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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은 쏙 뺀 검열된 정통사극

임오화변은 결코 평범한 처형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상자 안에 넣고 말려죽인 사건이다. 평범한 아버지는 평범한 아들을 이렇게 죽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비정상적인 잔혹행위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도>는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건 이 영화가 '정통사극'이긴 해도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일종의 예술적으로 검열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해 가능한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이야기는 뒤주에서 끝날 수 없다. 이건 잘못된 방정식이다.

  • 듀나
  • 입력 2015.09.16 06:50
  • 수정 2016.09.16 14:12
ⓒ쇼박스

<사도>는 이준익이 만든 첫번째 '정통사극'이다. 이 '정통사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정말 중요하긴 한 건지는 모르겠다. 역사를 다룬 위대한 예술작품 상당수는 '정통사극'과 전혀 상관이 없다. <리처드 2세>는 정통사극이고 <맥베스>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맥베스>가 <리처드 2세>에 비해 열등한 작품인가?

하여간 이준익은 정통사극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 소재로 삼기 위해 임오화변을 가져왔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안에 가두어 말려죽인 사건.

아무리 정통사극이라고 해도 역사책에 나온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는 없다. 그는 여기서 될 수 있는 한 정치를 지우고 이씨 집안 가족 내부의 부자간 갈등에 집중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익숙하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아들은 그게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때문에 망가지고 만다. 영화는 부자 양쪽 모두에 감정이입이 가능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건 좋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 덕택에 종종 성공한다.

여기에 '종종'이란 말을 덧붙인 건 이 계획이 온전히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오화변은 결코 평범한 처형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상자 안에 넣고 말려죽인 사건이다. 평범한 아버지는 평범한 아들을 이렇게 죽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비정상적인 잔혹행위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도>는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건 이 영화가 '정통사극'이긴 해도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일종의 예술적으로 검열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해 가능한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이야기는 뒤주에서 끝날 수 없다. 이건 잘못된 방정식이다. 무언가가 더해져야 한다.

여기서 그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숨겨져 있는 비밀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를 내는 것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예민했던 조선시대의 문화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시 영조가 감당해야 했던 정치적 상황과 사도세자라는 인물의 캐릭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자다. 아무리 남은 사료들을 취사선택해서 사도세자를 부당하게 미치광이 살인마로 몰린 정치적 희생양으로 보고 싶어도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가 벌인 소동이 너무 많으며, 그 사건들을 담은 사료가 너무 많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비정상성을 인정하고 비어 있는 방정식을 채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이해 가능한 스펙트럼 안에 타인의 이야기를 가두고 그걸 이해라고 착각한다. <사도> 역시 그런 함정에 빠진 영화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의 스펙트럼은 우리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좁은 부류의 사람들의 사고방식보다 훨씬 넓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그 스펙트럼 전체이다. '정상인의 사고방식'만으로 이를 해석하려 한다면 결국 이야기는 납작해지고 부조리해진다.

<사도>의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그것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스크린 앞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의 흐름을 자체 설명할 수 있는 재료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한다면 오히려 퓨전 드라마였던 <왕의 남자>가 더 믿음이 간다. 적어도 나는 스크린 속 허구의 인물들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영화 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물론 책으로 배운 경극을 무대에 올리는 장면만 빼고. 그건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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