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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점진적 해체를 꿈꾼다

늘 궁금했다. '문단(文壇)'이라는 단어가 대체 왜 필요한지. 작가는 홀로 글 쓰는 사람일 뿐이고 비평가는 소신 있게 평하는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한때는 글과 관련된 이들을 통칭해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근래 오가는 각종 논의를 보니 아예 실체가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문단'이라는 단어가 왜곡된 시스템을 이미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홍형진
  • 입력 2015.09.07 11:27
  • 수정 2016.09.07 14:12
ⓒgettyimagesbank

'문학권력'에 대한 논쟁이 근래 들어 뜨겁다. 등단 제도, 문예지, 문학상, 문예창작과 교수임용 등을 통해 특정 주체들이 문학을 지배하다시피해온 행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한데 이런 이야기 자체를 우습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논란의 중심에 선 창비와 문학동네의 작년 매출은 각각 222억 원과 256억 원으로 중소기업 중에서도 영세한 축에 속한다. 그런 출판사들이 문학권력 논란에 휩싸인 현실이 그저 우습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는 시장의 수요가 작다는 점이고, 둘째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한껏 쪼그라든 한국문학 수요에 대해선 숱한 기사와 통계가 존재하니 생략하겠다. 이 지면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한국문학 시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비평이라는 이름의 장벽이 거의 모든 단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 대 일을 넘나드는 경쟁률의 등단 과정에도, 문예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과정에도, 여러 문학상을 심사하고 수여하는 과정에도 비평이 자리하고 있다. 순수문학, 본격문학 등으로 불리는 분야에서 비평의 조력 없이 성과를 거둔 이들은 극소수다.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비평 자체가 악(惡)일 리는 결코 없다. 비평은 문학계의 질적 성숙에 기여하게 마련이며, 생산자(작가)와 소비자(독자) 간의 가교 역할을 통해 시장의 거래에도 공헌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엄연한 전제가 있다. 투명함과 공정함이 바로 그것이다. 기형적인 한국문학 시장 구조에서 비평이 투명함과 공정함을 공인받지 못하고 외려 파벌,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다면 이는 시장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를 한없이 멀게 만드니까.

여기에 대한 해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일련의 담합구조를 쇄신함으로써 비평의 공신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창비와 문학동네가 최근에 보인 상반된 행보를 두고 문학계 인사들의 갑론을박이 뜨거운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둘째는 비평을 벗어나서도 시장에 진입하고 또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등단·문예지·문학상 등 기존의 플랫폼 밖에서도 작품 활동을 펼 수 있고, 또 그를 배타적으로 대하며 외면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 구조를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문단의 점진적 해체'를 뜻한다.

위 두 해법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향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다. 기존의 한국문학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소견이다.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구조는 더 다양한 배경과 작풍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시장에 진입해 평가받는 것을 저해할뿐더러, 심지어 작가로 하여금 굳건한 플랫폼에 종속되어 일련의 구조 고착화에 동참하게까지 만든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늘 궁금했다. '문단(文壇)'이라는 단어가 대체 왜 필요한지. 작가는 홀로 글 쓰는 사람일 뿐이고 비평가는 소신 있게 평하는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한때는 글과 관련된 이들을 통칭해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근래 오가는 각종 논의를 보니 아예 실체가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문단'이라는 단어가 왜곡된 시스템을 이미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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