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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는 특별한 주차구역이 있다

ⓒ한겨레

한강변을 끼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고급 주거지역은 ‘유엔빌리지’로 불린다. 정·재계 인사와 연예인 등이 많이 사는데, 이 지역의 좁은 이면도로 한쪽은 외제차 등 고급 승용차 100여대가 항상 차지하고 있다. 마치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인 것처럼 흰색 페인트로 그어진 선 안에 주차돼 있지만, 이는 용산구청이 아니라 주민들이 임의로 그린 것이다.

용산구 시설관리공단은 7일 “9월 현재 유엔빌리지 지역에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고 했다. 일반 주택가에 견주어 주차장 사정이 월등히 좋은데다, 이 지역 이면도로 대부분이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가 가능한 도로 너비(10m 정도)임에도 임의로 주차선을 긋고 공짜로 불법 주차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엔빌리지 일대에는 이런 식으로 하루 평균 130~150여대의 차량들이 불법 주정차를 하고 있다. 이 중 30%가량은 포르쉐, 벤츠, 베엠베 등 값비싼 외제차들이다. 어떤 주민은 아예 자기 집 번지수를 주차구역에 새겨놓기도 했다. 올해 초엔 이곳에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집 앞 이면도로에도 흰색 선이 그어진 채 무단 주차가 이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주차선이 지워지기도 했다.

용산구청은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단속을 세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의로 도색한 선을 지우라고 계도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서인지 잘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구청의 다른 관계자는 “부유층이 많이 살아서 불법 주차 단속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근처 주민들은 집집마다 주차장이 있는데 왜 멀쩡한 도로에 선을 긋고 차를 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 박아무개(47)씨는 “집 안에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도 꼭 차를 밖에 세워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곳에 사는 유럽 국가의 한 외교관(50)은 “차를 이런 식으로 밖에다 세우니 길이 막힐 때도 있다. 자기 집 주차장이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밖에 차를 댄다면 무척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다. 두 딸을 둔 주민 이도연(40)씨는 “인도가 거의 없는데다 차들이 과속을 많이 해 아이들은 물론이고 노인들도 위험할 때가 있다”고 했다.

유엔빌리지에 있는 한 건물 관리인은 “집에 별도 주차공간이 있지만 가사도우미 등이 타고 다니는 차량을 집 앞 도로에 세우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집들이 별도 관리사무소가 있어서 통제가 제대로 안 된다”고 했다.

서울의 여느 주택가는 ‘진짜’ 주차난이 일상화한 지 오래다. 운 좋게 집 근처에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 있어도 대기자가 넘쳐나 언제 순번이 돌아올지 알 수 없다. ‘메뚜기 주차’를 하다가 주차 과태료를 무는 경우도 많다. 주민이 이면도로에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를 원하면 관할 구청은 도로 너비 등을 따져 이를 허가해준다. 월 6만~12만원 정도의 주차료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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