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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를 보며 "나라도 하겠다"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

카즈미르 말레비치의 'Black Square, Black Circle, Black Cross'

솔 르윗은 현대 미술 작품 활동의 여러 가지에 대한 꽤 훌륭한 입문이 되어주는 글 ‘개념 미술에 관한 짧은 글’에서 ‘아이디어만으로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아이디어는 물질적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마음에서 감상자의 마음으로 가는 지휘자로써 이해될 수 있다.’ 아이디어가 감상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 아이디어가 예술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예술과 관련이 있고 예술의 관습을 따른다면’ 모든 아이디어가 예술이라고 상정한다.

나는 PBS 디지털 스튜디오스 프로덕션이 매주 발표하는 ‘아트 어사인먼트’의 최근 화를 보다가 이 말이 생각났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은 큐레이터 새라 그린이 맡는다(그녀의 남편은 영 어덜트 작가이자 가끔 ‘아트 어사인먼트’의 공동 진행을 맡는 존 그린이다). 이 멋진 시리즈에서, 그녀는 미국의 현업 작가들을 찾아가 시청자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임무를 받는다. 예술적 성향이 있는 성인들을 위한 ‘3-2-1 콘택트’(주: 어린이용 과학 교육 프로그램) 같은 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 달에 올라온 영상에서 그린은 잘 알려진 예술에 대한 말을 공격했다. 바로 “나라도 하겠다.”이다. 예를 들면 “야, 저 개념 미술 작품은 저게 뭐냐. 이해가 안돼. 나라도 하겠다.” 같이 쓸 때의 말이다. 아마 우리 모두 들어본 적 있는 말일 것이다. 젠장, 우리 입으로 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린은 이 말을 아마추어들이나 감히 입에 담는 피곤한 반응으로 치부하지 않고, 이 말이 예술을 소화하는 데 있어 왜 도움이 안 되는 말인지 파고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다. 당신은 미술 작품을 보고 있다. 당신은 이 작품을 당신이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고, 그래서 그 작품의 가치를 낮게 보거나 이게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린은 몇 가지 시각을 제기한다.

잠시 생각해보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보기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고 기술적 요소가 없어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날 때도 있다.” 줄리언 바기니가 작년에 인디펜던트에 쓴 글이다. 이건 잘못이 아니다. 사실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일 수 있다. 당신이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라고 상상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가상 시나리오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걸까?

그린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예로 사용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몬드리안의 부드럽고 산뜻한, 균형 잡힌 데 스틸 작품의 선을 만드는 것을 정말로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당신은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의 프레임을 짜고,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고, 공들여 캔버스에 물감을 칠할 수 있을까? 그런 다음 갤러리 주인, 큐레이터나 고객에게 작품을 넘기고, 반드시 찾아올 비평을 기다릴 수 있을까? 작가와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에게 당신의 결정을 변호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신 자신의 모티브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당신의 아이디어나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관점을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몬드리안의 Composition with lines and colour

좋다, 할 수 있다고 당신은 결정했다. 하지만 왜 하는가?

당신은 그 모든 것들, 그리고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이제 그린의 다음 질문으로 가자. 당신은 왜 그걸 하는가? 혹은. 당신의 자만심은 부족하지 않은 것 같으니, 우리의 초점을 바꿔 다시 예술가를 생각해보자. 왜 그 예술가가 당신보다 그걸 먼저 했을까? 그린의 표현을 빌면 어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작품을 창조하고 전시하고,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고 또 그 결과를 남들에게 보이고, 그게 우리가 미술 비평이라고 부르는 이 미친 춤에서 여럿이 논의하는 주제가 되게 되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하나인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1966년작 ‘람파다 아누알레(연간의 램프)’를 보자. 이 작품은 거울로 된 상자 속에 든 전구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전구는 매년 무작위로 11초 동안만 켜진다. 당신은 “알았어, 상자 안에 든 잘 작동하지 않는 전구로군.”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린이 제안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술가는 왜 이걸 만들었을까? 보에티는 일상 생활의 물건을 재료로 사용해 예술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일원이었다. 생활 속의 물건들 – 전구, 옷, 밧줄, 금속 등 – 을 사용한 것은 산업혁명에 의해 엄청나게 바뀌었던 당시의 소비자 문화를 다루는 방법이었다. 아르테 포베라의 예술가들은 특히 사회가 산업 시대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받아들이는 방식, 우리가 미래를 향한 끝없는 경주에 승선하는 방식,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가 주위의 대상과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에 집착했다. 보에티 같은 예술가는 현대화가 우리의 기억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생각했다.

‘람파다 아누알레’는 이 모든 관심들을 영리하게도 작은 상자 하나에 담았다. 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물건들 – 전구와 거울 – 을 시간 속에서 그대로 사로잡아서, 구경꾼들이 아무 때나 열어볼 수 있는 상자 속에 가두었다. 작은 보존된 공간에 물리적으로 에너지를 고정하는 동시에 오브젝트를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보호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감상자가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볼 기회가 워낙 드물다 보니(1년에 11초), 그러한 가능성 자체가 소중해진다. 갑자기 우리가 이 전구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 전구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도 변화한다. 말이나 언어적 지시를 통해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하는 대신, 보에티는 전구를 상자 속에 넣는 것만으로 당신 주위의 환경과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대단하지 않은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Mappa'

예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자

당신이 보에티나 아르테 포베라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 전구는 당신에게 그냥 전구일 뿐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린은 “그렇지만 당신이 예술 작품이 벽에 붙은 설명 등의 도움없이 당신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다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예술의 목적과 기쁨에 대해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린은 말한다.

“모든 오브젝트는 중요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며, 자신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분포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기술적이나 미학적으로 당신에게 흥미롭지 않은 예술도 당신에게 지배적인 예술 트렌드, 가치의 개념, 상업적 체계, 그린이 지적하는 예술과 삶의 분리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 예술가의 목적은 언제나 정확한 솜씨의 지고한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의 목적은 반응을 구하는 것일 때가 더 많다. 그리고 당신의 반응이 “나라도 하겠다.”(혹은 “이건 예술이 아니야.”) 정도의 얕은 반응이라면, 당신은 조금 더 파고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질문을 몇 개 더 던져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

르윗의 말로 다시 돌아가자면, ‘예술가가 반드시 자신의 예술을 이해한다는 법은 없다. 그의 통찰은 다른 사람들의 통찰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꽤 편해진다.

정말 불편한 것은 예술 작품의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시장에 뿌리내린 체계적 문제다. 하지만 그건 다른 기회에 다룰 문제일 것이다.

루치오 폰타나의 'Concetto Spaziale, Attese'

허핑턴포스트US의 Here's Why You Should Stop Saying 'I Could Do That' About Ar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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