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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개정교육과정 기준 고시가 연기되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이번 개정교육과정이 본격 적용되는 2018년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본질을 벗어난 입시중심 교육이 지속될 것이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은 그대로 두고 문·이과 통합,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란 심하게 말하면 내용과 정체도 불분명한 '구호'를 가지고 시쳇말로 한 건 올리기 위해 '장난을 친 것'이란 점이다.

ⓒ연합뉴스

2015개정교육과정의 심각한 날림공사, 책임 물어야!

글 | 이찬승(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목차

■ 시작말

■ 2015개정교육과정 기준 고시가 연기되어야 하는 이유 7

1. 질 낮은 수시개정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만 놓친다.

2. 빅 아이디어(big idea)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조화는 개념의 혼동, 핵심의 누락, 검증도 없이 전 과목 적용 등 문제투성이다.

3. 총론의 핵심역량은 타당성, 분류, 명칭, 정의에 문제가 많다.

4. 해결할 과제와 해법의 불일치(mismatch)가 심하다.

5. '문·이과 통합'은 폐기되어야 할 슬로건이다.

6. '창의·융합인재 양성'은 대중인기에 영합한 공허한 구호다.

7. 개정 과정이 너무 성급하며 졸속이다.

■ 맺음말

■ 시작말

2015개정교육과정의 새로운 기준을 일정대로 9월 확정 고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연기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도 연기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연기를 하는 순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교육과정 고시는 예정대로 강행될 것이란다. 하나씩 자세히 뜯어보면 이번 개정은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개정에 소요될 시간을 턱없이 부족하게 잡아 놓고 예정대로 강행하는데서 오는 문제점, 개정의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mismatch), 요란한 선전에 비해 내용이 없는 대개념(big idea)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조화, 완전 새로운 개념(예: 빅 아이디어)을 최소한의 검증도, 준비도 없이 모든 교과에 일괄 적용하는 무모함 등은 졸속개정의 전형이다. 이번 개정은 집 건축으로 보면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할 수준이다. 너무 날림공사여서 아무도 입주하지 않으려 할 것 같다. 얼마 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 우려된다. 왜 그런지 자세히 살펴보자.

■ 2015개정교육과정 기준 고시가 연기되어야 하는 이유 7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 기준 고시가 연기되어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중요한 것 7가지만 살펴보겠다.

1. 질 낮은 수시개정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만 놓친다.

이번 개정은 응급실로 보내 긴급히 대수술을 받아야 할 중환자를 절실하지도 않은 이런저런 진료로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게 하는 경우에 가깝다.

학교교육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현 정부는 제대로 된 원인분석을 통해 학교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세웠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개정은 이 비전 달성에 맞추어져야 했다. 이번 개정은 이런 접근을 하지 않았다. 수능 체제를 개선하려다가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비전과 목표가 사전 설정되었더라면 이번 개정의 목표 또한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교육과정의 수시개정, 분절적 개정, 준비도 안 된 졸속개정은 제대로 학교교육을 바꿀 수 있는 기회만 놓치게 만든다. 이번 개정으로 향후 최소한 5~6년 동안은 교육과정 개정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번 개정교육과정이 본격 적용되는 2018년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본질을 벗어난 입시중심 교육이 지속될 것이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은 그대로 두고 문·이과 통합,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란 심하게 말하면 내용과 정체도 불분명한 '구호'를 가지고 시쳇말로 한 건 올리기 위해 '장난을 친 것'이란 점이다. 21세기가 1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교육과정을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개정하지 못하는 정부의 능력에 대해 국민은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2. 빅 아이디어(big idea)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조화는 개념의 혼란, 핵심의 누락, 검증도 없이 전 과목 적용 등 문제투성이다.

빅 아이디어란 무엇이고 왜 교육과정을 이것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려고 하는가? 빅 아이디어는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 간에도 그 정의가 다르다. 이런 정의의 혼란은 빅 아이디어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조화 작업의 부실을 예고해 주고 있다. 빅 아이디어의 정체를 자세히 알아보자.

낱개로 흩어져 있는 사실, 기능, 원리 등을 연결하여 이를 관통하는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 빅 아이디어다. 빅 아이디어는 교육과정 재구조화를 할 때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Big idea는 한 두 단어로 된 어휘형과 문장형 형태 두 가지가 다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차세대 과학과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의 성취기준 개발의 원리를 제공한 '디자인에 의한 이해(Understanding by Design: UbD)'의 틀에 의하면 빅 아이디어는 '(문장형) 대개념'을 의미한다. 이는 어휘형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번 개정교육과정은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이상한 성격의 '핵심개념'이란 용어를 사용해 정체불명의 내용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문장형 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도출되는가? 문장형 빅 아이디어는 아래와 같이 다양한 것으로부터 도출되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 개념(concepts) - 경제: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에 어떻게 돈을 배정하는가의 문제다.
  • 테마(themes) - 선은 악을 이긴다.
  • 토론(debates) - 승리는 공격 대 방어에 달렸다.
  • 관점(perspectives) - 인생은 자신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나의 컵에는 '물이 반잔이나 있다' 혹은 '물이 반잔밖에 없다'.
  • 역설(paradox) -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 이론(theory) - 기능이 형식을 앞선다; 사람은 먹는 것 대로이다(You are what you eat.).
  • 원리(principle) -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 가정(assumptions) - 난픽션 글은 항상 진실을 묘사한다.
  • (Rosemary Ball 외, 2012)

그런데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 개정 관련 자료집에는 '빅 아이디어(big idea)'를 정의하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과정 문서의 내용 체계표에는 빅 아이디어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핵심개념'과 '내용(일반화된 지식)'이 있지만 이는 빅 아이디어와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내용 체계표의 핵심개념은 개념이라기보다 대주제(big topic)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통합사회의 '핵심개념'으로 제시되어 있는 '자연환경, 생활공간'은 주제이지 핵심개념이 아니다. 분절교과의 주제를 그대로 끌어다 쓰고 이를 핵심개념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용어 사용의 엄청난 혼란이며 오류에 가깝다. 빅 아이디어를 도입하려면 그 개념부터 개발자들 간에 정확히 공유되었어야 했다. 빅 아이디어를 통한 교육과정의 재구조화는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 핵심개념(core idea), 대개념(big idea), 핵심질문(essential question)이란 요소로 구성되는 프레임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러나 2015개정 교육과정 내용 체계표를 보면 이들 요소 중 핵심개념만 존재한다(단, 통합사회에만 '핵심질문'이 등장함). 그것도 대주제(big topic)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는 학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UbD의 저자는 주제(topic)와 개념(idea)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개발 연구진이 변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핵심개념'이 '빅 아이디어'라고 주장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대가인 그랜트 위긴스는 '변화', '관계', '수 시스템' 등의 용어를 예로 들면서 이들은 대개념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들 어휘들은 많은 지식을 내포하고 있지만 빅 아이디어의 요건인 '(최소한의)추상성, 구체성, 실용성, 유용성, 예측적·연결적 힘,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추론 가능성' 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2015개정교육과정의 핵심개념에서는 이런 성격의 어휘도 모두 핵심개념으로 분류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빅 아이디어를 도입할 때는 아래 [그림 1]처럼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 핵심개념(core idea)을 구분한다.

[IMAGE2]

[그림 1] 관통개념-핵심개념-실행의 관계도

출처: http://commoncorecafe.blogspot.kr/2015_04_01_archive.html

위 [그림 1] 하단의 Crosscutting Concepts는 분절교과의 경계를 뛰어넘는 '관통개념'이다. 중간의 Core Ideas는 분절교과 내의 혹은 교과 간의 어휘형 '핵심개념(core idea)'과 문장형 대개념(big idea)을 다 포괄하는 개념이다. 위 [그림 1]을 기준으로 2015개정교육과정의 빅 아이디어 반영을 분석하면(통합과학, 통합사회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문제점 1: 내용체계표의 '핵심개념'은 '관통개념'이어야 하나 분절 교과의 '대주제'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제와 개념을 마구 혼동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 문제점 2: 문장형 빅 아이디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스터리다. 문장형 빅 아이디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는 핵심질문(essential question)의 도출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참고로 통합과학에서는 핵심질문이 존재하지 않지만 통합사회에는 핵심질문이 존재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번 빅 아이디어에 의한 교육과정 재구조화는 미국의 UbD(Understanding by Design)의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의 내용구조가 이렇게 과목별로 들쭉날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주] UbD - Understanding by Design(배울 내용의 깊은 이해를 위한 교육과정 설계 모형의 하나. 역순 설계(backward design), 빅 아이디어 즉 대개념과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수행을 강조하는 지도와 평가가 특징임)

이런 핵심의 누락(빅 아이디어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 용어 사용의 오류나 부주의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원인은 두 가지로 짐작된다. 하나는 미국 차세대 과학의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 핵심개념(core idea), 대개념(big idea)이란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핵심개념' 하나로 소위 '퉁친' 것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다른 하나는 통합교과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 핵심개념(core idea), 대개념(big idea)을 정교하게 도출하고 분류하고 나아가 핵심질문까지 만들려면 이는 최소한 3년 이상 소요되는 고난도의 대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공사 마감 일정은 2015년 9월로 정해져 있으니 이런 내실 있는 작업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필자의 짐작이 맞다면 이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찌 한 나라의 교육과정 개정이란 중대한 작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2015개정 교육과정은 왜 전통적인 교육과정 대신 빅 아이디어 기반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려고 하는가? 빅 아이디어 기반의 지도 즉, 개념기반지도(concept-based instruction)는 교과서의 진도를 나가면서 각 교과별 단편적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평가하는 전통적인 교수학습에서 벗어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젠 나무(=개별 지식)보다는 숲(=상위 개념지식) 중심의 교수학습을 하자는 의도다. 이는 기존의 단편적 지식 중심 교육을 맥락이 있고 목적이 분명한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는 교과 내 혹은 교과간에 존재하는 핵심개념(core idea)과 빅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에 대해 핵심질문(essential question)을 던지며 이의 답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깊은 이해(deep understanding)와 적용 역량을 갖추는 수업 혁신의 과정이다. 이는 전통적인 내용중심지도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용은 여전히 중요하나 지식기반 사회에서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깊은 학습이 필요하다. 빅 아이디어는 교육과정·지도·평가를 교과의 가장 중요한 관점(aspects)에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목표(성취기준) → 빅 아이디어 → 핵심질문 → 수업활동 설계'란 역순설계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번 새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에 '빅 아이디어'가 분명하게 포함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빅 아이디어 기반의 교육과정 재구조화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학습 디자인은 아래 <표 1>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개념기반지도의 핵심 구조다.

<표 1> 단원 학습설계 절차(UbD)

효과적인 교수학습 지도를 위해 빅 아이디를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 일부 주들이 이를 사용한다.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UbD(Understanding by Design)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육과정 디자인 모형 UbD(Understanding by Design)의 특징을 소개하면 아래 <표 2>와 같다. 이는 단편적 지식 습득 중심의 교육에서 빅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의미있고 배운 지식의 활용을 강화하는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표2> 빅 아이디어 중심으로 재설계된 교육과정의 특징

http://www.slideshare.net/jdumaresq/understanding-by-design-the-basics?next_slideshow=1

다음은 빅 아이디어와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핵심질문(essential question)에 대해 알아보자. 빅 아이디어가 깊이 있는 탐구학습을 위한 교육과정 재구조화의 핵심이라면 핵심질문은 이 빅 아이디어란 대원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도구이기 때문이다. 핵심질문은 아래와 같은 특성을 갖는다.

<표 3> 핵심질문의 특성 이해

이상을 통해 핵심개념, 대개념, 핵심질문을 살펴봤는데 이제 '핵심개념-대개념-핵심질문'의 관계까지 정리해 보면 아래 <표 4>와 같다. 이쯤 오면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 내용체계가 왜 날림이고, 빅 아이디어란 구호만 요란했지 핵심 내용은 쏙 빠져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표 4> 개념-대개념-핵심질문의 예(Rosemary Ball 외, 2012)

지금까지의 것을 총정리 하면 가령, "[교육목적] 역사적 주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현 시대의 이슈를 분석한다/분석할 수 있다."란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로부터 "[빅 아이디어]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란 대개념을 추출하고 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핵심질문] 역사의 서술은 얼마나 객관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가?"와 같은 핵심질문을 도출한다. 핵심질문은 탐구학습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며 이로부터 "[활동개발] OO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역사적 관점을 분석하고 토론하기"와 같은 학습자료 개발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빅 아이디어에 기반한 교수학습 원리의 핵심이다.

빅 아이디어(big idea)에 의한 새로운 교육과정 설계방식은 도입을 검토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도입하려면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장점이 있는 이론이라고 이를 언제나 도입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한국적 현 여건에서도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면밀한 검토와 최소한의 검증과정은 있어야 했다. 이런 교육과정 도입의 의도와 개정의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공유하며 공감을 얻는 과정이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 이것이 사회적 참여이고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이런 중요한 과정이 이번 개정에서는 거의 다 생략되었다. 현장에서는 아직 대다수 교원들이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개정의 의도와 개정의 구조도 제대로 이해 안 된 상태에서 공청회를 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에서 보듯이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의 빅 아이디어적 접근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빅 아이디어 도입의 순수한 목적은 사라지고 이를 문·이과 통합 실현이나 학습량 감축이 뭔가 좀 있어 보이기 위해 '당의정을 입히는 의미'를 넘지 못한다. 빅 아이디어적 접근이 비교적 적합한 과학과 사회 교과에 한정해서 시범적으로 시도해 봤어야 했다. 적합성도 담보할 수 없는 일반과목까지 이를 과잉 확대적용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의 것을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환경도 고려했어야 했다.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은 전형적인 날림공사다. 날림으로 지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면 몇 년 못 가 큰 사고를 낸다. 차기정권에서 날림 공사로 지은 집이 위험하다고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집을 짓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빅 아이디어적 접근은 영원히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날림공사의 후유증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런 날림공사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3. 총론의 핵심역량은 타당성, 분류, 명칭, 정의에 문제가 많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다면 쉽게 판정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명확한 정의가 없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이번 교육과정은 의도와 상관없이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역량중심 교육과정 도입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우려가 적지 않자 교육부 실무담당자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역량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총론과 각론에 교과역량 리스트를 의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성취기준 서술에 반영할 것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역량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란 용어의 사용은 의도하지 않게 큰 부작용을 가지고 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도입하는 역량에 있어서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량도출의 준거(準據, criterion)가 미흡하다. 둘째, 핵심역량 사용 명칭이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적용이 기계적이다. 셋째, 역량의 정의가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 넷째, 각론의 역량 반영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섯째, 인재상, 역량, 대개념의 유기적 연관성이 없다.

4. 해결할 과제와 해법의 불일치(mismatch)가 심하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 편식을 해소함으로써 창의·융합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런데 '문·이과 칸막이의 제거'는 이미 교육과정 상에는 존재하지 않고 수능시험에서 과학탐구와 사회탐구 과목을 동 시간대에 문·이과로 나누어 시험을 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수능 체제를 개선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대신 과탐과 사탐 과목을 통합교과로 개발하고 이를 고교에서 공통으로 가르치도록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창의‧융합 인재양성'도 문제와 해법의 불일치란 문제점이 있다. 창의적인 인재양성은 정답을 찾는 교육을 대폭 줄이고 범교과적 문제해결 수업을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과탐, 사탐을 통합교과로 개발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러 과목을 통합했기 때문에 분량이 많아 교과 진도 나가기도 바쁘기 때문에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 등의 경험과 체험 중심의 학습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창의‧융합 인재양성'을 위해 과탐과 사탐을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로 개발하기로 한다는 것은 '창의‧융합 인재양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문·이과 통합'이란 대중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변명에 가깝다.

개발 지향점에 나와 있는 '학습의 질 개선'도 그렇다. 학습의 질 개선은 대입전형, 수능, 내신평가 제도의 혁신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대로 두고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고 핵심개념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 두 가지 모두 여건 미비로 실현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다. 결국 해결할 과제와 해법 간의 불일치로 '학습의 질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교육과정의 학습량 적정화도 접근 전략에 문제가 있다. 이번 개정에서는 학습량을 20% 줄이는 것이 주요 목표의 하나였다. 그 이유로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한다.

"적정화해야 창의·융합적 사고를 기를 수 있고, 학생의 학습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학생이 몰입하여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다고 할 때, 학습량 적정화는 이번 2015 개정 국가 교육과정, 특히 교과 교육과정 개발 연구에서 가장 중점적인 지향점이 된다. 학습량 적정화는 단순한 양의 축소를 의미하기보다는 소수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교과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는 의미이다."(2015개정교육과정 전무가 포럼 1회 자료집)

이런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교육과정을 빅 아이디어 중심으로 재구조화하고 핵심질문을 도출해보고 각 질문들의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해봐야 어떤 핵심개념을 줄일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빅 아이디어는 학습량을 줄이는 수단이라기보다는 학습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무엇일까를 고민하여 깊이 있는 학습을 지향한다. 빅 아이디어는 그 정의상 기존 지식군의 우산(umbrella)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줄임으로써 학습량 적정화를 실현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지 의문이 든다.

학습량 적정화는 애당초 방향을 잘못 잡았다. 주요국들처럼 국가가 사전에 정한 모든 내용을 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가르치고 가르친 것에 대해서만 교사가 평가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학문중심교육과정의 특성상 양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교과서를 보라. 1,500쪽 짜리도 있다. 아울러 학습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취기준의 양과 서술방식, 그리고 내신성적 측정방식, 수능의 난이도, 시험범위 등도 함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5. '문·이과 통합'은 폐기되어야 할 슬로건이다.

문·이과 통합이란 무슨 뜻인가? 문과생도 과학과목을 공부하게 하고, 이과생도 사회과목을 공부하게 하는 것인가? 그런 의미라면 이미 현재의 교육과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 수능 체제가 이를 막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문·이과 통합이란 고2가 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진로에 따라 문·이과로 나누는 반편성 제도를 없애겠다는 것인가? 문·이과 통합을 그런 뜻이라면 문·이과 통합의 시도는 잘못된 일이다. 고교 교육과정은 선택을 중요시하는 교육과정이다. 문과, 이과를 넘어 예술과, 체육과를 넘어 다양한 진로에 따라 원하는 교육을 받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문과와 이과라는 2가지 경로를 통합해서 하나로 만들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은 경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궁극적으로는 개인별 교육과정이 실현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로를 통합하는 것이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면 과학과 사회를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로 개발하는 것이 문·이과 통합인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상위권 대학은 전공에 따라 문과 계열 대학은 수준 높은 사탐 실력을, 이과 계열 대학은 수준 높은 과탐 실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교에는 기존과 다름없이 문·이과 혹은 더 많은 계열별 수업이 불가피할 것이다. 대학의 진학 계열에 따라 학생의 선택과목이 다르고 개인 선택을 수용할 만큼 교사나 교실 수급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문·이과 통합이란 말 대신 핵심개념이나 대견해(big idea) 중심으로 과탐과 사탐의 교과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여 가르침으로써 탐구나 발견학습 중심으로 수업을 개선하고 과탐과 사탐 과목의 편식을 줄여보려는 시도 정도로 소통했어야 한다. '문·이과 통합'이란 용어는 의미도, 정체성도 불명확하다. 문·이과 통합을 어떻게 해석하든 이는 현실적으로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다. 애당초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란 말도 잘못 선택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이과 통합은 허구에 가까워 폐기되어야 할 슬로건이다.

6. '창의·융합인재 양성'은 대중인기에 영합한 공허한 구호다.

2015개정교육과정의 개발 지향점(<표 1>)에는 공허한 구호가 가득하다. '창의·융합인재 양성'이 대표적인 예다. 왜 그런가?

한국은 창의력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국가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다른 나라들을 살펴봐도 교육목표에 창의력이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창의성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창의성은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분석능력, 문제해결능력, 불확실한 것에 대한 도전정신' 등이 잘 갖추어지면 저절로 발현되는 결과적 역량에 가깝기 때문이다. OECD의 DeSeCo 프로젝트가 도출한 핵심역량에도 창의력이란 말은 없다. 싱가포르, 앨버타주의 역량 프레임에도 창의력이란 말은 없다. 핀란드가 최근 개정한 교육과정에 도입한 7가지 핵심역량에도 창의력이란 용어는 없다. 미국의 경우도 혁신역량(innovation skills)의 한 하위 역량으로 창의력을 언급할 뿐이다.

한국은 학교교육에서 창의력을 강조하기 이전에 정답찾기 교육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이 세상에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는 없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수치화를 통해 한 줄 세우기를 하는 교육은 창의를 말살하는 교육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창의력을 얘기하는 것은 위선에 가깝다.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하는 인재'의 양성도 공허한 구호다. 주요국의 경우 이는 대학원 수준에서 다루는 과제다. 그냥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정도로 풀 일을 '창의·융합형 인재'란 이상하고 거창한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용어를 만들어 교육의 목적을 오염, 혼란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용어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으로 대체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7. 개정 과정이 너무 성급하며 졸속이다.

이번 개정은 어설프고 너무 빠르다. 사전의 '졸속'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질 높은 개정이 되기는 만무하다. 개정과정이 졸속인 것은 비전에서 출발하지 않은 점, 수능 체제 개선책을 찾다가 슬그머니 개정의 목적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전면 개정을 하게 된 점, 학생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하면서 정작 학생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반영하는 과정은 없었다는 점(참고로 핀란드는 교육과정 초안을 가지고 13세 이상 학생 65,000명을 인터뷰했다.), 주요국들은 10년 주기로 국가 비전 달성을 위해 질 높은 연구와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합의 성격으로 개정을 하지만 이번 개정은 여전히 이전처럼 국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늉만의 공청회, 포럼을 열었을 뿐이다. 빅 아이디어를 거창하게 소개해놓고 실제 빅 아이디어는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는 점, 주제, 개념, 견해에 대한 혼동 등은 졸속의 수준을 넘어 명백한 오류다. 개정 일정 자체가 이미 졸속을 예고하고 있었다.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가 2013년이었다. 그리고 총론 주요사항 발표자 2014년 9월이었고, 총론 시안의 첫 공청회가 2015년 8월이다. 확정고시를 한 달 앞두고 시안을 공표한 것은 세계 어떤 졸속개정의 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공청회, 포럼 등이 모두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과학교과에서나 시범적으로 시도해 보았으면 좋았을 만한 핵심개념 중심의 접근을 시범운영을 통한 효과검증 과정도 없이 전 과목에 걸쳐 적용하기로 한 것도 무모한 일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란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핵심개념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한 것은 질문과 탐구 중심의 교육으로 바꾸겠다는 것의 함의였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실현가능하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준비 안 된 교육개혁은 발표조차 하지 않는다."란 원칙을 우리도 지켰으면 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큰 변화라 지금 고칠 수가 없다. 준비가 될 때까지 개정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이다.

■ 맺음말

2015개정교육과정이 연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7가지보다 훨씬 더 많다. 교육과정 개정은 어떤 나라나 뒷말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은 한 국가의 미래사회를 이끌어가고 성공적인 직장생활, 행복한 삶, 공동체의 유지, 지속가능성 등을 두루 고려해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비전의 설정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향후 10~20년 간의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의 문제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교육과정 개정은 특히 그것이 전면 개정일 때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개정이 교육부와 소수의 학자 중심으로 성급히 이뤄지면서 중간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생략해 버렸다.

역량의 도입과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의 재구조화는 잘 활용하면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너무나 날림으로 진행이 되었다. 교육과정을 재구조화 작업은 그 의도와 재구조화의 구조에 대해 이해와 공감의 과정을 거친 다음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들었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 총체적인 부실이다. 이번 개정은 개정의 절차, 질 그리고 준비상태가 너무 미흡하다. 대입전형과 수능을 이런 교육과정의 대변화와 어떻게 긴밀히 연관시킬 수 있을까? 입시와 교육과정은 여전히 따로 놀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도 여전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작동도 안 될 역량과 빅 아이디어 도입에 대해 냉소를 보낼 것이다. 거부감도 매우 클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기존의 불신을 더욱 키우기만 할 것이다. 이번 개정을 현장에서는 최대의 개악이라고 평가할 것 같다. 9월 고시를 미루고 교육 30년지대계의 자세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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