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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함께했던 프랑스 대학교수, 이재용 부회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다

ⓒ삼성그룹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학 동문인 폴 조뱅 프랑스 디드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삼성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이 부회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는 서한에서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자들과 삼성전자 사이의 분쟁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며 "젊은 시절 그토록 공정하고 총명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니, 재용씨가 피해자들에게 정당하고 윤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힘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공유정옥 활동가가 번역한 공개서한 내용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폴 조뱅 (케이오 대학교 시절 동기이자 현재 프랑스 파리 디드로 대학교 동아시아학 조교수)

재용씨에게 (*)

우리가 (일본) 케이오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의 MBA 프로그램에서 함께 공부한 지 이십 년이 지나긴 했지만, 저는 아직도 재용씨가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매번 주의 깊게 수업 준비를 하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교실에서 토론을 할 때면 재용씨는 명료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하고 반짝이는 의견을 내곤 했지요. 그리고 재용씨는 친절하기도 하고 공정하면서도 다가서기 쉬운 사람이었어요.

한번은 도서관에서 재용씨랑 수다를 떨다가 제가 장학금 신청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재용씨도 신청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본 적 있었죠. 재용씨가 장학금이 필요없다는 얘기를 웃음으로 얼버무린 기억이 나요. 나중에 다른 동급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저를 비웃으면서 “재용이가 삼성 이건희 회장 아들이고 그 왕국의 상속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하더군요. 뭐, 사실, 그만큼 제가 무심했던 거겠죠. 하지만 그만큼 재용씨가 자신을 요란하게 내세우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재용씨는 “누군가의 아들”로서만이 아니라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죠. 전 재용씨가 삼성전자에서 눈부신 경력을 쌓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재용씨의 동급생이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케이오 대학교에서 우리를 가르친 교수님들이나 우리의 “M16” 동기들 역시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재용씨에 대해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재용씨의 회사에서 너무도 젊은 나이에 백혈병이나 다른 병에 걸린 직원들이나 병으로 죽어간 이들의 유족들에게 재용씨네 회사가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 보면 가슴이 아파요. 재용씨도 그런 회사의 태도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요.

케이오 대학교 시절, 경영 전략 수업 시간에 모리나가사에서 비소로 오염된 우유 때문에 생긴 사건을 토론한 적이 있었지요. 기억하세요? 후루가와 교수님은 우리에게 독성물질로 망가진 어린이들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마침 우리 동급생 중에 모리나가 직원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그 사람에게 이 피해자에 대한 공정하고 윤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보라고 하자 부끄러워했죠. 그 모습에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수업은 제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요. 저는 나중에 치소 화학 회사와 미나마타 병이라는 또다른 극적인 산업 질병을 저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다뤘거든요. 삼성전자 전직 노동자들과의 논쟁이 어떻게 되어왔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영어로 읽을 수 있었던 자료들을 통해서 보면 지금 재용씨네 회사는 모리나가나 치소 화학이 경험했던 것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대만에서 RCA라는 전자 회사와 그 모기업인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그리고 프랑스의 테크니컬러(톰슨 전자)을 상대로 한 소송을 지켜보아왔어요. 여러 종류의 암, 유산, 기타 질병에 걸린 529명의 전직 노동자들이 소송을 한 것이지요. 이들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삼성보다 더 복잡해요. 그런데도 지난 4월 타이페이 지방법원은 이분들의 건강 문제가 직장에서 노출된 유기용제와 기타 독성물질 때문이라고 인정했어요. 이 소송은 항소심으로 이어지면서 940명이 넘는 원고들이 더 추가되었어요.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은 변호사 비용이나 보상금으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형 소송이지요. 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회사의 브랜드에 무척 나쁜 인상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안 좋구요. 저는 지금 삼성의 행동이 삼성의 세계적인 명성을 변색시키고 있다는 점이 걱정됩니다.

올해 초 삼성전자는 협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협상에 대해 최근 삼성이 보이는 모습에는 정당성이 부족해 보여요. 재용씨가 200명 이상의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반올림과의 사회적 대화를 가능한 빨리 재개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진지하고 투명하게 대화하시면 좋겠어요. 아시겠지만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자들과 삼성전자 사이의 분쟁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요. 만일 집단적인 법적 대응이 시작된다면 회사 브랜드에 더욱 큰 손상이 생길 거예요.

이런 문제는 “경영 전략”에서도 꼭 고려해야 한다는 거 재용씨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재용씨가 오래 전 모리나가 사건을 두고 교실에서 토론하던 때, 후루가와 교수님이 정당하고 윤리적인 대처에 어떤 걸 생각해보라고 권하셨는지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회사의 부회장으로서 재용씨가 이 교섭에 대해 얼마나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그토록 공정하고 총명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니, 재용씨가 피해자들에게 정당하고 윤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힘쓰기를 바랍니다.

이 일들을 겪으신 그분들과 재용씨를 위해 기도할께요.

폴 조뱅 드림

(*) 우리가 못 만난지 오래 되어 이렇게 불러도 될 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케이오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시절에 영어로 말할 때는 서로 이름을 불렀고, 일본어로 말할 때는 성을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재용씨의 개인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csr.partner@samsung.com으로 메일을 보냈고, 재용씨가 읽을 가능성을 높이려고 이렇게 편지를 공개합니다. 재용씨가 불편해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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