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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손맛과 기계 사이

한때 우리나라도 손칼국수와 손짜장면의 나라였다. 기계가 이 역사를 밀어냈다. 힘들게 국수를 수타로 쳐서 밀어내봐야 값이 똑같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기계로 돌리지 뭐. 기술자가 사라졌다. 수타면 잘 뽑던 전설의 고수들은 대개 노인이다. 돌아가시면 전설은 대충 맥이 끊길 것 같다. 손으로 탕탕 치지 않으니 국수가 쫄깃한 힘을 잃을 뻔했다. 그때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 박찬일
  • 입력 2015.09.04 07:42
  • 수정 2016.09.04 14:12

손칼국수라고 써 놓고 기계국수를 말아 내다 비난을 받은 유명한 칼국수 집이 있다. 모를 줄 알았지. 주방을 들여다보니, 덜덜덜,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참, 능청도 유분수지. 간판을 보니, '손' 글자를 떼어 놓았다. 붙였다, 떼었다, 쓰리엠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손은 위대하다. 손으로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왔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엄청난 첨단기술인 듯한 유전자조작 기술도 알고 보면 인간의 손이 하는 것이고(황 박사가 가르쳐주셨다), 손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오늘에 이르렀다. '수제'라는 말에 사람은 맥을 못 춘다. 손으로 어디까지 해야 수제인지 논란이 있지만, 그만큼 손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면과 만두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손으로 만드는 생면의 값을 훨씬 더 쳐준다. 손으로 국수 미는 공방을 유리창으로 볼 수 있게 해놓고 '생면의 클래식'이라고 하여 관광상품화했다. 한때 우리나라도 손칼국수와 손짜장면의 나라였다. 기계가 이 역사를 밀어냈다. 힘들게 국수를 수타로 쳐서 밀어내봐야 값이 똑같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기계로 돌리지 뭐. 기술자가 사라졌다. 수타면 잘 뽑던 전설의 고수들은 대개 노인이다. 돌아가시면 전설은 대충 맥이 끊길 것 같다. 손으로 탕탕 치지 않으니 국수가 쫄깃한 힘을 잃을 뻔했다. 그때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소다를 넣어 쫄깃함을 유지하는 쪽으로 대안을 마련했다. 배달해도 붇지 않고 쫄깃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일일이 손으로 쳐서 뽑아낸 수타면의 질감을 흉내 낼 수는 없다. 당신의 짜장면이 심하게 쫄깃하다면 소다 과용을 의심해야 한다.

손으로, 수타로 하는 건 여전히 먹힌다. 손으로 하지도 않을 게 뻔한 인스턴트 라면에 '수타면'이라고 써서 판다. 어디까지가 수타인가, 논란의 틈새를 이용하는 거다. 그런 반면 '기계면'이라고 해서 더 인기가 있는 쪽도 있다. 냉면이다. 아예 '기계냉면'이라고 써 놓았다. 의아하다. 기계를 자랑하다니. 알고 보면 이유가 있다. 고무줄 같은 공장 면이 아니라, 적어도 가게에 기계를 들여놓고 직접 뽑았다는 뜻이다. 일본식으로 자가제면(自家製麵)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냉면은 분질의 특성상 압연하여(눌러서) 써는 쪽이 아니다. 강력한 압력으로 압출해야 한다. 그래서 기계냉면이 자연스럽다.

중식 요리사가 수타면을 뽑고 있다. 강재훈 기자

손으로 하는 일은 위대하지만, 기계 덕을 본다고 해서 영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탈리아의 미슐랭 별 셋짜리 식당에서도 면은 기계로 일차로 뽑는다. 압연은 기계의 몫이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반짝이는 싸구려 기계다.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5만원쯤 주면 살 수 있다. 이 싸구려 기계로 만두도 빚고 라자냐도 굽고 국수도 썬다. 물론 압연만 하고 나머지는 손으로 한다. 기계와 손의 절충이다. 우동도 그렇다. 순전히 손으로 뽑는 우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압연까지 기계의 힘을 빌리고 써는 일은 손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수고로 반죽하고 펴고(압연), 썰기까지 한다면 좋겠다만 그 수고의 비용을 사람들이 치르려고 하지 않는다. 어정쩡한 기계와 손의 합작, 요즘 말로 콜라보레이션이다. 그래서 시골 장터에서 간혹 만나는, 할머니가 만드는 순 백프로 완전 원시 칼국수가 희한해 보이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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