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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 르네상스

  • 박수진
  • 입력 2015.09.10 10:48
  • 수정 2015.09.10 10:50

[매거진 esc] 신중화요리 시대

오는 10월14일, 케이블채널 에서 요리 프로그램 <중화대반점>이 첫 방송을 탈 예정이다. 새로 결성된 중식 4대 문파의 수장인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 진생용씨 등이 각각 2명의 제자들과 60인분의 중식 요리로 무림 혈투를 벌인다. 한때 중식은 외식의 최고봉이었다. 짜장면은 졸업식 꽃다발과 함께 인생의 한 매듭을 축하해줬다. 2000년대 들어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서양식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중식당은 더 이상 추억의 장소도, 젊은층이 찾는 맛집도 아닌, ‘올드 패션’이 됐다. 칼로리가 높다는 인식도 한몫을 해 참살이 시대에 인기는 추락했다. 하지만 최근 꿈틀꿈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중화대반점>의 옥근태 피디는 “최근 트렌드세터(trend-setter, 의식주와 관련해 각종 유행을 대중화하는 사람이나 기업)들이 중식을 찾는다”며 “이들은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듯한 중식을 ‘펀’(재미)의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신중화요리 시대’다.

대학생 정수경씨가 대만야시장을 찾았다.

새우물만두.

우선, 화려한 고급 중식당도 아닌, 배달 위주로 짜장면 등을 파는 동네 중국집도 아닌, 새로운 콘셉트의 중식당이 요즘 연남동과 서교동 일대 젊은층을 잡아끌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연남동의 ‘대만야시장’. 오후 5시,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대학생 정수경씨는 친구들과 대만식 탕수육과 새우물만두를 신나게 먹는다. “중국요리가 의외로 비싸 엄두도 못 냈는데 여기는 싸고 맛있는데다 새롭다”고 칭찬한다. 대만야시장은 새우물만두 8개, 오향장육이 각각 5000원이다. 350㎖ 맥주 한잔도 2000원이다. 지난해 10월 문 연 이 집은 싼 가격과 푸짐한 음식이 소문나면서 지점이 3개나 더 생겼다. 일명 ‘청요리’라 불릴 만큼 거창했던 중식이 아니라 친근하고 서민적인 대만 가정식 분위기의 음식이 손님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회사원 양진규씨는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 느낌이 많이 나서 신선하다”면서 연남동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만야시장.

대만야시장은 ‘이품분식’ 주인 손덕인(84)씨의 둘째 아들인 손원신(49)씨와 며느리 황정아(50)씨가 연 식당이다. 황씨는 “경기도 안 좋은데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을 열고 싶었다”며 “대만의 야시장이 떠올라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황씨의 남편 손씨는 “20대가 70~80%”라고 전한다. 만두 빚는 솜씨가 뛰어난 황씨는 대만야시장을 새로 열고 나선 새벽 3~4시까지 졸음을 참고 만두를 빚었다고 했다. 야들야들하고 얇은 만두피가 아니다. 도톰한 덩어리 안에 잘 다져 익은 새우살이 그윽한 풍미를 자랑한다. 대만식 탕수육은 우리에게 익숙한 탕수육과는 차이가 크다. 바삭하게 튀긴 고기 위에 소스를 뿌리지 않는다. 별미다. 소스가 없는 탕수육이 있다니! 감탄사가 나온다. 오래된 탕수육의 소스 논쟁(소스를 뿌려 먹는 게 맛있냐, 찍어 먹는 게 맛있냐, 소스 없이 먹는 게 맛있냐)을 아예 처음부터 차단한다.

누리꾼들은 대만야시장을 포함해 연남동의 ‘송가’, ‘띵하우’, ‘편의방’ 등을 ‘중식포차’라 칭하고 찾는다. 어둠이 깔리고 손님이 끊겨 하나둘씩 가게 문을 닫는 시간에도 이들 식당만은 취객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문지방을 넘는다. ‘편의방’은 낮 2시면 일찌감치 멀리서 찾아온 20대들로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는 때가 많다.

왕육성 셰프.

한편에는 가격을 내려 신중화요리 시대를 이끈 고급 식당이 있다. 올해 1월에 서교동에 문 연 ‘진진’은 2만원이 넘지 않는 금액으로 중식 대가의 맛을 볼 수 있는 중식당이다. 오너 셰프인 왕육성(61)씨는 코리아나호텔 ‘대상해’의 대표였다. 60년대 고관대작들이 찾았던 ‘대관원’, 고급 중식당이었던 ‘홍보성’, ‘만다린’, ‘호화대반점’의 중식당 등에서 4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대가다. 50대 내로라하는 화교 출신 요리사들이 사부로 모시는 이다. 그는 “호텔 중식당은 문턱이 높다”며 “메뉴를 10가지 정도로 줄이고, 노부모까지 모시고 올 수 있는, 부담 없는 곳을 열고 싶었다”고 한다. 일명 ‘식빵 새우샌드위치튀김’이라 불리는 ‘몐바오샤’(멘보샤)는 웬만한 중국집에서 맛보기 힘든, 한때 사라졌던 음식이지만 이곳에서는 대표 인기 메뉴로 자리잡았다. ‘궈사오지’(鍋燒鷄)도 차림표에 넣을 예정이다. 궈사오지는 기름에 한번 튀겼다가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에 한번 더 찌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지금은 메뉴로 내는 곳이 거의 없는 요리다. 이곳은 회원으로 가입하면 식사비가 20% 싸다. 후배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제자 황진선(29)씨와 수익을 6 대 4로 나눈다. 2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을 못 볼 정도로 인기다. 곧 별관이 인근에 생긴다.

‘진진’의 왕육성 셰프가 만든 궈사오지.

티브이 프로에 이어 방송광고에까지 인기를 뻗친 ‘이연복’이라는 걸출한 스타 탄생은 최근 중화요리에 대한 관심 급증에 한몫을 했다. 매일 오후 5시, 연희동의 ‘목란’은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마트폰을 꺼내 이연복 셰프와 서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나선다. 40년 넘게 웍(중식 프라이팬)을 잡은 그의 인생사와 솔직한 입담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몇몇 출판사들이 그의 에세이집을 내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오는 9월 중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사부의 요리>가 출간될 예정이다.

팔보완자의 겉을 뜯어내고 있는 왕 셰프.

왕 셰프가 완자요리를 만들고 있다.

변화는 요리사 지망생들에게서도 나타난다. 한국인에게 ‘중화요리=동네 중국집’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중화요리사는 고급스럽지 않은 ‘고된 직업’으로만 인식돼 젊은층들이 기피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2000년대 넘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지의 유명 요리학교 출신들이 귀국해 세련된 레스토랑을 열며 중식계는 찬밥 신세였지만, 요즘은 화교 사부를 모시고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진진의 황진선씨는 “중식이야말로 진짜 요리”라면서 언젠가 왕육성 셰프처럼 대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화교에게 중식을 배운 한국인 1세대 요리사인 워커힐호텔 ‘파로 그랜드’ 김순태(44) 총괄요리사는 국제적인 요리대회에 나가 여러차례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이들이 3~4년 전부터 늘고 있다고 말한다.

중화요리는 이제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 등 다른 음식의 영역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두 달 전 프렌치레스토랑 ‘루이쌍끄’의 이유석 오너 셰프가 ‘무명식당’(무명밥상)의 박세민 셰프, ‘고메트리’의 연규일 대표 등과 열었던 ‘중식문화의 밤’은 중화요리에 대한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행사였다. 서양요리 전문가들이 밤 11시에 모여 쓰촨식 마파두부 요리를 만들고 <영웅본색>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면서 밥을 먹었다. 이씨는 “요즘은 서양식 요리사들도 중식 소스를 쓰는 등 관심이 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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