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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품이 아픈 마을, 청양 강정리 석면마을

광산이라고 하면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진 산에 위치해 있는 것이 상식적인데, 여기는 마을의 중간쯤 위치해 있었다. 심지어 광산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을 노인회장의 집이 위치해 있었다. 석면광산의 위치만 봐도 어느 정도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이 가깝다 보니까 석면줄기 폐기물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비산먼지랑 소음이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바람이 부는 맑은 날에는 마을이 안 보일정도로 뿌옇게 돼요."

  • 배보람
  • 입력 2015.09.09 09:48
  • 수정 2016.09.09 14:12

글 | 녹색연합 정책팀 황일수

엄마 품이 아픈 마을, '청양 강정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비오는 날 차안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박자 타는 와이퍼 소리와 함께 가슴이 촉촉해질 때쯤, 청양 강정리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 접한 여기, 충청남도의 작은 마을은 고요하고 안락했으며, 참 예뻤다. 엄마의 가슴처럼 생긴 두 봉우리가 마을을 품고 있었고 높은 야산들의 가로막힘도 없이 제법 확 트인 풍광을 선사했다. 바람이 논 위에서 제법 놀다 갈 거 같은 시원한 경관이었다.

▲ 강정리 마을회관 주변에서 본 마을의 전경

하지만 이런 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빨간색 글씨의 현수막들은 정말이지, 여기랑 어울리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붙어있는 현수막들은 그 느낌이 서울의 그것들과 전혀 다르다. 적막을 깨는 불협화음이랄까. 차를 타고 국도를 지다가다 무심코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속내를 알면 노인들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마을회관을 먼저 방문했다,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이 날은 대전지방법원에서 폐기물매립장건설반대 관련한 5차 재판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마을회관은 흡사 지휘본부 같았다. 현수막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과 부엌 벽에는 지도와 그간 활동해 온 사진, 대자보, 일지까지 언제든 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 녹색법률센터 변호사들과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주민들의 간략한 상황 설명 후에 주민대책위원장과 석면광산을 둘러보기로 했다. 광산이라고 하면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진 산에 위치해 있는 것이 상식적인데, 여기는 마을의 중간쯤 위치해 있었다. 심지어 광산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을 노인회장의 집이 위치해 있었다. 석면광산의 위치만 봐도 어느 정도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광산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게도 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책위원장이 말했다.

"마을이 가깝다 보니까 석면줄기 폐기물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비산먼지랑 소음이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바람이 부는 맑은 날에는 마을이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돼요. 그럼 저희가 요구를 하죠, '최소한 비산먼지 방지대책이라도 좀 세워 달라.' 그렇게 얘기를 해도 광산 들어가는 길목에 살수 작업하는 게 다예요. 그것도 누가 방문한다고 그러면 하고, 평상시에는 그것조차도 잘 안해요. 오늘은 방문객이 온다는 걸 알았나, 비 오는 날 쓸데없이 뿌리고 있네요."

▲ 살수 작업이라고 해도 약 15m도 되지 않는 구간에 물분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석면광산을 보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감시탑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가는 길의 옆으로 작은 언덕이 계속 벽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이 작은 언덕은 평평한 땅이었는데 폐기물을 쌓고 쌓아 만들어진 퇴적물이라고 했다.

▲ 야산을 계속 올라가니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감시탑이 있었고, 석면광산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25톤이 넘는 트럭들은 건축폐기물을 끊임없이 나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폐기물을 파쇄하는 작업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음이 생각보다 심했고, 맑은 날에는 비산 먼지가 날린다고 했다. 또한 주민의 집이 담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마을이 생각보다 가깝게 있었다.

여기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 마을에 있는 석면광산은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석면광석을 채굴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 경기광업주식회사가 광업채굴권을 등록하고 1978년부터 2003년까지 개발하였다. 2001년도부터는 성우환경산업으로 바뀌면서 건축폐기물 중간처리시설이 가동되었고, 이 업체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사문석을 캐서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 공급하였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2011년 채굴이 중단 되었다. 2011년 이후 채굴업체는 사문석 잔여물량 채취 등의 이유로 2013년 말까지 산지 일시사용허가 기간을 연장 신청했고, 청양군은 이를 허가해주었다. 문제는 해당업체가 허가기간이 끝난 후에 사문석을 캐 왔던 산지의 복구절차를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증권으로 예치된 복구비 5억 2100만원을 들여 산지를 복구해야 하는데도 업체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산지 복구에 나서지 않으면서 폐기물처리 과정에서 비산 먼지 등 석면 노출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여전히 석면 피해에 불안해 하고 있다. 강정리 마을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석면피해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치료를 받고 있고, 올해 4월 석면 폐증 환자 1명이 추가 발생했다. 청양군으로 좀 더 확대하면 사망자 5명, 환자는 13명에 달한다.

▲ 마을회관에 제일 크게 걸려있었던 주민 석면피해지도

이와 함께 2010년에 보민환경이 성우환경산업을 인수합병하고 2013년 8월 (주)양지를 설립하였는데, 같은 자리에 일반폐기물 매립사업 인가를 신청하여 주민들을 분노케 했다. 이 업체는 비봉면 강정리 6만8000㎡ 부지에 폐기물매립장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청양군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부적정 통보를 받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근 8월 28일 법원은 이 업체의 부적정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매립장 건립 과정에서 대규모 토사를 채굴할 경우 장기간 석면이 노출되고 비산될 위험이 크고, 주위 환경오염 피해가 상당할 것이기에 사업 대상 부지로 부적합하다고 했다. 이에 그간 싸워 온 주민들은 재판부의 판단에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는 법원 판결로 석면의 존재와 위해성, 주민 피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지속적인 피해 우려도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폐기물 중간 처리업체를 즉시 폐쇄조치하고 산지 복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도 여전히 업체장의 소음과 먼지는 심하다. 아직도 주민들은 석면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하나같이 입 모아 얘기한다. "우리 늙은이들이야 곧 죽어도 상관없지만 이제 자라는 애들에게는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루빨리 폐기물 업체에 대한 대책마련과 산지복구를 해서, 강정리 주민들이 석면공포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지금도 이 노래들이 흘러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강정리를 방문하였을 때 주민이 틀었던 노래가 참으로 묘하게 다가왔다. 정말 이 마을로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폐기물처리장의 소음을 뚫고 나오는 그 운동권의 노래가 왜 그리 서글프게 느껴졌던지...

이 서글픈 음악이 엄마의 가슴을 품은 이 마을에서는 머지않아 들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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