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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만평 삭제에 대한 시사만화가들의 반응

  • 강병진
  • 입력 2015.09.10 13:29
  • 수정 2015.09.10 14:10

지난 9월 8일, ‘한겨레’의 만평 코너인 ‘그림판’이 조간신문 인쇄 직전에 삭제됐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장봉군 화백은 ‘맥심코리아’ 표지를 패러디했다. 다리에 ‘민주주의’라고 적힌 사람이 트렁크에 들어가 있고, 박정희 대통령이 담배를 피는 모습이다. 잡지 표지의 제목처럼 쓰인 카피는 “진짜 나쁜 남자는 바로 이런 거다. 경제발전 했으면 됐지”였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당시 ‘한겨레’ 측은 “해당 표지 사진은 여성혐오·비하 등을 강하게 조성했다. 그 컨셉을 다시 활용한다면 패러디라고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는 내부의 문제제기가 있어 만평을 싣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당시 장봉군 화백은 “창작에 대한 지나친 침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국시사만화협회는 9월 10일, 성명을 발표했다. “맥심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천박한 상술을 쓴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패러디한 장봉군 화백의 만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한겨레 일부 구성원들의 선의를 이해”하지만, 세가지 점에서 “한 신문사의 내부문제로만 여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3가지는 만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만평이 삭제되기까지 절차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 세번째는 “이와 유사한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전국시사만화협회가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성명서 전문이다.

<한겨레에 드리는 글>

전국시사만화협회는 이번 ‘한겨레그림판(만평) 삭제’ 건에 대해 슬픔과 걱정을 담은 우리의 뜻을 한겨레에 공개적인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지난 9월 7일 오후 10 시경, 한겨레는 장봉군 화백의 8일 자 만평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는 있다는 일부 기자들의 항의를 받고 인쇄과정에서 만평을 삭제했습니다.
만평이 소재로 삼은 것은 최근 논란이 된 ‘맥심 표지’입니다. 이 표지는 자동차 뒷트렁크에 나체로 발이 묶인 여성이 갇혀 있는 등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라 하여 문제가 됐습니다. 
전국시사만화협회는 맥심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천박한 상술을 쓴 것이라 판단합니다. 
때문에 이를 패러디한 장봉군 화백의 만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한겨레 일부 구성원들의 선의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세 가지 점에서 이번 만평삭제 건은 한 신문사의 내부문제로만 여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만평에 대한 이해부족입니다.


한겨레 내부에서 지적했듯 원본 이미지(맥심표지)는 여성에 대한 성적혐오와 성범죄를 연상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만평을 삭제한 건 만평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작가는 맥심 표지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기에 이 만평을 그렸습니다. 작가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권력의 폭력이 성폭력과 닮았음을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무도덕한 정치권력에 의한 역사왜곡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힘없는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쟁범죄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같은 날 노컷뉴스는 같은 소재의 만평을 가감 없이 내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풍자 포스터’로 유명한 이하 작가도 같은 소재의 작품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습니다.(이미지첨부) 
전국시사만화협회는 한겨레 일부 구성원의 문제제기가 우리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선의의 지적임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풍자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이해할 수 있다면 더욱 건강하고 진일보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만평이 삭제되기까지 절차의 문제입니다. 


마감과 데스크의 승인, 조판까지 마무리한 시점에서 몇몇 기자들의 문제제기 때문에 인쇄 직전에 만평을 삭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한겨레 측은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과정은 만평뿐만 아니라 지면에 나가는 모든 콘텐츠에 해당한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걱정됩니다. 비단 한겨레그림판 뿐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안 좋은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 정도에 삭제당할 수 있는 것이 한겨레의 시스템이었는지 한겨레에 묻고 싶습니다. 
명백한 오류나 엠바고가 걸려있지 않은 이상 ‘몇몇 기자들의 우려’가 기사삭제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이와 유사한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건 외에도 최근 부당한 만평수정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만평의 수정은 필요할 경우 당연히 있어야 할 과정입니다. 하지만 ‘백낙청 교수가 조중동과 동급으로 묘사하는 건 곤란해서’라든가 ‘광고국 요청’에 의해 삼성관련 만평의 수정이 있었던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한겨레 측은 “작가와의 신뢰 관계를 훼손할 압박은 없었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자기검열은 이렇듯 예의바르게 찾아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낙청’과 ‘삼성’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바뀌어 작가를 압박할 것입니다. 궁극엔 모두가 ‘백낙청’이고 ‘삼성’이 되고나면 그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검열은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한겨레가 창간 이후 엄청난 외부의 압력과 폭력에 시달려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신뢰받는 언론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겨레는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시사만화의 존재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겨레그림판은 시사만화가들에게 특별한 공간입니다. 
또한 한겨레만평은 박재동과 김을호, 박시백 등 당대를 대표하는 시사만화가들이 거처간 곳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겨레는 만화·만평에 대한 교육사업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시민기자·독자만화 등의 공간을 열어 수많은 지망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시사만화가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큽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겨레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여전히 신뢰와 존경을 받아 마땅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류를 인정하고 차후 만평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차후의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한겨레가 거듭 신뢰받는 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필요한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2015년 9월 10일 
전국시사만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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