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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동물원, 에코마케팅

우리가 코스타리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일인당 GDP 1만5000달러의 나라에서 동물원 문제가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수표'를 꺼내 장사를 잘 했지만, 어쨌든 환경/동물단체는 진지하게 싸워왔다. 지난달말에는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수백명이 가두행진까지 했다. 영국이나 미국 등 환경/생태 선진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 남종영
  • 입력 2015.09.14 11:35
  • 수정 2016.09.14 14:12

코스타리카에서 정말로 동물원이 없어진다고? 지난 8월말 코스타리카가 동물원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소셜네트워크 중심으로 떠돌았다. 설마, 그럴리가. 역사는 그렇게 쉽게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환경/동물 뉴스는 부정확한 것이 많고, 센세이셔널리즘을 타고 거두절미하고 퍼진다. 지난해말 아르헨티나 법원이 동물원 침팬지를 '비인간인격체'로 규정했다는 소식도 비비시(BBC) 등 유수 언론까지 오보를 터뜨렸다.

코스타리카 현지 영자매체 <티코타임즈>에서 일했던 린지 펜트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그녀는 약간 격앙된 문체로 "옛날 뉴스가 뜬금없이 되살아나 소동이 빚어졌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2년 전 뉴스가 새 뉴스처럼 유통되고 있다고. 허핑턴포스트도 이런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세계 최초로 동물원 없앤 나라가 나온다) 그녀에게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의 진실'에 관한 피처 기사를 요청해 12일 <한겨레> 토요판에 실었다. 전세계 언론에서 처음으로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의 속사정을 다룬 기사다. (관련 기사 : "99년 가뒀으면 충분해~동물감옥을 폐지하라") 결론부터 말하면, 코스타리카가 동물원을 폐지하는 첫 나라가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의 유일한 동물원 '시몬 볼리바르'의 사자 '키부'. 린지 펜트 제공.

코스타리카의 동물원 폐지 논의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이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읽어들여야 한다.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다. 정글이 펼쳐져 있고 대서양, 태평양에는 남극의 고래가 올라오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나라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다른 중남미와 달리 '반미운동'이 가장 잠잠한 나라다. 코스타리카가 살 길로 택한 것은 '생태관광'. 바로 친미적 정치노선을 유지하며 정치적 안정성을 꾀하고, 미국의 3억인구를 유인해 생태관광으로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관광객의 대다수는 미국인이다. 미국의 정치적 우산 아래 있으면서, 1949년 군대도 폐지했다.

그러니까 코스타리카의 이런 역사적 경로는 산다니스타 같은 반미해방군이 활약하고 좌파정권이 들어서기도 하는 대개의 중남미 국가와 다른 것이다. 정치지리학에서 중남미 국가는 자연환경과 원주민 그리고 식민지정치학을 탐구하는 아주 중요한 소재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다. 쿠데타를 지원하고 정권을 조정하는 등 미국이 정치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다국적기업은 방패막 뒤에서 원주민의 땅을 사고 개발을 시도한다. 원주민은 이산한다. 반대로 서구적 가치를 이어받아 자연경관이 우수한 소수지역은 국립공원 등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 보호구역에서 인간은 '야생의 파괴자'이기 때문에 원주민은 소개된다. 이런 사람들을 '보전 난민'(conservation refugees)이라고 부른다. 개발이나 보전이나, 이러나저러나 원주민은 쫓겨난다. (물론 자연보전이 주민을 착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개념에서는 좀 낯설 것이다.) 중남미 반미운동과 반정부운동은 바로 이런 모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개발과 보전의 정치학에서 후자만을 택했다.

린지 펜트가 기사에서 잘 정리했듯, 코스타리카에서 동물원이 사라지는 첫 나라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정부는 2003년 정부는 국립동물원을 민간에 위탁했고, 운영권자 '푼다소'는 시설 개선을 하지 않았다. 비판 여론 때문에 푼다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정부는 2013년 '푼다소와 재계약 중단'은 물론 '동물원 완전 폐지'를 선언한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코스타리카의 한걸음을 전세계 언론이 대대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푼다소는 소송을 제기하고 이듬해 정부는 패소한다. 판결 결과, 2024년까지 동물원 운영권 계약이 연장된다. 그뒤 정부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종의 '에코 마케팅' 차원에서 '동물원 폐지'를 이용한 혐의가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질문도 제기된다. 동물원에 수용됐던 동물들은 야생방사하거나 '야생동물구조센터' (animal shelter)에 보낸다고 정부는 밝혔는데, 그렇다면 야생동물구조센터는 동물원이 아닌가? 사실 야생동물은 인간의 시설에 들어서는 순간 '사육'된다. 감금전시동물(captive animals)이 된다는 얘기다. 코스타리카 동물원이 저열한 동물쇼 같은 걸 하지 않는다면야, 나는 야생동물구조센터와 동물원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좁은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있느니, 동물원 사육시설을 개선시키는 게 낫다. ('동물원'이라는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에 방사해 키우는 민간 소유의 야생센터 또한 존재한다.) 야생방사의 경우 무조건 동물을 풀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직 야생방사에 대한 과학의 지식은 짧고,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코스타리카 정부의 '동물원 폐지' 선언은 국가이미지 마케팅, 말하자면 정치적 성격이 크다는 점을 우리는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코스타리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일인당 GDP 1만5000달러의 나라에서 동물원 문제가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수표'를 꺼내 장사를 잘 했지만, 어쨌든 환경/동물단체는 진지하게 싸워왔다. 지난달 말에는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수백명이 가두행진까지 했다. 영국이나 미국 등 환경/생태 선진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한겨레> 토요판은 동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생명면'을 내보내고 있다. 개개의 동물학대 사건이나 예쁜 고양이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서 한층 진지하고 발본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코스타리카 동물원 기사를 시작으로 세계의 능력있는 환경저널리스트와 협업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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