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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낱말 퍼즐'을 만든 사나이

크로스워드 퍼즐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많은 이들이 컴퓨터 자동생성 프로그램 같은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혹은 만드는 과정 자체를 떠올리지 않거나.

매주 일요일, 미국의 크로스워드 퍼즐 덕후들은 ‘멀 리글의 선데이 크로스워드’를 기다렸다. 멀 리글(사진)의 팬들은 그의 퍼즐이 특별했다고 말한다. 그의 퍼즐은 지식을 시험하는 퀴즈라기보다, 말을 갖고 노는 언어유희에 가까웠다. 힌트만 봐도, 사람들은 그것이 멀 리글의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팬 중 한 명이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시나리오작가 스티븐 자일리언은 말했다.

“멀 리글의 퍼즐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크로스워드 퍼즐 뒤에 실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의 퍼즐에는 영리한 주제, 사악한 위트, 생생한 개성이 있었습니다. 퍼즐계에서 유례없는 일이었죠.”()

언어유희에 가까웠던 유례없는 퍼즐

40여 년의 세월 동안 수공예 장인처럼 크로스워드 퍼즐을 만들어온 사나이, 세상에 몇 안 되는 ‘풀타임’ 크로스워드 퍼즐 제작자, 멀 리글이 지난 8월22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한 병원에서 급성췌장염에 의한 합병증으로 숨졌다. 향년 65.

한국의 신문과 잡지에서 크로스워드 퍼즐(‘가로세로낱말퀴즈’)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많은 매체들이 여전히 다양한 형식의 크로스워드 퍼즐을 제공하고 있다.

멀 리글의 퍼즐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매주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등 50여 개 신문에 전국적으로 실렸다. 미국의 크로스워드 퍼즐 팬들은 당장 이번주부터 익살맞은 농담과 말장난으로 가득 찬 그의 퍼즐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리글은 죽기 이틀 전인 8월20일,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고, 췌장염 진단을 받은 뒤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리글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보통 마감에 닥쳐 일을 하곤 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의 새로운 퍼즐은 더 이상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리글의 퍼즐에는 그만의 독창적인 위트와 유머가 있었다. 위트와 유머이되, ‘사악한’ ‘악마 같은’ ‘불경한’ 등의 단어가 그 앞에 붙곤 했다. 그만큼 그의 퍼즐은 난해했고, 기존 상식을 뒤집었다.

영어 크로스워드 퍼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한 가지는 희귀한 단어들이 등장하는 퀴즈. 이를테면 ‘세발가락나무늘보’(ai), ‘바다독수리’(ern) 같은, 사전의 구석에서 찾아낸 단어들을 맞춰야 풀 수 있는 퀴즈다. 또 다른 하나는, 말 자체를 갖고 노는 오락으로서의 퍼즐이다. 리글은 이 ‘오락’으로서의 퍼즐을 사랑했다. <뉴욕타임스>의 크로스워드 퍼즐 담당 편집자 윌 쇼츠는 “오늘날 많은 유명 크로스워드 퍼즐 제작자들은 리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힌트 ‘가장 안 유명한 요리책’(Least popular cookbook ever)에 대한 정답이 ‘앵무새 굽기’(To Grill a Mockingbird·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를 비튼 것)라거나, 힌트 ‘완전히’(completely)에 대한 정답이 ‘atoz’(A-to-Z·A부터 Z까지라는 것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라는 뜻)인 식이었다.

그는 특히 애너그램(철자 순서를 바꾸는 말놀이)을 즐겼다. 예컨대 ‘한 단어만 철자가 뒤섞여 있는 노래 제목 맞추기’ 퍼즐에서, 힌트 ‘애너그램 대회에서 수상한 요리 노래’에 대한 답은 ‘You Ought To Be In Pie Crust’(넌 파이 껍질 속에 있어야 해·노래 (넌 영화배우가 되어야 해)에서 ‘Pictures’의 철자 순서를 바꾼 것)였다.

<뉴욕타임스>에 퍼즐 판매한 최연소 제작자

그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는 분명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일단 풀고 나면 많은 이들이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에 그를 위시한 새로운 그룹의 퍼즐 제작자들이 등장했을 때, 그들은 전통적인 크로스워드 퍼즐 애호가들의 거센 저항을 받기도 했다. 리글은 말했다.

“우리는 덜 지적인 퍼즐을 만들려고 합니다. 당신이 풀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책장 밖으로 나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퍼즐을 만들고자 합니다.”(<워싱턴포스트>)

리글은 어릴 때부터 크로스워드 퍼즐 만들기에 소질을 보였다. 1950년 1월5일 미국 뉴저지주 오듀본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때부터 크로스워드 퍼즐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결 구조의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말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꼬마 리글에게는 말이 최고의 장난감이 되었다. 그는 16살 때 처음으로 <뉴욕타임스>에 그의 퍼즐을 ‘팔았다’. 가격은 10달러. 당시 그는 <뉴욕타임스>에 퍼즐을 판매한 최연소 퍼즐 제작자였다.

10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 그는 간호사였던 어머니와 형과 함께 애리조나주의 투손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대학 시절 그는 대학신문의 교열 담당자였고, <애리조나 데일리 스타> 신문에서 3년 동안 교열 담당자로 일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TV 퀴즈쇼의 방송작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프리랜서로 퍼즐 제작 일을 계속했다.

리글은 퍼즐 만들기만으로 ‘먹고살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1979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와 <크로니클>에 주간 크로스워드 퍼즐을 싣게 되면서 본격적인 ‘풀타임’ 퍼즐 제작자가 되었다. 이후 다른 신문의 크로스워드 퍼즐 편집자들도 그의 작업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죽기 직전까지 그의 ‘주간 크로스워드 퍼즐’은 전국 50여 개 신문에 배포됐다. 그의 이름을 내건 크로스워드 퍼즐북 시리즈도 여러 권 출간됐다.

리글은 2006년 크로스워드 퍼즐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드플레이>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영화는 미국 크로스워드 퍼즐 토너먼트 대회를 중심으로 크로스워드 애호가들의 세계를 다루었다. 퍼즐 애호가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리글이다. 영화에는 그가 자기 집 식탁에 앉아 퍼즐을 만드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여전히 종이 위 격자판의 네모 칸을 연필로 하나하나 칠하며 퍼즐을 만들었다. 그가 메모를 위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은 너덜너덜했다. 최근에야 부수적인 몇몇 작업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 과정은 그를 ‘수공예 장인’처럼 보이게 했다.

영화 출연 뒤, 그는 2008년 만화 <심슨가족>의 한 에피소드(‘호머와 리사의 크로스워드 퍼즐 교환’)에 만화 캐릭터로 출연했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크로스워드 퍼즐은 모두 리글이 만들었고, 방송 당일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리글의 퍼즐에는 이 에피소드에 바치는 심슨 관련 힌트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여기서 그는 ‘오프라’의 첫 글자를 딴 알파벳 ‘O’ 모양의 격자판에, 오프라와 관련된 힌트만으로 이루어진 크로스워드 퍼즐을 선보였다.

2013년은 크로스워드 퍼즐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였다. 리글이 그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는 그의 크로스워드 퍼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는 1913년 12월21일 미국 <월드>에 게재된 최초의 크로스워드 퍼즐의 제작자, 즉 크로스워드 퍼즐의 창시자 아서 윈에 대해 글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리글은 1990년대에 웹서핑 중 윈에 대한 짧고 성의 없는 부고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리글은 윈이 크로스워드 퍼즐의 창시자다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죽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에 대한 뒤늦은 부고를 덧붙여썼다. 불과 2년 뒤에 자신이 크로스워드 퍼즐계의 전설로 사라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만화 <심슨가족>·오프라 윈프리 헌정 퍼즐도

그는 58살이던 2009년 애리조나대학 학생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퍼즐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58살에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저는 전 생애에 걸쳐 크로스워드 퍼즐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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