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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 이름 짓기 전에 대통령이 하셔야 할 것

2년 반 전 대선 때, 동물단체들이 박근혜 캠프에게 동물정책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 측은 청와대에 입성하면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구두선'이 아니길 빌며 캠프 정책 담당자와 여러 번 통화를 했고 그들은 여러 차례 박근혜 캠프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기사에 그렇게 썼고 개인적인 기대를 품었다. '우리나라의 퍼스트독이 유기견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많은 변화를 불러오겠지'...

  • 남종영
  • 입력 2015.08.31 11:49
  • 수정 2016.08.31 14:12
ⓒFacebook/박근혜 대통령

'희망이'와 '새롬이' 새끼들 이름 지어달라고 하시기에 전에 대통령이 하셔야 할 것.

박근혜 대통령이 주말 페이스북에 청와대 진돗개인 '희망이'와 '새롬이'가 새끼 5마리를 낳았다며, 이들의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글을 올렸다.

2년 반 전 대선 때, 동물단체들이 박근혜 캠프에게 동물정책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 측은 청와대에 입성하면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구두선'이 아니길 빌며 캠프 정책 담당자와 여러 번 통화를 했고 그들은 여러 차례 박근혜 캠프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기사에 그렇게 썼고 개인적인 기대를 품었다. '우리나라의 퍼스트독이 유기견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많은 변화를 불러오겠지'... (관련기사: 박근혜-문재인, 동물들은 누굴 찍을까)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청와대로 가면서, 청담동 주민들이 준 진돗개를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들어갔다. 그들이 지금의 퍼스트 도그, 얼마 전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는 '희망이'와 '새롬이'다.

청와대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가 청와대 안뜰에서 놀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청와대 대변인과 통화를 해서 다시 물었다. 당시 정윤회 문건 파동이 휘몰아치던 때였고,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농담을 해서 입길에 오르고 있던 터라(그 몇 달 전에는 '진돗개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매우 곤두서 있었다. (관련기사: 청와대 실세가 유기견이면 좋을 텐데) 미묘한 문제라서 다른 관계자들이 답하기 힘들었다며, 자기가 답을 하겠노라고 전화를 했다. 희망이와 새롬이에 관한 근황을 들을 수 있었고, 나는 대선공약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당시 취재노트를 펼쳐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유기견 입양 계획은 없나?"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건데. 이것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고 나도 물어볼 생각도 없고."

역사적으로 권력은 동물을 이용해왔다. 고대시대부터 왕족과 귀족은 동물을 호사 취미로 수집하면서 자랑을 해댔고, 근대 식민지의 하급관리는 본국의 잘 보여야 할 사람에게 사자, 호랑이 같은 진귀한 동물을 선물로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동물은 '권력의 액세서리'인가, 아니면 '공감하는 생명'인가. 나는 박 대통령이 어렸을 적부터 개와 함께 어울려 지냈고 동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숨지고 하얀 스피츠를 안고 신당동 자택에 들어왔을 때, 박 대통령의 외투에 묻은 하얀 털 또한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 애정의 투여나 닫힌 사랑이 아님을 보여주려면, 그리고 동물을 그저 이용만 하는 권력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청와대에 유기견을 입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아니, 설마 그게 중요하지 않은 약속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제발 동물을 이용만 하지 말고 책임을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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