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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체 게바라가 자동차를 탔다면

자동차는 강철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으로 운전자가 들어간다.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안전하고 온건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다르다. 라이더가 그대로 외부로 드러난 채 프레임의 일부가 된다. 핸들을 붙잡은 채 양 다리를 땅에 디디고 있는 라이더 없이는 모터사이클은 혼자 서 있지도 못한다. 따라서 자동차가 외부환경을 관망한다면 모터사이클은 체험한다. 경험의 질이 다르다.

  • 김남훈
  • 입력 2015.09.09 10:38
  • 수정 2016.09.09 14:12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모터사이클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속도'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빠른 모터사이클도 많지만 느린 녀석도 많다. 이건 상대적인 부분이 있다. 내가 처음 스쿠터를 탔을 때만 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국산 중형 자동차도 엔진 출력이 어마어마하다. 물론 마력대 중량비라는 모터사이클이 갖고 있는 선천적 장점은 속도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최고출력 200마력을 자령하는 카와사키중공업 신형 모터사이클 H2

아마 체 게바라라는 인물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구여친/구남친 사찰용으로 사용하는 구글 검색창에 체 라는 단어를 치자마자 그 옆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단어들이 자동완성으로 뜬다. 이처럼 체와 그가 23살의 나이에 떠났던 모터사이클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만약 그가 영국 Notron의 500cc 단기통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고 자동차로 남미를 일주했다면 혁명가의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체는 '외제 오토바이'를 탈 정도로 부잣집 아들이었고 본인도 의대를 다니고 있었다.여기에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의 결정적 차이이자 미덕이 존재한다.

22살의 체 게바라

자동차는 강철로 만들어진 프레임안으로 운전자가 들어간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안전하고 온건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다르다. 라이더가 그대로 외부로 드러난 채 프레임의 일부가 된다. 핸들을 붙잡은 채 양 다리를 땅에 디디고 있는 라이더 없이는 모터사이클은 혼자 서 있지도 못한다. 따라서 자동차가 외부환경을 관망한다면 모터사이클은 체험한다. 경험의 질이 다르다. 우익 쿠데타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서민들은 궁핍한 그 신산한 삶 속으로 체는 들어갔을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시골길을 달리며 착취당하고 있는 이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뙤약볕에 살이 타는 고통을 같이 느꼈을 것이다. 길 한 켠으로 터벅터벅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처럼 걸어가는 촌로들 옆으로 '외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뭔가 설명하기 힘든 미안함을, 과일 바구니를 들고 가는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 동년배 여인네들을 보면서는 설렘을 드꼈을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때론 티끌처럼 때론 뭉터기처럼 밀려 들어오고 쓸려 나가면서 자각과 성숙을 맞이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베레모가 어울리는 체가 탄생했겠지. 자동차에 달려있는 강철지붕과 유리창은 안전을 담보해주지만 많은 경험을 제한하는 단점이 있다. 거꾸로 이 점이 바로 모터사이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킥 스타터로 시동을 걸고 있는 체 게바라

만약 체가 모터사이클이 아닌 자동차로 여행을 떠났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체 게바라에서 '혁명가'라는 단어를 빼도 그는 많은 미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아마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남미 풍토병 연구에 자신의 젊음을 바치고 흰 가운에 외눈안경을 낀 점잖은 모습으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위인으로 소개되지 않았을까.

모터사이클을 정말 좋아했던 체 게바라

서른아홉의 나이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전사로서 나의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에 타협이란 있을 수가 없다. - 체 게바라

* 이 글은 한겨레21에 기고했던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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