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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그 이름 하나로

황비홍을 연기한 펑위옌은 환상적인 무협 영화에 가까운 <타이치 0>와 <타이치2>에 출연했지만 무술 고수는 아니다. 그래도 충실하게 무술 훈련을 했고, 무술 달인처럼 보이게 하는 홍콩영화계의 무술지도, 촬영·편집 테크닉과 특수효과가 있기에 그럴듯해 보인다. 흑호방의 보스로 출연한 홍금보와 신구 대결을 펼치는 것도 볼만하다. 다만 <황비홍>을 떠올리면 많이 아쉽다.

  • 김봉석
  • 입력 2015.09.04 12:59
  • 수정 2016.09.04 14:12

리마스터링·신작 잇단 개봉에 부쳐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황비홍>. 오는 10일 개봉하는 이 영화의 거창한 제목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는 하나다, '황비홍'. 최근 <황비홍2-남아당자강>(8월20일), <황비홍-서역웅사>(9월3일)도 잇따라 개봉했다. IPTV 방영을 위해 추억의 명작 리마스터링판을 개봉하는 것은 요즘 추세이지만 덧붙여 신작까지 나오기는 쉽지 않다.

기존 황비홍 시리즈를 리부트한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 황비홍>

'황비홍'은 홍콩영화사에서 백여 편 이상의 영화에 등장한 중요한 이름이다. 황비홍은 청나라 말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홍가권의 일대종사이자 '명의'이며 항일 운동을 펼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91년작 <황비홍> 때문이지만, 사실은 이전부터 그 존재는 뚜렷했다. 성룡(청룽)의 출세작인 <취권>의 주인공이 바로 황비홍이었다. 당시에는 성룡이라는 불세출의 스타 탄생에 열광하여 주인공 이름은 관심조차 없었다. <취권>의 황비홍은 무술을 배우기 이전으로 설정되어 있고, 취권을 통해 고수가 된다. 황비홍의 팔선권에는 실제 취권이 포함되어 있고, 왕정이 감독한 <황비홍-철계투오공>에서도 황비홍이 취권을 구사한다.

황비홍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영웅이자 무술의 고수로 수많은 영화에 주조연으로 등장했다. 최고의 걸작을 꼽으라면, 단연 서극이 연출하고 이연걸(리롄제)이 주연한 91년작 <황비홍>.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한국을 뒤흔들었던 홍콩 누아르가 몰락하던 즈음 등장한 <황비홍>은 홍콩영화의 본령이 '무술'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대륙의 전국무술대회에서 5연패를 했던 이연걸이 구사하는 무술은 남달랐다. 이소룡의 강력한 절권도와 성룡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에 이어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이연걸의 기예를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주현량 감독의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황비홍>도 황비홍의 젊은 시절을 그리는데, <취권>과는 다른 설정이다. 원수를 갚기 위해 흑호방에 잠입하고, 동료들과 함께 서서히 조직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 황비홍을 연기한 펑위옌은 환상적인 무협 영화에 가까운 <타이치 0>와 <타이치2>에 출연했지만 무술 고수는 아니다. 그래도 충실하게 무술 훈련을 했고, 무술 달인처럼 보이게 하는 홍콩영화계의 무술지도, 촬영·편집 테크닉과 특수효과가 있기에 그럴듯해 보인다. 흑호방의 보스로 출연한 홍금보와 신구 대결을 펼치는 것도 볼만하다. 다만 <황비홍>을 떠올리면 많이 아쉽다.

황비홍 시리즈 1편. 조이앤클래식

<황비홍>을 제작, 감독한 서극은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제작하며 홍콩영화의 트렌드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필생의 목표인 <서유기>를 비롯하여 중국의 신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협영화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호금전에게 연출을 맡겼던 <소오강호>는 실패했고, 서극은 중요한 이유가 배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무협 장면, 무공의 기운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진짜 무술의 고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연걸에게 손을 내밀고 <동방불패> 제작 이전에 <황비홍>을 만들었다. 공중에 떠서 연속 발차기를 던지는 무영각은 (와이어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연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황비홍>은 천하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국이 열강의 위협 속에서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무술인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구하는 의사이면서 절대 고수인 황비홍은 중국인이 가진 모든 것이 이미 낡았음을 실감한다. 1875년, 영국과 일본 등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상해에서 우왕좌왕하는 중국인은 동과 서의 장점을 취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영국의 식민지에서, 97년 다시 중국으로 귀속되는 홍콩의 현실을 토로한다. 홍콩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짓지 못하고 끌려다녀야만 하는 심경이 잘 드러난다. <황비홍>은 중국 무술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이연걸과 중국인의 자긍심을 높이겠다는 서극이 만나 합작한 무술영화의 걸작이다. 하지만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황비홍>은 <황비홍>에서 그려낸 동서양 갈등과 중국인의 자긍심 대신 무협영화의 클리셰인 복수에 몰두한다.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이야기가 흩어진 <황비홍>은 3편까지 이연걸이 출연했지만, 4편부터는 황비홍역으로 조문탁이 나왔다. 조문탁의 무술 실력도 좋았다. 하지만 부족한 것은 카리스마였다. 1편에서 황비홍은 누구와 싸워도 흔들림이 없다. 거의 맞지도 않는다. 다른 배우라면 의심이 가겠지만 이연걸의 동작과 기세를 보면 믿어진다. 그야말로 절대고수다. 조문탁은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배우라면 어땠을까? 만약 <황비홍2-남아당자강>에서 견자단이 악역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4편부터 황비홍을 연기했다면 하는 가정도 해 본다. 이연걸 이후 가장 무술을 잘 하는 배우이자 카리스마도 넘치는 견자단이라면 가능했을 것 같다. 나이도 이연걸과 같으니 그다지 밀릴 것도 없었고.

황비홍 시리즈 2편. 조이앤클래식

황비홍은, 이연걸이 연기한 방세옥과 홍희관,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 등과 함께 무술영화에 종종 소환되는 역사적 인물의 하나다. 뛰어난 무술 실력과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다수 가진 그들의 이야기는 <취권>과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황비홍>에 나오는 젊은 시절이 서로 다른 것처럼 사실 그대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다종다양하게 변주된다. 한 인물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부럽다. 이소룡과 이연걸의 영화들처럼, 고수가 등장하는 중국 무술영화가 다시 한 번 트렌드가 되기를 고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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