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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9월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한다

  • 김병철
  • 입력 2015.08.31 13:46
  • 수정 2015.08.31 13:47
ⓒ역사정의실천연대

*위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역사는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한국사 수능을 치를 수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일관되게 내놓은 답변이다. 언론이 이를 국정화로 해석하면 교육부에선 “국정화를 한다고 밝힌 적이 없다”고 펄쩍 뛴다. 하지만 ‘하나의 역사’와 ‘수능 부담 경감’은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국정화를 정당화하려는 데 동원하는 핵심 논리다.

교육부는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 고시 일정에 맞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2년간 여론의 동향을 살피며 ‘국정화 군불 때기’에 주력해온 교육부가 공식적인 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이 임박했다.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중대 고비를 앞두고 국정화를 떠받치는 ‘미신’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국정화 저지에 힘을 쏟고 있다.

■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 혼란이 없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교 현장에 ‘최악의 혼란’이 현실화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국가가 정리한 승자 중심의 단일 역사관’만을 가르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국정 교과서란 필자 구성, 집필, 수정·개편 등 모든 권한을 교육부가 가진 교과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보수 정부 입맛에 맞게 만든 교과서를 진보 정부에서 그대로 쓸 가능성은 낮다. 진보 정부가 만든 교과서를 보수 정부가 그냥 둘 가능성은 더욱 낮다.

유신 시절 발행된 국정 교과서가 5·16 군사쿠데타를 왜곡한 선례를 보면 기우가 아니다. 원래 5·16 쿠데타 ‘혁명 공약’의 여섯째 항목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의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였다.

하지만 1979년판 중·고교 국정 국사 교과서에선 이를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고 바꿔놨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민정 이양 약속을 뒤집고 대선에 출마하면서 변조한 항목을 그대로 교과서에 실은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 입맛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교과서 내용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 심지어 몇년 간격으로 상반된 역사적 해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국정 교과서도 전보다는 나으리라고 방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로부터 1979년판 국정 교과서보다 문제가 더 많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교학사 교과서는 논란이 되는 5·16 쿠데타 여섯째 항목을 아예 삭제하고, ‘혁명 공약’이 원래 다섯 항목인 것처럼 서술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30일 “유신 시절 교육부는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혁명 공약을 왜곡해 교과서에 실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비교당하면서까지 국정제를 도입하려는 걸 보면 어떤 내용이 실릴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 검정 교과서는 집필자·출판사 마음대로 만든다?

현행 검정 교과서도 교육부의 검열 체계가 워낙 촘촘해, 굳이 국정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자조도 나온다. 지금도 한국사와 윤리 등 사회 과목은 일반적 검정 체계에 더해 별도의 집필기준까지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필자나 출판사가 교육부 기준에 어긋나게 교과서를 만들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재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살펴보면 참고 자료나 이미지, 교과활동의 양과 종류의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정부는 7월30일 발표한 ‘교과용 도서 개발 체제 개선 방안’을 통해, 검정 교과서 ‘검열 제도’를 더욱 엄격하게 정비했다. 기존 검정 교과서는 기초조사와 본심사를 거쳐 일단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후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 이행 여부를 확인받아 최종 합격했다. 그런데 강화된 심사 체제는 ‘전문 감수’를 이유로 본심사를 두 차례로 나눴다.

1차 심사에서 기준에 미달하면 불합격이다. 1차 심사를 통과해도 전문 감수를 거쳐 수정·보완 요구를 이행해 2차 심사를 받아야 한다. 2차 심사에서 교육부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불합격 처리된다. 방은희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은 “검정제를 유지하더라도 이미 국가 통제가 최고 수준으로 강화됐다”고 짚었다.

■ 국정 교과서로 수능을 치르면 부담이 없다?

한국사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필수 과목이 된다. 일반의 생각과 달리, 현행 수능에선 국어·영어·수학도 필수가 아니다. 한국사만 필수다.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정 교과서 하나로 통일해서 배우면 여러 개의 검정 교과서를 공부할 필요가 없고, 수능 시험 부담도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사를 가르쳐온 교사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지적한다. 수능은 모든 수험생이 치르는 국가 수준 시험이다. 검정 교과서가 여러 종류라면 모든 종류의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핵심 내용 중심으로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국정 교과서 하나뿐이면 교과서 한 귀퉁이에 나오는 지엽적인 내용도 출제할 수 있다. 국정 교과서로 중·고교 역사를 배운 세대가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식으로 조선 왕조의 임금 이름 순서를 필수로 외운 과거를 떠올리면 된다.

수험생 부담이 더욱 커지는 건 당연하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과거 국정 교과서 시절 국사 시험은 지엽말단적인 내용까지 공부해야 고득점을 받았다”며 “국정 교과서로 바뀌면 학생들은 재미없는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하는 부담이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 국정 교과서가 검정 교과서보다 우수하다고?

유신 시절에도 교육부는 국가가 발행을 책임지면 학계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정제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실제 발행된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결과물은 정반대였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비교 대상이 없고 채택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 질도 떨어졌다.

대다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은 국정화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이 9월초 성명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미 780여명이 서명한 상태다.

초·중·고 역사교사들은 지난해 10월 1034명이 실명으로 국정화 반대 1차 교사선언을 했고, 9월초 발표될 2차 교사선언에 실명 서명을 한 교사가 벌써 1500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역량있는 역사 전문가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래엔 출판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구상에 좋은 국정 교과서라는 건 없다. 모든 선진국이 국정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국정 교과서는 집필자 선정 단계에서부터 정부의 생각을 대변해줄 학자들 위주로 구성되고, 학문적 자율성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최고의 역사 전문가들은 국가의 간섭으로 창의력과 학문적 깊이를 침해받으면서까지 굳이 국정 교과서를 쓰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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