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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당한 강호동, 기회를 얻었다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강호동이 나영석과 함께 <신서유기>를 선보인다. 나영석과 강호동의 4년 만의 재회이고, <1박2일> 시즌 1의 원년 멤버들이 다시 뭉친 프로그램이며, 강호동의 첫 인터넷방송 진행작이다. 여러모로 시선이 몰려 마땅할 것 같은데, 방영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금 생각처럼 반응이 뜨겁진 않다. 남북한 긴장관계 고조에 온 국민들의 눈이 돌아가 있던 탓도 있지만, 예전만큼 강호동이 그렇게 핫한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크기도 하다. 에스비에스 <맨발의 친구들>, 한국방송 <달빛 프린스>, 문화방송 <별바라기>와 한국방송 <투명인간> 등에서 연속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탓에, 강호동을 예전과 같은 체급으로 보는 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얼핏 안 좋은 일인 것 같지만, 사실 강호동에게도 나영석에게도 다행인 일일지도 모른다. 보는 이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프로그램이 초반에 자리를 잡기까지 헤매는 찰나의 순간에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그 실망감이 프로그램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이 되기 십상이니까. 오히려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치에서 시작해 서서히 올라오는 편이 모두에게 숨을 고르고 여유있게 콘텐츠를 펼쳐 보이기 편하다.

이와 비슷한 길을 강호동의 스승과 동료들이 한차례씩 겪은 바 있다. 뭘 선보여도 부진을 면치 못하다 문화방송을 떠난 뒤 조용히 한국방송 <남자의 자격>과 티브이엔 <화성인 바이러스>, <러브 스위치>에 도전해 차근차근 재기에 성공했던 이경규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방송 <야행성>과 <안녕하세요>를 거치며 다시 한번 국내 최정상의 위치를 확인한 신동엽이 그랬다.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가 티브이엔 <택시>로 돌아온 다음 한국방송 <이야기쇼 두드림>과 에스비에스 <화신>을 거쳐 다시 문화방송 <라디오스타>로 돌아온 김구라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세간의 이목은 그들을 비껴갔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부담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소재에 도전하되, 그것을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의 코미디로 소화하는 실험. 자신의 리듬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는 아주 오랫동안 강호동과 함께 한국 예능계를 양분했었고 지금은 유일한 일인자로 살아남은 유재석의 최근 행보와 대조를 이룬다. 팬으로선 속상한 이야기지만, 유재석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여전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프로그램은 문화방송 <무한도전>과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정도다. 한국방송 <해피투게더3>는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으며, 유재석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 여겨지던 한국방송 <나는 남자다>는 미지근한 반응만 남긴 채 시즌 1이 종영되었다. 에스비에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는 어느 순간 부모님의 입장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기괴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제이티비시에서 새로 선보인 파일럿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 또한 기껏 대중의 곁에서 떠나 있던 옛 가수들을 발굴해서는 그들의 음악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단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2010년대풍으로 재해석한 트랙을 들려주고 끝내는 애매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눈에 띄는 균열이나 침체는 없지만, 아주 천천히 타율이 떨어지는 중이다. 물론 아직 강호동의 <신서유기>가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알 수 없고, 유재석이 선보인 <슈가맨을 찾아서>가 정규 편성이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난 10여년 넘게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능인들이었으며 당대의 욕망을 절묘하게 쇼에 녹여낸 두 사람의 행보가 미묘하게 교차하고 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엔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예전 이 지면에서 유재석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언급했지만, 사실 유재석이 하는 프로그램이 소소한 실패로 끝나는 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어느 정도 성공가도에 올린 뒤에도 한동안 ‘될 때까지’ 계속 도전을 반복하는 종류의 예능인이었으니까.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에서 ‘엑스맨’의 흥행과 ‘패밀리가 떴다’의 흥행 사이에는 쉴 틈 없는 개편이 있었다. ‘뉴 엑스맨’(2006년 11월), ‘하자고’(2007년 4월), ‘옛날 티브이’(2007년 6월), ‘기적의 승부사’(2007년 11월), ‘기승史’(2008년 2월)에 이르는 숨가쁜 개편. 유재석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서 힘닿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보완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올리는 데 익숙한 예능인이었다. <무한도전> 또한 계속 새로운 것을 해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포맷을 올리는 형식의 전무후무한 쇼로 완성이 된 셈이고, 지금은 폐지된 문화방송 <놀러 와> 또한 수년간 포맷을 바꿔가며 ‘될 때까지’ 변화해왔다. 마치 침체나 방송 잠정 중단 이후 재기의 길을 걸었던 이경규, 신동엽, 김구라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강호동이 걷고 있는 길처럼 유재석 또한 될 때까지 도전하는 타입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하기엔 유재석이 너무 거대한 존재가 됐다는 점이다. 모두의 기대치가 높을 때는 조금만 삐끗해도 실망하는 이들이 나오는 법이고, 소소한 도전이나 멘트 하나하나도 언론의 헤드라인이 되어 입소문을 탄다. 그걸 의식한 걸까. 유재석은 점차 보수적인 선택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동상이몽>에선 점점 부모님의 심정을 학생들에게 납득시키고 어떻게든 화목한 결론으로 잘 포장을 해서 정리하기 바쁘고, <슈가맨을 찾아서>에선 어떻게든 예능에 서툰 과거의 가수들을 데리고 웃음을 자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상대방의 멘트 허리를 끊고 들어간다. <무한도전>에선 데뷔 23년차 댄스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에게 “딱 듣고 냉정하게 얘기할 테니까 상처받지 마. (…) 가요제 올라가지? 음악 딱 나오는 순간 반응이 확 갈려요”라며 충분히 신나지 않다고 채근한다. 이미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검증된 것들, 대중의 기호에 실패나 시행착오 없이 맞출 수 있는 길을 답습한다.

변하지 않는 1위라는 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란 의미도 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수나 실패, 도박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방송을 잠정 중단할 무렵의 강호동이 그랬다. 거의 실패라곤 없었던 필모그래피에서 문화방송 <무릎팍 도사>와 <1박2일> 모두 매너리즘을 면치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고, 아무도 그가 일인자라는 걸 부정하진 않았으나 점차 보수적인 이미지로 굳어지던 차였으니까. 그에게 찾아온 잠정 활동 중단과 실패는, 더 긴 호흡으로 방송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부담을 내려놓고 보다 편하게 방송을 할 수 있는 환경적인 강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지금 유재석에게 필요한 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적절한 실패일 것이다. 그가 하는 프로그램이 예전 같지 않아도, 때론 뜬금없는 무리수를 던지고 실패를 해도 그것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다시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거꾸로 돌려서 이야기하면 실패를 두려워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차례 실패하거나 시스템에서 탈락하는 순간 재기가 어려운 구조인 한국 사회의 맥락을 마냥 무시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거나 실수해도 괜찮다고만 이야기하는 건 분명 기만일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어떻게든 실패 없이 시스템에 포섭되어 안정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기만을 갈망하는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무망한 일이다. 모든 이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풍속, 자신이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길을 걷기보단 남들이 이미 검증해준 ‘꿀팁’ 콘텐츠를 열독하는 유행, 보수적인 권력이 제시하는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인터넷 우익 청년들의 등장까지. 스스로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우등생으로 살아남는 것만이 살길로 여겨지는 세상은 점점 변화를 멈추고 보수화된다. 실패가 마냥 부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인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한번의 실패로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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