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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문학창작심사 개입 ‘유신 검열' 되살아나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길들이기’ 시도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이하 예술위)는 올해 문학 장르별 우수 작품에 지원하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에서 특정 작가들의 배제를 요구하고, 심의위원들이 이를 거부하자 직접 결과를 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술위는 또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 분야 작품을 지원하는 ‘창작산실’ 지원 대상에 선정된 유명 연출자에게 직접 작품 제작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계 안팎에서 예술작품을 사전 검열하고 억압했던 ‘유신시대 정치검열’의 부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예술위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예술위는 문학 장르별 우수 작품 100편에 1000만원씩 지원하는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에서 특정 작가 배제 및 결과 조정을 요구했다. 당시 심의위원 중 한 명은 예술위 쪽이 이윤택 등 특정 작가들을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를 줄여 달라” “심사 결과를 조정해 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심의위원은 “예술위 쪽이 14명을 빼야 한다며 이씨를 거론했다. 그 명단을 주겠다고 했지만 위원들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결국 예술위는 지난 7월 이사회를 열어 애초 선정됐던 102명 가운데 32명을 제외한 뒤 70명으로 지원 대상을 축소 선정하는 수정안을 의결했다. 이윤택 작가는 희곡 분야에서 100점을 받아 1순위였음에도 탈락했다. 예술위가 심의위원의 결정을 조정하라는 요구를 넘어 선정 결과까지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윤택 작가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에 신청한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은 연희단거리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으로 필생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떨어지니 민망하다. 내가 예전에(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지지 연설을 하긴 했지만 이후 크게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요 근래 게릴라극장 사업 등이 각종 지원사업에서 줄줄이 탈락했다”고 밝혔다.

선정에 참여했던 한 심의위원은 “가장 큰 문제는 문학적 판단이 아닌 문학 외적 판단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라며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인에게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체 문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4월 창작산실 연극 분야 선정에 참여한 한 심의위원은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예술위에서 심의위원들이 뽑은 8개 작품 가운데 3개를 문제 삼으며, 그중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연출한 작품을 (선정작에서) 제외시키면 나머지 작품은 살려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심의위원 5명 전원이 예술위 요구에 반대하자 예술위 직원들이 박 교수를 직접 찾아가 작품 포기를 종용했다”고 전했다. 연극계에선 박 교수가 2년 전 국립극단 무대에 올려 일부 보수언론에서 문제 삼은 연극 <개구리>의 내용이 빌미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 대선개입을 빗댄 듯한 ‘수첩공주’ ‘시험 컨닝’ 등의 표현이 나온다.

박 교수는 ‘자신 때문에 다른 작품이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불편해’ 지난달 초 결국 작품 제작을 포기했다. 박 교수는 9일 밤 <제이티비시>와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하는 거예요. 그 직원들이 저한테 다 이야기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술위는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은 중견 이하 작가를 지원하려는 취지다. 102명을 70명으로 줄인 이유는 예산이 전년보다 70%로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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