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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커서 아이가 됩니다, 미셸 공드리의 MV 포트폴리오(동영상)

영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감독이자 리바이스 TV 광고로 단일 광고 최다 수상 기네스를 타이틀을 가진 미셸 공드리.

알고 보면 그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참신한 영상으로 다양한 창작자에게 영감을 마구 불어넣는 그의 뮤직비디오 포트폴리오를 훔쳐보자. 그는 천재이기 이전에 아이 같이 천진한 사람이다.

글. 서종원 <월간 웹> 기자 seo@websmedia.co.kr

Δ 음악 먹고 자란 미셸 공드리

음악가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으레 음악성 감수성이 풍만한 삶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미셸 공드리 또한, 재즈뮤지션 출신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그리고 전자 키보드를 발명하고 전자오르간 가게를 운영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그의 작품 곳곳에서 음악적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니, 그의 작품에서 음악은 핵심처럼 다뤄진다고 보는 게 맞다.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영화 곳곳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고, 직접 뮤직비디오 또한 제작하고 있으니까. 영화 <수면의 과학(The Science of Sleep)>에서 동물 옷을 뒤집어쓰고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위해 ‘If You Rescue Me’를 부르는 연출은 그의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작품관이 잘 묻어난다. 참고로 본 곡은 앤디 워홀이 직접 프로듀싱했던 60대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After Hour’의 가사만을 바꾼 곡인데, 당시 실험적인 음악을 하던 밴드의 곡을 사용한 점을 들면 미셸의 취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그의 영상도 기술적, 연출적으로 다분히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뮤지션을 그만두고 악기점을 운영했던 그의 아버지는 정들었던 가게를 그만둘 때 미셸에겐 드럼 세트를, 동생인 올리버에게 베이스 기타를 선물한다. 그때부터 드럼 연주에 심취한 미셸은 동생과 함께 밴드 활동을 했고, 파리에 있는 아트스쿨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위위(Oui Oui, Yes를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밴드를 시작한다. 10년에 걸쳐 정규 음반 두 장과 열 개의 싱글 곡을 발표했지만,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제작한 위위의 뮤직비디오 부터였다.

비요크(Bjork) Human Behaviour

비요크(Bjork) Army of me

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의 본격 데뷔

시작은 비요크(Bjork)였다. 그가 메이저 신의 궤도에 올라탄 시점은. 뛰어난 일렉트로닉 뮤지션이자 신비한 매력을 가진 비요크는 위위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미셸 공드리에게 자신의 솔로 데뷔곡인 ‘Human Behaviour’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긴다. 숲 속에서 곰 인형에게 쫓기는 악몽을 동화적으로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비요크의 성공적인 솔로 활동의 출발점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미셸은 ‘Army of me’와 같은 그녀의 대표곡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끊임없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예술적 조력자 앤디 워홀이 있었듯, 비요크에겐 미셸 공드리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Δ 몸에 밴, 동시에 노력으로 빗은 리듬감

그의 음악적 자양분은 이후 연출한 뮤직비디오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표작으로는 올해 안산 M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바 있는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뮤지션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의 ‘Star Guitar’ 뮤직비디오를 들 수 있다. 본 뮤직비디오에선 기차 창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보여주는 데, 재미있는 건 지나치는 전신주와 건물이 곡의 박자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드러머 출신으로서 자연스럽게 리듬감에 몸에 배어 있는 그는 메이킹 필름을 통해 곡의 박자를 펜으로 그리며 아이디어 스케치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뮤직비디오 제작 시 박자를 하나하나 모눈종이에 기록하는 등 세심하게 프레임을 연출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리드미컬한 영상은 전적으로 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시에 철저한 계산에서 탄생한 점이 놀랍다.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Around the World’도 그의 박자감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뮤직비디오다. 열평 남짓의 한정된 무대를 활용한 본 뮤직비디오에선 수많은 댄서의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도 미셸은 박자를 정확하게 잡아낸다. 댄서들이 때론 하나의 몸짓으로 혹은 각자의 움직임으로 거대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4분을 조금 넘는 뮤직비디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곡 또한 으레 다프트 펑크의 숱한 노래들처럼 ‘Around the World’라는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하기에 그 몰입감은 더하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가사를 좀처럼 떨쳐내기 어려울 지경이니. 또한, 미국 록밴드 ‘화이트 스타라입스(The White Stripes)’의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뮤직비디오에선 박자에 맞춰 드럼 세트와 기타 앰프를 카메라 앵글이 이동하는 방향에 점진적으로 늘리는데, 그의 뮤직비디오는 항상 이런 식으로 감상자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즐겁게 한다.

스테리오그램(Steriogram) ‘Walkie Talkie Man’

Δ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실험적 연출가

앞서 거론했듯 미셸 공드리는 실험적인 영상을 제작하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혹자들은 그의 스타일을 두고 초현실주의나 아방가르드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상상에서 비롯된 동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유독 꿈이나 환상처럼 초현실적인 어떤 것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가 연출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만 보더라도 헤어진 연인의 행복했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현실과 상상을 동일한 차원의 공간인 것처럼 섞어놓는다. 시간 나열도 뒤죽박죽이라 방심했다간 영화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 우리가 꾸는 꿈이 맥락 없이 자유롭게 전개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분절된 시간 사이의 공백은 감상자의 상상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듯 시간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서만 남겨 놓는데, 여자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머리 색깔을 바꾼다는 사실을 통해 감상자는 머릿속으로 사건 순서를 재구성해야만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다소 실험적인 연출작임에도 큰 사랑을 받았던 건 아이 같은 상상을 스크린에 옮겨온 미셸 공드리의 탁월한 상상력 덕분일 것이다. 최근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밴드 ‘혁오’도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공드리’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상상력은 또 다른 상상력을 낳은 것이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이런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미국 록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Knives Out’에선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의 뇌를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다. 뮤직비디오 속 TV에선 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카메라 앵글을 이동하면 두 사람이 같은 공간 안에 누워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과 시간이 왜곡된 듯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 속 배우들을 보면 꿈이나 상상임을 짐작하게 한다. 감상자들은 침대에 누워 괴로워하는 남자 주인공은 현재의 모습이 TV에서 나오는 과거로 비롯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을 TV 속 과거와 괴로운 현재를 동일 선상에 나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비튼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말이다.

hp commercial

Δ 애니메이션을 영상으로

미셸 공드리는 영상에서 애니메이션적인 실험도 거듭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남자 주인공인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일명 ‘불렛 타임(Bullet Time)’)에서 360도로 회전하며 정지된 순간을 보여주는 연출은 미셸 공드리가 먼저 사용한 기법이다. 미셸 공드리는 애니메이션 연출 기법을 영상에 빌려 사용하곤 하는데, 이 또한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사용한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Like a Rolling Stone’ 뮤직비디오가 딱 그렇다. 마치 마약에 취한 듯 왜곡된 이미지는 마치 60년대 성행했던 사이키델릭 음악의 분위기를 끄집어낸다. 그러면서 정지된 사람들 속에서 프레임 내 중심 인물만을 회전하며 보여준다.

스톱모션 기법도 자주 사용한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Fell in Love with Girl’ 뮤직비디오에선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레고로 재현한다. 어렸을 적 레고를 좋아했던 미셸 공드리는 그 경험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곁들인다. ‘스테리오그램(Steriogram)’의 ‘Walkie Talkie Man’에선 레고 대신 털실을 사용한다. 기존 클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재를 변경한 것이다. 두 뮤직비디오 역시 미셸 공드리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있어 더욱 흥겹다.

위위(Oui OUi) ‘La Ville’

Δ 여전히 아이 같은 미셸 공드리

미셸 공드리는 자신의 창작 동력을 아이 같은 호기심 덕분이라고 말한다. 앞서 거론했던 영화, 뮤직비디오들이 어쩐지 아이들의 시선이 담겨있는 이유도 그런 탓이다. 실현될 수 없는 동화적 상상력, 어렸을 적 레고를 가져 놀던 경험, 꿈과 현실을 뒤죽박죽 섞어내는 방식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에선 철없는 어른들이 비디오 가게를 살리기 위해 전기 사고로 지워진 필름을 직접 촬영해 대신 채워 넣는다. 그들의 천진함이 바보스러웠던 건 아마 우리가 어린 시절의 상상들을 잊고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상황을 경계한다고 하니 그의 새로운 작품들도 기대할 만하다.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들로 영감을 줄까. 그의 상상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월간 웹(w.e.b) 9월호의 기사입니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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