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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화'를 아시나요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의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중략)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지배가 가져다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 조세영
  • 입력 2015.09.11 10:07
  • 수정 2016.09.11 14:12

'간담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2010년 8월 10일에 발표한 담화인데 그 핵심 내용은 이렇다.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의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중략)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지배가 가져다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지금 읽어보니 용케 일본 정부가 이 정도까지 진솔한 문장을 내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식민지지배가 불법이었다고 인정하는 수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가운데 가장 진전된 내용임에 틀림없다.

당시 일본은 중도·진보적인 민주당 정권이었고,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과 오카다 가츠야(岡田克也) 외상과 같은 뜻있는 인물들이 핵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오카다 외상은 담화 문안을 관료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다듬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최근 출간된 회고록에서 그는 '만일 일본이 당시의 한국의 입장이었다면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담화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일본인들에게 던진 것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반면 지난 8월 14일 발표된 아베담화에서는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미안한 마음으로 겸허하게 직시하려는 자세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서초자 한국을 너무 '냉대'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무라야마 담화를 비롯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강경한 대응을 자제했지만,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에 비해 선명성이 크게 후퇴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베담화도 기억에서 멀어지고 사상 최악의 상태라던 한일관계가 곧 개선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꽤나 널리 퍼진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베담화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팽팽한 긴장감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낙관적인 분위기다.

한국외교가 모처럼 주도적으로 포석을 두어가고 있다는 자신감은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이 가져온 과실(果實)이다. 미국과 일본의 불편한 시선을 무릅쓰고 중국을 방문한 대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적극적 협조와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의 약속을 중국으로부터 받아낸 것은 균형외교의 좋은 사례였다.

10월말이나 11월초로 합의된 한중일 정상회담의 계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첫 번째 대좌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역사문제를 의제로 삼아 공방을 벌일 것까지는 없지만, 한국에 대한 기본적 역사인식만큼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일본에는 한국이 끝없이 사죄를 요구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따라서 아베 총리에게 새로운 발언을 주문하기보다는 '한일관계의 4대 중요문서의 내용을 견지한다'고 확언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4대 중요문서란 고노담화, 무라야마담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 간담화를 말한다.

그런데 간담화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그 존재조차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이 강하다. 아베 개인의 보수적 역사관과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한일관계에 관한 주요문서 가운데 유독 간담화만 빠져있다. '간담화 지우기'를 원하는 아베 정권의 입김 때문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간담화는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므로 아베 정권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계승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아베 총리가 4대 문서를 계승한다고 밝히는 것이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첫걸음이다.

* 이글은 내일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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