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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클럽 씬의 올해의 사진

사진 속에서 음악을 틀고 있는 디제이는 타이거 디스코다. 그는 지난 7월에 사진 속에 보이는 해밀턴 호텔 수영장에 디제이로 초대되어 무대에 올랐다가 인기 있는 EDM 음악들을 틀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친 고성과 함께 디제이 부스에서 쫓겨났다. 사진 속 장면은 그로부터 26일이 지난 8월 22일이다. 타이거 디스코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동료 디제이 바가지 바이펙스 써틴은 자신이 주최한 행사 '내가만든페스티벌2015'에 타이거 디스코를 초대해 그날의 굴욕을 만회할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 이대화
  • 입력 2015.09.02 12:33
  • 수정 2016.09.02 14:12

나는 이 사진이 2015년 한국 클럽 씬의 '올해의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사진 속에서 음악을 틀고 있는 디제이는 타이거 디스코다. 그는 지난 7월에 사진 속에 보이는 해밀턴 호텔 수영장에 디제이로 초대되어 무대에 올랐다가 인기 있는 EDM 음악들을 틀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친 고성과 함께 디제이 부스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날 마음이 쓰려 소주 한 잔을 했다고 한다.

사진 속 장면은 그로부터 26일이 지난 8월 22일이다. 타이거 디스코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동료 디제이 바가지 바이펙스 써틴은 자신이 주최한 행사 '내가만든페스티벌2015'에 타이거 디스코를 초대해 그날의 굴욕을 만회할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파티 장소가 해밀턴 호텔 건너편의 루프탑인 것을 이용해 호텔 수영장이 영업하고 있는 시간에 타이거 디스코를 무대에 세운 것이다. 타이거 디스코는 이날 자신이 틀고 싶은 음악을 보란 듯이 마음껏 틀었고 그 음악 소리는 건너편 수영장에까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장면이 비비드 컴퍼니 박준응의 카메라에 담겼다.

디제이들의 SNS를 팔로우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상당히 널리 만연해 있음을 알게 된다. 'Show Me Your BBA SAE'로 유명한 디제이 한민은 지난 8월 19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작년에 한 디제이 후배가 말하길, '클럽 사장이 직원을 시켜 USB를 전달하며 순서대로 틀라고 해서 그 클럽을 관뒀어요.' (중략) 모든 클럽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클럽 DJ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타임 이외에도 영업시간 내내 상주하기를 바라고 영업을 강요받기도 한다. 심지어 음악 스타일까지 강요받는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진 이 대접이 더욱 슬프다.

'내가만든페스티벌'의 주최자인 바가지 바이펙스 써틴도 클럽 직원들로부터 모욕감을 느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테크노를 틀었다는 이유로 부스에서 강판당하기도 했고, 클럽 매니저가 하드웰(Hardwell) 곡이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말했다가 디제잉을 못하게 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드웰은 최근의 EDM 트렌드를 주도하는 디제이다.) 바가지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제이 중 한 명이다. 그가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건 한국의 디제이들 대부분이 그런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위의 사진이 '올해의 사진'인 이유는 이것이 지금의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이 찍힌 파티는 앞서 말했듯 '내가만든페스티벌2015'다. 그런데 이 페스티벌의 비공식적 진짜 이름은 '열받아서내가만든페스티벌2015'다. 주최자 바가지 바이펙스 써틴은 음악적 세련됨을 깡그리 무시한 엉터리 컨셉의 파티들과 EDM 좀 유행한다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연예인 섭외' 페스티벌이 싫다며 작은 규모지만 알찬 매니아 위주의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게 '열받아서내가만든페스티벌2015'였다. 이 행사엔 취지에 공감한 40명의 디제이들이 몰려 17시간 동안 음악을 틀었고, SNS는 '이런 행사를 기다려왔다'는 공감의 글들로 들끓었다. '내가만든페스티벌'은 2015년 한국 클럽 씬의 '올해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애티튜드를 가진 디제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테이블 매출과 VIP 매출이 최우선인 이 씬에도 돈에 앞서 음악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할 말 많은 디제이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디제이들이야말로 이 씬의 희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클럽을 '야한 유흥의 온상'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 이면엔 이런 행동들이 도모되고 있다는 것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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