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년아, 멈추지 말아라.

마치 게임의 다단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분이 든다. 음모론 기반의 스토리에 SF물에 걸맞은 비주얼을 포장하고, 플레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크랭크'라는 존재들의 출몰을 통해 좀비물에 가까운 서스펜스를 장착했다가 끝내 결말부에선 액션물의 스펙터클을 전시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린 소년들의 모험은 전통적인 어드벤처물의 흥미를 더하는 구석도 있다. 상당히 영리하게 설계된 오락영화라고 칭찬할 만하다. 전반적으로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혈기왕성한 쾌감이 느껴진다.

  • 민용준
  • 입력 2015.09.15 10:17
  • 수정 2016.09.15 14:12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시 소년들은 뛴다. 생사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멈출 수 없다. 멈추지 않는다.

<메이즈 러너>는 일방적인 물음표를 안고 달리는 영화다. 정체 모를 미로로 둘러싸인 숲으로 끌려들어온 아이들.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열리고 닫히는 미로로 통하는 문. 그리고 문이 열리면 미로로 달려나가 한 뼘이라도 더 전진하고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는 일상. 정체 불명의 존재로부터 전달되는 식량 덕에 소년들은 삶을 연명하고 나름의 룰을 정하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지만 그 숲엔 미래가 없다. 그래서 소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찾아서 달린다. 미로 속으로. 밤이 되면 미로에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괴물에 대한 공포가 만만치 않지만 그들은 그 미로를 통과해야만 자신들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미로를 누비며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 어느 날 문이 닫히질 않는다. 밤에 그 미로에 갇혔다가 살아서 돌아온 한 소년 때문인지, 소년들밖에 없던 숲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소녀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더 이상 닫힐 줄 모르는 문을 통해 공포의 대상이었던 괴물이 침입하고 소년들의 안식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미로로 내달린다. 안전하게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안식처는 사라졌으므로. 그리고 그 미로에서 수많은 위험과 맞닥뜨리는 와중에 몇몇 이들은 필연적인 희생을 치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그 동안 닿지 못했던 곳에 다다르고 끝내 그곳을 돌파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듯 <메이즈 러너>는 미로 같은 물음표 속을 내달리는 소년들의 생존기를 박진감 있게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은 <메이즈 러너>의 속편이다. 전작인 <메이즈 러너>에서 글레이드(glade)라 명명된 미로를 통과했던 소녀, 소년들은 자신들을 가둔 이들이 '위키드'라는 모종의 조직이란 것을 알게 되고 위키드가 자신들을 새로운 위험으로 몰아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다시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스코치(scorch)라고 명명된 사막화된 폐허 도시를 건너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시무시한 위기를 여러 번 맞닥뜨린다. 그리고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앞에 그들을 살릴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메이즈 러너>는 사실상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 사례로부터 파생된 기획 상품이다. 비슷한 종류로 <헝거게임>과 <다이버전트>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앞에서 열거한 작품들의 세계관은 저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모티프는 동일하다. 새로운 세대를 제물 삼아 자신들의 생존 혹은 영광을 수성하려는 기성 세대에게 저항하는, 영웅적인 면모를 타고난 소년 혹은 소녀가 세계를 구한다는 것. <메이즈 러너>도 결국 그런 류의 이야기이다. <메이즈 러너>의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는 <해리 포터>의 해리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이고, <헝거게임>의 캣니스(제니퍼 로렌스)이며 <다이버전트>의 트리스(쉐일린 우들리)이다. 영웅적인 면모를 타고난 이들은 자연스럽게 리더가 된다. 그리고 리더의 곁엔 그를 따르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리더를 돕고, 리더와 함께 위기를 돌파한다. 소년, 소녀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 결국 이건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이 담긴 구원의 이야기이면서도 사소한 성장통을 담은 성장드라마인 셈이다.

다시 <메이즈 러너>에 집중하자면, <메이즈 러너>는 미로 탈출이라는 단순한 설정과 음모론적인 세계관을 더해서 굉장히 명확한 재미를 수확한 작품이다.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은 그 단순한 세계관의 명확한 재미에서 벗어나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복잡한 재미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저마다의 요소가 명확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덕분에 영화는 다양한 재미를 단계적으로 제공한다는 장점을 거머쥔다. 마치 게임의 다단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분이 든다. 음모론 기반의 스토리에 SF물에 걸맞은 비주얼을 포장하고, 플레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크랭크'라는 존재들의 출몰을 통해 좀비물에 가까운 서스펜스를 장착했다가 끝내 결말부에선 액션물의 스펙터클을 전시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린 소년들의 모험은 전통적인 어드벤처물의 흥미를 더하는 구석도 있다. 상당히 영리하게 설계된 오락영화라고 칭찬할 만하다. 전반적으로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혈기왕성한 쾌감이 느껴진다.

전작에 이은 서사적인 흥미도 여전하다. 소년들은 자신들을 대상으로 못된 짓을 꾸미는 위키드라는 단체의 어른들을 향해 저항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저항을 돕는 착하지만 가난한 어른들도 등장한다. <메이즈 러너>는 지금의 세계를 대변하는 세대 전쟁의 우화다. 물론 이렇게 심각한 근심을 짊어지고 이 영화를 즐기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스펙 경쟁 속에서도 실업난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상기하자면 이 영화는 마냥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치부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견딜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들의 이상을 향해 뛰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로부터 저항의 메타포를 읽는 것만큼이나 자신들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의 세계관의 틀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싸움일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무엇보다도 혈기왕성한 젊은 배우들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것 또한 <메이즈 러너>를 보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뉴페이스의 보고라 할 수 있었던 <메이즈 러너>를 잇는 작품이니 결국 그 매력적인 신예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토마스 역의 딜런 오브라이언과 그의 강력한 조력자인 뉴트와 민호 역의 토마스 생스터와 이기홍은 전작에 이어 여전히 혈기왕성한 매력을 전한다. 동시에 새롭게 등장하며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아리스 역의 제이콥 로플렌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역시 전작으로부터 살아남은 트리사 역의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예상치 못한 결말을 열며 이후의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기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성배우들의 출연은 보다 확장된 동시에 확연해진 음모론의 무게감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여러 모로 다음 속편이 기대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되는 속편을 보기 위해선 이 작품을 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밟지 아니할 수 있겠나.

(모바일앱 에서 연재되는 리뷰를 재구성했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