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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와 문제

3자 회담이 열릴 즈음, 이런 호전 흐름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기간 중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남자 문제'를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이다. 그에 대한 결심재판이 21일로 예정되어 있고, 통상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10월 말께 선고가 이뤄진다.

  • 오태규
  • 입력 2015.09.08 11:13
  • 수정 2016.09.08 14:12
ⓒ연합뉴스

한-일 관계에서 <산케이신문>은 문제(problem)이자, 쟁점(issue)이다. 한-일 관계를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고, 양국 간에 외교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쟁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쪽 편에 서 있을 사람이 저쪽 편에 섰다'는 미국·일본 쪽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전승절)'에 다녀왔다. '항일'이 붙은 행사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은 이 행사에 시종 불쾌감과 거부감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불편한 감정 속에서도 중국 주재 대사나 장관급 인사를 참석시킨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 달리, 어떤 정부 대표도 파견하지 않았다. 전승절 행사 뒤 서방의 반응도 대체로 일본의 시각과 비슷하다. 부쩍 큰 중국이 기존 세계질서에 근육질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외교는 위기와 기회의 요인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하기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과의 협력 강화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중-일 화해 등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의 의도에 말려드는 쪽으로 흐르면 야유를 받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에서 몇 가지 중요한 합의가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10월 말~11월 초에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열기로 한 사실이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거나 6자회담 재개를 겨냥한 내용이 실현 가능성을 내포한 '어음'이라면, 3국 정상회의 합의는 가장 구체적인 성과, 즉 '현금'이라고 할 만하다. 박 대통령이 이 합의를 어떻게 잘 살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전승절 외교 실험의 성적이 갈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3년여 만에 재개될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는 3국 정상 간의 회담뿐 아니라, 통상의 경우처럼 한-일, 한-중, 중-일 간의 양국 정상회담도 열릴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박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한-일 정상회담이 안팎에서 단연 가장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한-일 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많은 난제가 있어 두 정상이 만난다고 당장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만, 안보·경제·문화 등에 걸친 폭넓은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더욱 현실적일 것이다. 이런 반전 분위기는 이미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의 패전 70주년 담화에 대해 절제 있는 대응을 하면서 형성되고 있다. 아베 총리 주변에서도 '아베 담화'에서 한국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3자 회담이 열릴 즈음, 이런 호전 흐름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기간 중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남자 문제'를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이다. 그에 대한 결심재판이 21일로 예정되어 있고, 통상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10월 말께 선고가 이뤄진다. 이미 재판 중에 그의 문제제기가 근거 없는 것임이 판명났으므로 재판이 진행되면 유죄 판결이 확실시된다. 이 건이 아니더라도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라는 기자는 최근 '사대주의' '민비와 같은 운명' 등의 저질 용어를 쓰며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맹비난한 바 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분개할 졸렬한 기사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것이 있다. 가토 사건이 커진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도 갖추지 않은 형편없는 저질 기사의 필자를 마치 언론자유의 수호자요 영웅으로 만든 우리 정부의 과잉 대응이었다는 점을. 그래서 해법은 간단하다. 명예훼손 건의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반의사불벌죄의 취지에 따라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량도 보여주고, 일본 시민과 산케이를 분리하고, 초미의 한-일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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