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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랑 | 영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이민자>는 제목 그대로다. 타인의 땅에 와서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희망은 잠시뿐이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에바는 이방인이다. 유일한 친척은 그녀를 외면하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이민자들 틈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부잣집 상인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남자답지 못한 아들을 사내로 만들 여자를 원한다고 말한다.

  • 김봉석
  • 입력 2015.09.08 07:32
  • 수정 2016.09.08 14:12
ⓒ씨네룩스

<이민자> 감독:제임스 그레이, 출연:마리옹 코티야르·호아킨 피닉스·제러미 레너

1920년대,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가 제일 먼저 거치는 곳이 엘리스 섬이다. 폴란드에서 온 에바는 엘리스 섬에서 동생과 헤어진다. 결핵에 걸린 동생은 병원에 격리되고, 에바는 브루노의 도움으로 겨우 입국할 수 있었다. 댄스홀 '밴디츠 루스트'의 지배인 브루노는 에바에게 일자리도 준다. 춤을 추게 하고, 매춘을 시킨다. 그리고 브루노의 사촌인 마술사 올란도가 나타난다. 어릴 때 함께 자랐지만 어른이 되면서 서로를 싫어하게 된 사촌 형제다. 능글맞고 제멋대로인 올란도는 천방지축이고, 브루노는 그런 올란도를 죽일 듯 미워한다. 두 남자의 관계는 에바를 사이에 두고 예정된 비극으로 흘러간다. 결말은 자명하지만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사건을 맞이한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이민자>는 제목 그대로다. 타인의 땅에 와서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희망은 잠시뿐이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에바는 이방인이다. 유일한 친척은 그녀를 외면하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이민자들 틈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부잣집 상인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남자답지 못한 아들을 사내로 만들 여자를 원한다고 말한다. 브루노는 에바에게 말한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고. 하지만 에바는 동생을 빼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많은 돈이.

어찌 보면 브루노와 에바의 관계는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연상케 한다. 브루노는 에바에게 반했다. 하지만 매춘을 시킨다. 거부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에바도, 브루노도 알고 있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을. 브루노는 에바를 사랑하면서도 매춘을 시키고 옆에서 바라볼 뿐이다. 물론 차이는 극심하다. <나쁜 남자>의 남자는 그녀의 현재 삶을 빼앗고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애초 지옥에 있었던 브루노와 에바의 처지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두 남자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사랑을 원하지만 결코 자신이 가질 수 없음을 예감하는 절망 같은 것. 그리고 궁극적인 선택도 다르다.

<이민자>는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이야기다. 아니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짐승의 이야기다. 에바는 강하다. 너무 강해서 모든 것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돈이 필요하고 브루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하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순수하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브루노를 파멸시킨다. 격리된 동생 외에는 누구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남자의 얼굴과 연기에 담긴 불안

<이민자>를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에바 역의 마리옹 코티야르에게 눈길이 가지만 점점 브루노 역의 호아킨 피닉스에게 끌린다. 조니 캐시를 연기했던 <앙코르> 이후 <레저베이션 로드><위 오운 더 나잇><마스터><그녀>의 호아킨 피닉스는 때로는 너무 강해서, 때로는 너무 유약해서 보통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민자>의 브루노는 유대인이다. 온갖 곳에 연줄을 만들고, 어떤 순간에도 살아남을 곳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신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악착같이,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폭력을 쓰면서 버텨낸다. 그러나 에바를 만나고는 무너져 내린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안타까워서 힘들다.

제임스 그레이의 <이민자>는 담담하게 흘러간다. 매우 극적인 순간에도 결코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는다. 정갈한 영상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끓어오른다. 그래서 보고 나면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말이 떠오른다. 어디에서나 이방인이었던 이민자들. 그래서 도달하지 못할 사랑에 목숨을 바쳤던 그 남자의 얼굴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 이 글은 시사IN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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