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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박근혜, 무능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최대의 비극은 그녀의 유능함이 권력의 장악과 행사와 유지에만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신물나게 증명했듯이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데에, 더 나은 대한민국의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위해 대한민국을 리빌딩하는 데에 완벽히 무능하다. 그건 그녀를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 선택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자업자득이자 불행이다.

  • 이태경
  • 입력 2015.09.17 11:14
  • 수정 2016.09.17 14:12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유능하다. 그것도 너무나 유능하다. 박 대통령만큼 권력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과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과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에 통달했다.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 벌인 싸움의 기록을 보면 그녀가 단호함과 집중력을 무기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권력에 관해 집중된 단호함을 지니고 있다. 그녀가 가진 집중된 단호함은 탄핵 역풍으로 궤멸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했고, 성공적인 대여투쟁을 이끌었으며,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를 거머쥐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권력의 속성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채동욱 찍어내기와 유승민 숙청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자 채동욱을 표적으로 하는 혼외자 스캔들이 터졌다. 만신창이가 된 채 전 총장은 불명예스럽게 쫓겨났다. 채 전 총장 찍어내기는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고위공직자가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천하의 검찰총장조차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파렴치한이 되는 마당에 어떤 공직자가-그가 선출직이건, 직업공무원이건-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숙청사건도 박 대통령의 권력행사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 전 원내대표는 증세 및 국회법 개정이슈 등으로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는 자기 발로 서려고 한 죄,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고 한 죄, 대통령과의 관계를 주종이 아닌 동지로 여긴 죄, 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대한민국을 꿈꾼 죄 등등을 지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가만히 놔두면 대통령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작동되어야 하는 권력메커니즘에 균열이 생긴다. 메르스 사태 와중에도 대통령이 유승민이라는 대역죄인의 숙청에 골몰한 건 그런 까닭이다. 유 전 원내대표 숙청이 대통령의 숙원임을 알아차린 김무성 이하 새누리당 의원들이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 떼처럼 유 전 원내대표를 물어뜯은 건 목불인견이었지만,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고, 위임할 수 없는 것이며, 수평적일 수 없는 것이고, 다양성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이해하는 권력의 속성, 즉 독점적이고 위임이 불가하고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대로 국가기관을 장악해 수족처럼 부린다. 대통령이 작심하고 국가기관들을 장악해 자신의 뜻대로 부리면 그 힘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여당 대표이자 차기 대선 지지율 수위를 달리는 김무성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인 걸 보라.

작심하고 국가기관을 틀어쥔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도 매우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권자들을 다루는 기본방식은 편가르기다. 거기에 가끔 이미지정치가 액세서리로 동원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의 입맛에 맞게 나라를 운영한다. 북한과 종북세력이라는 늑대(공포)와 집값 떠받히기라는 당근(탐욕)만 있으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만사오케이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가 절반이 넘으니 이들만 지지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단도리하면 된다.

편가르기에 더해 이미지정치가 가끔 동원된다. 박 대통령이 한껏 차려입고 외국을 순방하거나 시장통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 나머지는 비대언론들이 알아서 처리해준다. 세련되게 고안된 이미지 세례를 받은 대중들은 박 대통령을 연예인처럼 여기며 열광한다. 일종의 극장정치라고 해야할까?

박근혜 대통령 최대의 비극은 그녀의 유능함이 권력의 장악과 행사와 유지에만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신물나게 증명했듯이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데에, 더 나은 대한민국의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위해 대한민국을 리빌딩하는 데에 완벽히 무능하다. 그건 그녀를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 선택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자업자득이자 불행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구글번역기와 무인자동차의 발전속도를 보면 10~15년 후 통번역기와 무인자동차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바벨탑 이래 인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언어 장벽에서 인류가 해방되는 것이다. 자동차는 여가와 사무와 숙면 등의 공간으로 완벽히 탈바꿈할 것이다. 그런 테크놀로지 혁명의 이면에는 대규모 실업이 도사린다. 외국어를 업으로 하는 무수히 많은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고, 운전기사가 전부 사라질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서비스업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찾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곧 밀어닥칠 테크놀로지 혁명은 새로 만들어내는 일자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일자리를 빼앗아갈 갓이다.

박근혜 정부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권력의 행사와 유지에 골몰하는 사이에 미래를 준비할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 테크놀로지 혁명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재편은 해일처럼 대한민국을 휩쓸 것이다. 그 해일에서 안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구상노동이건 실행노동이건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 중 무사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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