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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능력에 대하여

나이 60이 가져온 또 하나의 획기적 발견은 '연두'다. 초록이나 연록 또는 유록이라고도 한다. 봄철의 버들잎처럼 노란빛을 띤 연한 녹색이다. 초록이나 유록이라고 하기보다 연두라고 발음할 때의 느낌, 전율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 말 사전에 오른 단어 중 아마도 가장 어여쁜 말들 중의 하나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이 연두라는 걸.

  • 정경아
  • 입력 2015.09.07 12:19
  • 수정 2016.09.07 14:12

햇볕 쨍쨍한 오후, 약수역에서 강남 방향으로 버스를 탄다. 동호대교 위를 달리는 강상구간, 옆에 앉은 지선씨가 탄성을 지른다. "우와, 강물이 햇빛에 반짝거려요." 감동 먹은 그녀의 얼굴에 놀란 내게 지선씨의 결정적 한방이 날아온다. "이렇게 맑은 날 오후 2시에 버스로 한강을 건넌다는 게 놀라워요."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일 뿐인 한강 건너기. 오랜만의 강남 나들이가 강북 사는 그녀에게 햇빛 속 한강을 건너는 기쁨을 누리게 한 것인가. 친구들 사이에서 살짝 '4차원'의 정신세계로 평가받아 온 66세 지선씨의 감동 능력. 참 반갑다.

나이 들어가는 건 무덤덤해진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 특별히 감동하지도, 상처받지도 않는 나날들이 계속된다. 덕분에 기분은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일상은 담담하고 덤덤하다. 누군가는 '원숙해졌다'고 표현하는 무감동의 경지랄까. 감정의 기복은 확연히 줄었다. 상당히 안정적이다.

어느덧 자신을 관찰하는 법도 제법 익혔다. 솟구치는 화가 왜 불 火자를 연상시키는지도 완전 이해하게 됐다. 마음의 불이 타오를 때 휘말려 들어가는 나를 바라본다. 내 안 어딘가에 잠복해 있던 불안이나 억울함, 분노가 튀어 나올 때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는 내가 보인다. 기쁨이든 괴로움이든 노여움이든 격한 감정이 일어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 스러지는, 그 생로병사를 목격, 관찰하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온갖 느낌들의 향연을 그저 바라볼 뿐.

이렇게 잘난 척을 하다가도 때론 순식간에 말려든다. 상대방의 거친 언행에 똑같이 거칠게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곤 "아차," 곧 바로 상황을 직시한다. 그도 나처럼 자신의 마음을 무대로 널뛰는 감정들의 지배를 받는 것일 뿐인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처럼 후회할 게 분명하다. 짠하다. 상대방이 별로 밉지 않다. 슬그머니 혼자 웃고 만다. 상황 종료! 이러니 화를 억지로 참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쩌면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하, 나이 60이 이렇게 오다니. 유쾌하다. 나이 70의 관점, 나이 80과 90의 관점은 어떨까. 벌써 궁금하다. 나름 멋진 신세계일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덤덤하고 담담하면서도 명랑할 것 같은 예감.

한편,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하는 느낌. 정현종 시인의 표현을 슬쩍 빌려 보자면 "밥 한 그릇이 내게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온 우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햇빛과 비와 바람의 협업이 없이는 쌀 한 톨을 거저 얻을 수 없다. 모든 생명을 키워내는 하늘과 땅의 에너지도 총 동원됐다. 거기다 한여름 농부의 땀방울과 밥 짓고 차려내는 이의 수고까지 그 모든 것이 밥 한 그릇 속에 있다. 밥상 위에 놓인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내가 변함없이 감동하고 경건해지는 이유다. 밥상머리에서 남을 비판하거나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비분강개를 일삼는 사람들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60이 가져온 또 하나의 획기적 발견은 '연두'다. 초록이나 연록 또는 유록이라고도 한다. 봄철의 버들잎처럼 노란빛을 띤 연한 녹색이다. 초록이나 유록이라고 하기보다 연두라고 발음할 때의 느낌, 전율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 말 사전에 오른 단어 중 아마도 가장 어여쁜 말들 중의 하나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이 연두라는 걸. 그것은 어리고 여린 생명들의 에너지를 대표한다.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모든 어린 것들은 연두다. 긴 겨울 속에서 봄을 준비한 나무의 새싹들, 꽃나무의 잎사귀들이 연두다. 그 여린 연두 잎들이 돋아나는 것이야말로 해마다 벌어지는 우주적 대 사건이다. 새끼 고양이들, 새끼 강아지들도 연두다. 그뿐인가. 유모차 속에 잠든 아기, 엄마 등에 업힌 아기,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아이들이 곧 연두다. 태어나는 것들은 누구나 연두시대를 거친다. 생로병사의 긴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한 연두들. 그들을 축복하는 건 연두시대를 통과해 온 모든 선배들의 특권이다.

그들을 향해 나는 은밀하게 축복의 화살을 쏜다. 연두들의 여정에는 매복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습 공격을 해 올 불운에 세상의 모든 연두들이 당당히 맞서기를 나는 응원한다. 그들 모두 때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에 갇힐 것이다. 대학 입학, 취업, 결혼 뿐인가. 인간관계라는 지뢰밭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J.R.R. 톨킨)" 길이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홀연 새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두시절의 명랑한 기억들을 장착한 덕분에 안개 시대를 무사히 헤쳐 나온 선배들은 증언할 수 있다.

옛날 건성으로 불렀던 노래와 시를 재발견하게 된 것도 나이 60의 선물이다.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지나치게 평범한 가사에 담긴 의미가 문득 들어온다. 노래는 나무와 하늘과 구름이 있는 풍경, 붉은 장미가 피어나고 지나치는 친구들이 예사롭게 인사말을 던지는 장면을 이야기한다. 모든 게 그저 범상하다. 그 평범함이 비범함의 정수라는 걸 어느덧 알게 된다. 옛 당나라 시인들의 시와 문장을 번역본으로 더듬거리면서나마 읽게 된 것도,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공감이 있기 때문일 터.

나이듦이란 눈을 뜨는 것일까. 단 한 번뿐인 삶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눈을 떠가는 것. 그래서 더 깊어진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명랑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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