가 있을 때 계약해지” 등을 규정한 것 대해서도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을지로위원회가 다른 부처 산하 공공기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작업시 잡담 및 소란행위를 금한다”, “작업중 큰소리, 잡담이나 콧노래 등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은 일체 삼가야 한다”, “을이 갑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을 때 계약해지 가능” 등의 내용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지난 1월 정부는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설명자료’를 통해 각 부처에 용역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하는 근로자들의 평균시급)를 적용하고, 불공정하고 부당한 업무지시 조항들을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전 의원이 분석한 23개 공공기관들 중 시중노임단가 7056원을 지급하는 기관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의원은 “공공기관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그룹인 용역노동자에게 갑질을 하는 행태를 당장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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