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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자'더니 노동계 압박해 '노동시장 개혁' 밀어붙이려는 정부

  • 허완
  • 입력 2015.09.01 12:45
  • 수정 2015.09.01 12:53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굴복의 표시로 읽은 것일까?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는 열흘 안에 합의문에 도장 찍으라고 재촉하고, 재계는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관련 요건을 정부 지침이 아니라 법을 고치는 방식으로 도입하자는 초강경 주장을 내놨다. 이제 막 노사정 논의에 복귀한 한국노총을 상대로 ‘합의할테면 하고, 싫으면 말아라’라며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려는 ‘정부-재계 연합전선’이 만들어진 모양새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31일 오전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 이동응 경총 전무 등 4명이 모인 간사회의를 연 뒤 “구체적인 사항은 논의하지 못하고, 오늘 회의는 종료했다”고 밝혔다. 쟁점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별도로 논의할 이른바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이었다.

8월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4자 대표회의를 위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회의 뒤 <한겨레>와 통화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협의체 구성을 어떻게 할지 제안했으나 다른 간사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20분 만에 인삿말만 하고 끝났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고 신뢰에 금이 간다면 대화와 협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모처럼 마련된 노사정위 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가 8월27일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이기권 고용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경총 회장 등 노사정 대표자가 만나 합의한 내용을 이행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머지 쟁점을 정리하거나, 7일 열기로 한 노사정대토론의 세부 내용을 협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노사정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정부와 재계는 이날도 대화 상대방인 한국노총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사 경제부장과 간담회 자리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인 9월10일까지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한 합의를 이뤄달라”며 “10일까지 노동개혁 타협안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개혁 관련 정부 예산은 낮은 수준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노사정위 특위 회의조차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열흘 만에 향후 10∼20년 한국사회 노동시장의 질서를 짜는 합의를 하라는 얘기다. 이는 4월 초까지 논의가 미진했던 경제민주화 등 의제를 쟁점화하려는 한국노총의 요구는 완전히 묵살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년치 정부 예산은 12월 초까지 국회 예결위에서 조정이 이뤄지는 현실을 무시한 비상식적 압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재계는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의 막판 걸림돌이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정부 지침 형태로 추진하지 말고 아예 법제화하자는 주장까지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가 이날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이들 단체는 “제도개혁은 정부 지침 형태가 아니라 법률 개정을 통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현행 파견법이 금지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도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재계는 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것일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정부와 재계는 한국노총이 굴복해서 노사정위 합의에 들어오면 좋은 것이고 합의가 안 돼도 내년 4월 총선 때 ‘노동계가 발목 잡고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 노동개혁이 실패했다’고 몰아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이런 식이라면 (노사정 대화를 추진한) 한국노총 내부 합의파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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