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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교육혁신이 주는 시사점 12가지

다섯째, '시험을 위한 삶'에서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싱가포르는 학습과 삶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싱가포르는 이런 전환을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전체의 20%를 여백(White Space)으로 비워두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20% 학습량 감축을 시도했지만 형식적 감축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싱가포르와 같이 20% 여백을 가질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ASSOCIATED PRESS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를 읽고(1) | 싱가포르의 교육혁신이 주는 시사점

글 | 이찬승(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목차

1. 시작말

2.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는 어떤 책인가?

3. 싱가포르의 학교교육 성공원리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4. 맺음말

1. 시작말

2015개정교육과정은 예정대로 이달 중 확정 고시될 것이다. 이어서 교과서가 개발되고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취지를 알리기 위한 '전달 연수'도 봇물을 이룰 것이다. 역량의 도입, 빅 아이디어(=대개념, 핵심원리)에 의한 교육과정의 재구조화 등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업지도와 수업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장 교사들의 깊은 이해와 전문성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학교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 대부분의 교사들은 현재와 같은 입시구조 속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다고 체념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갖기보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 소나기를 어떻게 피해갈까를 먼저 궁리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한편 중앙정부는 이번 개정교육과정과 잘 연계될 수 있는 수학능력시험 모형과 대입전형을 연구하고 학교 내 학생평가인 성취평가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도 최종 검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적 부풀리기'란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울 것이고 외고, 과학고와 같은 특목고와 자사고 등이 지금처럼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성취평가제의 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제발 입시 좀 그만 바꿔라."란 불만을 쏟아 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입시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동안 이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따져 찬반 의견을 활발히 낼 것이다. 이에 언론도 가세해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다. 수능·내신·대입전형에 관한 이런 연구, 검토, 논의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결국은 기존의 제도에 조금 손대는 선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대입전형이든 아주 미세한 변화 외에 지금의 것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기회배분의 각축장은 워낙 경쟁이 치열해 어떤 이해당사자들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변화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는 정론보다는 여론을 우선적으로 살피며 변화를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학원들은 어떤 변화든 이를 활용한 불안 마케팅을 통해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릴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가? 다가올 새로운 10년 동안에도 학교교육은 오직 대입시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우리의 아동,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 계속 가두어 둘 것인가? 왜 우리는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가슴 뛰는 교육비전 하나 만들지 못하는가? 리더십 부재 때문인가, 역량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이해당사자들마다 자신의 목전의 이익에 눈멀어 아이들의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 공공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새로운 비전이자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①』과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가 바로 그것이다. 『학교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①』에 대해서는 본 칼럼 92회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후속편인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는 학교변화의 성공사례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나라 및 지역 6곳 중 싱가포르의 성공 사례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는 어떤 책인가?

『학교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①』이 학교교육의 변천사(=제1.2.3.의 길) 및 '제4의 길'이란 학교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면,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는 세계 5개국의 6가지 성공사례 및 이를 뒷받침한 변화의 원리를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들 성공사례들로부터 학교변화의 값진 교훈과 한국의 학교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가 소개하는 5개국의 6가지 성공사례는 아래와 같다.

▶ 핀란드

비아시아 국가 중 PISA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인 국가, 이전 PISA 시험에서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인 국가,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경제 경쟁력이 매우 뛰어난 국가

▶ 싱가포르

PISA 수학에서는 최고의 성적, 문해력과 과학 분야에서는 3위의 성적을 낸 국가, 1인당 국민소득과 평균수명에서 미국을 앞지른 나라로 시민의 지위가 단 한 세대 만에 3등에서 1등으로 도약한 나라

▶ 캐나다 앨버타 주

영어불어권 지역에서 최고의 PISA 성적을 거둔 나라, 석유자원이 풍부한 미 서부 텍사스와 문화적으로 유사하지만 성적은 이보다 훨씬 뛰어난 지역

▶ 캐나다 온타리오 주

앨버타와 거의 동일한 성적을 내면서 성공적인,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는 교육개혁의 살아있는 실험실

▶ 영국

저소득 이민자 지역의 실패한 중등학교를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로 영감을 주는 리더십과 학생의 문화적 요구에 따라 달리 시행하여 교육을 180도 바꾼 나라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캘리포니아 교원노조가 주지사와 투쟁하여 경제와 학습 면에서 주(州) 하위 1/3에 속하는 지역의 학교의 학업성취도 향상 계획을 시행, 많은 향상을 보임.

참고로 제1.2.3.4.의 길의 의미와 특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제1~4의 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께서는 본 칼럼 92회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제1의 길(First Way)

국가의 지원이 풍부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넘치며 혁신이 일어나긴 하지만 교육의 내용, 방법, 질 등이 지역마다 들쭉날쭉 편차가 커서 균질성, 균등성이 부족했던 길이다.

▷ 제2의 길(Second Way)

시장주의 경쟁이 강하게 도입되고 교육의 표준화를 추구하면서 교사가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 길이다.

▷ 제3의 길(Third Way)

시장주의의 장점과 국가의 풍부한 지원을 결합해 교사의 자율성과 책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길이다.

▷ 제4의 길(Fourth Way)

"제4의 길은 비전의 고취와 혁신을 지향하며, 책임감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제4의 길은 교사들을 통해 쉼 없이 개혁을 추진하거나, 교사들을 정부 시책의 말단 전달자로 삼거나, 교사의 동기를 소진시켜가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지 않는다. 특히 근시안적인 정치적 목적이나 특수이익이 결부된 개혁에 동참시키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제4의 길은 사회와 교육에 대한 비전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과 교육계의 헌신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합한다. 이는 공정(equity), 번영, 창조성에 대한 비전이다. 그리고 이 길은 통합되고 안전하며 인간성이 넘치는 세상을 추구하는 길이다.

제4의 길은 교육의 표준화,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 목표지상주의의 환상을 뛰어넘어 민간, 교육계, 정부 간에 평등하고 상호소통이 활발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출처: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①』 173쪽)

아울러 제4의 길에 대한 제②권의 설명을 추가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제4의 길의 목표지점은 높은 성취기준과 개별학생의 성취도를 포함하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곳에 설정되어 있다. 제4의 길은 자신만의 설계 원칙과 독특한 변혁 과정을 통해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 교육의 목표와 결과를 도출하는 자신만의 과정이 있다. 교육변혁 제4의 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체제목표(system target)를 설정하는 대신 도덕적 목표(moral purpose)를 공유한다. 즉, 성취기준을 높이고 학생 성적을 측정한 후 그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대신에 모두를 위한 교육(achievement for all)으로 바꾸려는 도덕적 목표를 공유한다. 교육의 목표는 정치적으로 하달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설정된다.

● 문해력과 수학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을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교과교육을 시행한다.

● 데이터는 교사를 다그칠 목적보다는 교사학습공동체의 연구와 의사결정 과정에 정보를 제공할 용도로 사용한다.

● 제3의 길과는 달리 시험은 체제(system)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표본조사로 실시한다. 제3의 길에서는 설정된 목표 달성을 위해서 고부담의 일제고사를 실시하여 종종 시험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초래하기도 한다.

● 교사는 주어진 교육과정의 전달자로서가 아니라 학교 내외의 교사들과 협력하여 교육과정 개발자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리더십이란 강요된 개혁을 전달하는 개인이 아니라 분산되고 지속가능한 책임의식을 개발하여 함께 혁신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즉 수직적 책무성이 아니라 집단적 책임감에 관한 것이다."

(출처: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 39쪽)

제4의 길은 교육의 목적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저자들은 제4의 길 서문에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다른 소중한 가치들보다 우위에 놓을 수 있는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교육은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것을 발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며, 우리 자신을 넘어선 보다 큰 선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도 이런 담대하고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교육비전 실현을 위한 개정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학교교육이 다가올 10년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 같아 아쉬움이 너무 크다. 진정 학교교육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육과정 문서 정도를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개혁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깰 필요가 있다. 마침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은 학교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 다양한 사례와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우선 싱가포르의 성공사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3. 싱가포르의 학교교육 성공원리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싱가포르의 학교교육을 한국적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매우 많은 나라일 수 있다.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 초등학교 6학년 말에 시행되는 고부담 졸업시험(이 시험 성적에 따라 중학교가 결정되고 능력별 반편성이 결정됨), 학교 간 심한 격차, 우열반 편성, 교육을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만 보려는 실용주의 교육철학 등이 그 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거두는 학업성취도 향상이기에 더욱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 교육의 성공원리와 그런 것들이 한국의 교육개혁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역설적 상황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의 저자들은 싱가포르가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이런 모순적 상황을 잘 조화시키고 다루는 유연성과 관련이 깊다고 말하며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의 역설을 소개하고 있다.

① 통제의 역설: 통제 속에서도 자율성을 높인다.

② 기술의 역설: 전통적인 교실수업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을 조화시킨다.

③ 교육의 역설: 가르침은 줄이고 학습은 늘린다.

④ 경쟁의 역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동시에 열심히 협력한다.

⑤ 시공간의 역설: 미래를 내다보면서 과거를 되돌아본다. 또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신의 문화를 응시하면서 동시에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린다.

"국제기구들이 싱가포르 교육 성공을 분석한 것에 더하여 우리 연구진들은 싱가포르의 문화 및 생활 그리고 학교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뛰어난 성적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교육부 장관이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던 두 가지 요인을 발견했다. 하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문화이며 나머지 하나는 다른 나라였으면 그 나라를 분열시켰을만한 역설을 활용할 줄 아는 국민들의 실용적 수용력이었다."

(출처: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 192쪽』)

싱가포르는 강한 중앙통제, 고부담 시험을 통한 학습동기 유발, 치열한 경쟁의 존재 등 한국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교육 혁신은 우리에게 더 큰 관심을 준다. 강한 통제의 문화 속에서도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전략(예: 교육과정 편성권을 교사에게 부여), '적게 지도하고 많이 배우게 한다(Teach less, Learn more)'란 기치를 걸고 교사 주도 지도(teacher-centered teaching)에서 학습자 주도 학습(learner-centered learning)으로 수업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전략,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협력하게 하는 전략 등은 싱가포르 특유의 문화이자 능력이다.

이상과 같이 싱가포르는 서로 모순되는 상황에서 'A and B' 방식의 양자포괄적으로 절충 내지는 조화시키는 전략을 잘 사용할 줄 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A or B' 방식의 극단적 2분법적 접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사회가 둘로 나눠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21세기의 문제는 'A or B'와 같이 양자택일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한국도 'A and B' 방식의 양자포괄적으로 나아가는 접근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가치와 이해의 대립이 매우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필요성이 크다. 이를 교육과정 개정에 적용해보자. 이번 2015교육과정 개정 절차를 보면서 실망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정부 주도의 졸속개정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의결권까지 갖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정부는 손을 떼게 하자는 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양자포괄적 접근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로 하여금 손 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실제 이런 접근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교육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각 부처의 협력과 지원뿐만 아니라 때론 정부의 통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또 한 가지의 적용 예로, 'A and B' 방식의 양자포괄적 접근을 내신평가 문제의 해결에 사용해보면 어떨까? '상대평가 아니면 절대평가'란 2분법적 접근으로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한국적 특수 상황을 고려할 때 과도기적으로라도 '상대평가 및 절대평가'를 공존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가 비전 설정 능력이 뛰어나다. 싱가포르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함께 1990년대 '생각하는 학교, 학습하는 나라(Thinking School, Learning Nation)'라는 국가 교육비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탁월한 비전 선언문이다. 실제 이런 비전의 힘으로 학교교육이 사고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비전이 힘은 이렇게 크다. 한국은 실제 교육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그런 비전이 없다. 2015개정교육과정도 이런 큰 비전에서 출발하지 못했다. 가슴뛰는 비전으로 사회를 통합시키고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리더의 출현이 간절히 기대되는 시점이다.

셋째, 적게 지도하고 많이 배우게 한다(Teach Less, Learn More). 이는 지도(teaching)에서 학습(learning)으로의 중심 이동을 말한다. 학습자의 사고력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 학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싱가포르가 교사의 지식 전달식 교사 중심 수업방식을 벗어나 학생 스스로가 학습의 주도성을 갖도록 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판단이다. Thinking School이 되기 위해서는 Teach Less, Learn More가 필연적이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이와 긴밀히 연계된 Teach Less, Learn More와 같은 것을 교육혁신의 슬로건으로 삼은 것은 싱가포르의 탁월함의 한 예다. 한국은 교사 주도로, 시험을 위해 교과서 진도를 기계적으로 나가는 관행이 여전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학교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는 'Teach Less, Learn More'를 엉뚱하게 '적게 가르치는 것이 많이 배우는 것이다'로 해석하면서 교육과정의 학습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인용했으나 이는 원래 그런 뜻이 아니다. 'Teach Less, Learn More'는 교사의 직접적 설명과 지도의 시간을 줄이고 학습자가 더 많이 상호작용을 하며 학습을 주도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이는 뇌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매우 바람직한 접근이다. 교사가 수업을 주도하면 교사의 수업 속도와 수준에 맞는 학생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사가 수업을 주도하면 학생보다는 교사에게 학습이 더 활발히 일어날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학습할 때 더 잘 집중할 수 있다.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어떤 학교는 수업 중 교사가 말하는 시간(Teacher Talking Time: TTT)을 20%로 제한하고 있을 정도다.

넷째, '구조화된 반란(structured insurgency)'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구조화된 반란이란 계획적으로 혁신의 씨앗을 심어 놓고 그 혁신 사례가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의 힘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의 씨앗을 싹트게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전략은 '넛지(nudge)'다. 넛지는 팔꿈치로 쿡 찌르거나 슬쩍 민다는 의미다. 즉 싱가포르의 혁신 전략은 혁신의 씨앗을 뿌려놓고 혁신을 유도하는 방식인 것이다. 방향을 유도는 하지만 최종 선택은 단위학교들이 하게 한다. 한 나라가 혁신 프로세스를 제도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도 학교 변화를 위한 다양한 혁신 프로세스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시험을 위한 삶'에서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싱가포르는 학습과 삶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싱가포르는 이런 전환을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전체의 20%를 여백(White Space)으로 비워두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20% 학습량 감축을 시도했지만 형식적 감축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싱가포르와 같이 20% 여백을 가질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섯째, 즐거운 교수학습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한국의 혁신학교 실험에서 보듯이 혁신적인 교육을 시도할 때 초기에는 성적 하락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시험 중심의 수업 문화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역시 "향후 몇 년간 학생들의 성적 하락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하겠는가?"란 질문이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모두 즐겁게 수업할 때 성적도 올라간다는 믿음이 있다. 한국도 어떤 새로운 변화의 초기 부작용이 크게 보이더라도 큰 방향이 맞다면 이를 쉽게 중단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뚝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일곱째, 교육과정 편성권과 의사결정권이 교사에게 있다. 중앙정부의 통제를 유지하면서도 교사와 학교에게 의사결정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Thinking School, Learning Nation이란 국가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교사가 자율성은 가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정책결정자, 연구자들에 비해 교사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의 교사들에게는 이런 권한이 없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중앙정부가 교육과정 내용을 일일이 통제한다는 것은 붕어빵(one-size-fits-all) 교육을 하겠다는 것과 하등 다름이 없다.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 마련 과정에서도 교사는 주역이 아니었다. 통제와 자율성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도 교사의 자율성은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여덟째, 교사학습공동체(PLC)가 활성화되어 있다. 멕킨지 컨설팅 회사의 분석에 의하면 싱가포르는 최상의 교육역량을 갖추기 위해 교사 학습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그 속에서 교사들끼리의 협력체계를 잘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교사 학습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수업혁신의 핵심과제다. 교사들이 섬처럼 존재하고 개인의 헌신에 맡기는 현재의 학교문화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아홉째, 학교 간 네트워킹이 활성화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이를 위해 학교를 특성별로 묶는 클러스터(cluste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는 교육부를 정점으로 하는 상의하달식 구조를 벗어나 학교 간 네트워크를 조직해 상호 소통하며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쟁자와 협력하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학교 내 혹은 학교 간 성공사례와 실패로부터의 교훈을 나누고 상호 발전하는 여건과 문화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열째, 초등학교 때부터 진정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학교 밖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한국의 경우, 봉사활동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이를 장려하지 않는다. 이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게 하는 격이다. 입시 때문에 진정성이 있는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한 학습을 장려하지 못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열한째, 방과후 비교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특기를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방과후 특별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학원화 되어 가고 있는 한국의 방과후 학교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열두째, 교원 성과급이 있으나 지급기준이 표준화 시험성적과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다. 학생의 성적이란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변동성도 크다. 따라서 교원 성과급을 성적에 따라 지급할 경우 이는 타당성도 결여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부작용은 매우 크다. 만일 측정 가능한 학업 성적이 교원 성과급 지급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학교교육이 시험성적을 위한 교육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학업에 흥미가 없고 학습결손이 누적된 학생들은 더욱 배제 내지 소외되게 될 것이다.

4. 맺음말

『학교교육 제4의 길(The Global Fourth Way)②』의 내용 중 싱가포르의 교육혁신 원리를 살펴보았다. 서로 모순적 관계로 보이는 요소들을 창조적 역설로 이끌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 '교육적 성공'(국제간 학업성취도 비교시험에서)을 이룬 싱가포르의 사례분석은 진위 여부를 떠나 흥미로우며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교육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적 바탕 위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교육 혁신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무시한 채 추진할 수는 없다. 외국의 성공사례나 좋은 아이디어를 수입해 와도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바로 문화적 이질성 때문일 때가 많다. 싱가포르 교육개혁이 주는 값진 시사점은 바로 이 점이다. 싱가포르의 문화 속에 비판할만한 많은 요소가 내재해 있다 하더라도 그 요소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면 이를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싱가포르 교육개혁이 주는 교훈은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 do)'에 관한 것보다는 '어떻게 존재할/작동하게 할 것(how to be)인가'에 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한국은 아직도 여전히 교육과정 개정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도 현재의 입시제도나 학교문화와 공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의 개정이다. 그래서 역량 함양을 강조하고, 빅 아이디어(=대개념, 핵심원리)에 의한 교육과정 재구조화를 통해 전통적인 지식전달식 수업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지난할 것이다. '어떻게 작동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깊은 고민과 대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과 관련해서 수능, 내신, 대입전형을 함께 고려한 교육과정 개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작동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은 없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만 가득한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 대해 우려되는 점이 많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는 무엇이고 이를 긍정적 발전의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거스르거나 피해가려 하기보다는 싱가포르처럼 'A and B' 방식의 양자포괄적 접근으로 대척점에 있는 상반된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접근을 해보자. 이는 문제해결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이런 새로운 접근이 교육 발전에도 유의미하며 실현가능성도 더 높을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내는 데도 이런 접근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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