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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적성

"적성을 모르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무언가에 매진하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적성' 보다 '성적'을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슬픈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나 또한 그런 피해자였다. 일을 순리대로 돌려놓으려면 적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먼저 적성에 대한 정의가 왜곡되어 있다. 이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적성이 뭐냐"고 물어보는 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남과의 비교에서 뭔가 빼어난 재주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큰 착각이다. 적성은 셀프의 개념이다.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소질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잠재력을 말한다.

  • 김민태
  • 입력 2015.08.31 06:20
  • 수정 2016.08.31 14:12
ⓒgettyimagesbank

처음 만난 사람이 묻는다. "프로그램 제작은 안 해요?" 명함을 주고받다 흔히 받는 질문이다. 피디라고 적혀 있는데 소속이 제작부서가 아닌 사업이다 보니 궁금한 거다. "네, 안 합니다"하고 대답하면 바로 "왜요?"라고 묻는다. 의아하다는 듯 목소리도 하이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피디가 연출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탓일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좀 더 재미있어서요" 라고 말하면 "아..."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대기 중이었을 법한 질문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때론 실망의 눈빛마저 새어 나온다. 경험으로 볼 때 피디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좋다.

"프로그램보다 사업이 적성에 맞는 거 아니야?" 친한 친구가 묻는다. "그럴지도..." 이건 진실이다. 어차피 가능성이니까.

피디로 입사하고 5, 6년은 연출에 경도되던 시기였다. 촬영은 예술이요, 편집은 마술이었다. 빡셌지만 성취감도 제법 있었다. 그 이후는 기획의 힘을 알아가던 시기다. 몇몇 선배의 영향이 크다.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의 상당량을 한 장짜리 기획안과 원고 작업으로 이동시켰다. 개안(開眼)의 시기다. 대학 시절 소설이나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많이 접했어야 했다고 땅을 치고 후회하던 때이기도 하다.

10년 차, 지쳐 있던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잠시 제작 부서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다. 우연히 방송계 너머의 풍경을 엿보았다. 이제는 대세가 되어버린 모바일이 급속하게 세력을 넓혀 나갈 무렵이었다. 시간과 여유가 만들어 준 혜택은 적지 않았다.

처음엔 공부 좀 해보겠다고 이런 저런 앱(App)을 깔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모바일 리더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급기야 모바일 프로젝트를 착수하게 됐다. 그러면서 전과 다른 단어들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니즈(needs)와 원트(want). 모바일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육아정보와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 3년 전엔 상상도 하지 않던 일이다. 어쩌다 기웃거린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많은 것을 발견했다. 다양한 서비스들 간의 강점과 약점. 더불어 내 안의 다양한 적성까지. 영업도 그 중 하나다. 기획의 완성은 영업이라는 믿음이 굳어져 간다. 직함은 피디를 유지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의미의 방송 피디는 아니다.

언젠가 또 누가 물어볼 것이다. 피디는 무슨 일을 하나요? 피디에게는 어떤 덕목이 중요한가요?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로 잘라 말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한 길로 가는 것은 항상 좋은 건가

조르지오 아르마니(1934~)는 이탈리아 명문 의대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다. 그가 패션에 눈을 돌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라는 직업에 아주 가까워졌을 때다. 입대 후, 의무실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감이 돌았는데 들이닥치는 병사들에게 엄청난 양의 주사를 놔야 했다. 이 경험이 아르마니에게는 의사라는 직업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휴가를 나왔을 때다. 돈을 벌 생각으로 백화점에서 사진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제대 후 남성복 구매 담당 보조로 일하게 된다. 패션을 선택한 것은 직업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기 보다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점차 패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몬테소리 교수법의 창시자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였다. 사회생활의 시작도 로마정신병원의 보조의사였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정신지체 아이들은 생각보다 예민한 존재였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갖고 노는 것만으로도 감각의 수준이 향상됐다. 몬테소리는 놀잇감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본격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것이 훗날 전 아동들의 교육에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직업이 자주 바뀐 드라마틱한 케이스로 슈바이처(1875-1965)만한 사람도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실제 성인이 되어서도 뛰어난 오르간 연주가였을 뿐만 아니라 파이프 오르간 구조에 대한 논문도 집필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대학에서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27세 때 철학 교수가 되었다.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1905년 프랑스 선교단의 보고서를 통해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다. 이때가 스물아홉이었고 이듬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마침내 38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나병 환자를 위해 병원을 세웠다.

슈바이처는 총 4개의 직업을 거쳤다. 익히 알려진 의사 외에도 신학자로서 종말론을 설파했고, 철학자로서 칸트를 연구했으며 음악가로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제1 적성은 무엇이었을까.

발목을 잡는 건 적성인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적성을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적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꽤 있다. 고민이 이직으로 연결되려는 찰라는 더 심각해진다. 대안은 못 찾았어도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건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성을 모르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무언가에 매진하기도 힘들다" 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적성' 보다 '성적'을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슬픈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나 또한 그런 피해자였다.

일을 순리대로 돌려놓으려면 적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먼저 적성에 대한 정의가 왜곡되어 있다. 이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적성이 뭐냐"고 물어보는 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남과의 비교에서 뭔가 빼어난 재주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큰 착각이다. 적성은 셀프의 개념이다.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소질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잠재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말을 잘 한다. 사람의 마음을 잘 본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음감이 좋다. 논리적이다.'이 모든 평가 항목이 자기 안에 있고 평가자도 자기 자신이다.

적성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적성은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깊은 바다에 숨어 있는 단단한 진주처럼. 다중지능을 주창한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적성은 어느 정도 타고나지만 쓰지 않으면 발현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제1 적성이 노출과 상호작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인물 중에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처럼 어릴 때부터 뭘 팔기 좋아했고 그 적성을 잘 키워나간 경우도 많지만, 슈바이처처럼 중간에 변한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적성과 직업을 일대일로 연결할 때 빚어진다. 기자는 논리력, 피디는 창의력 이런 식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지방에서 상경한 적이 있다. 방송 작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터라 아는 피디라도 붙잡고 물어볼 요량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적성이 방송작가에도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얘기를 시작한지 30분도 안되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몇 개의 고단할 법한 상황을 넌지시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그는 글 쓰는데 상당히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직업은 다양하다. 글쓰기 하나만으로 관련 직업에 들어맞기를 기대했다면 이건 적성보다는 직업에 대한 이해부족을 탓해야 한다.

이렇게 적성은 입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변하기 십상이며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훨씬 역동적이다. 참 어렵지 않은가 그놈의 적성. 게다가 '적성'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개념어라 직관적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전까지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뇌만 더 심란해진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자기 이해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알 것 같은 것도 몇 번 해보면 다르다고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년들의 조기 이직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총이 발표한 대졸신입사원들의 1년 내 퇴사율을 보면 중소기업은 30%, 대기업도 10%에 이른다. 1년 경력이면 차라리 숨기는 게 이득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작은 행동들을 많이 해야 한다. 행동의 힘은 감정을 일깨우는 데 있다. 우리는 기분이 좋아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경우보다,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적성을 알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경우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적성이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적성이라는 놈이 그렇다. 찾는다고 보이는 게 아니라 어쩌다가 발견되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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